紫布岩乎邊希 자줏빛 바위 가에
執音乎手母牛放敎遣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吾兮不喩慙兮伊賜等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花兮折叱可獻乎理音如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신라 향가 '헌화가'
■ 박범신 작가의 깊은 사유의 결과이겠지만, 영화 '은교'의 스토리는 신라향가 <헌화가>에 바치는 아주 열정적인 오마주라고 생각한다. 수로부인이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을 때 벼랑 아래에 있는 철쭉꽃을 보고 그것을 꺾어줄 사람이 없느냐고 묻는다. 남편도 주위의 호종하는 이들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거긴 사람이 못갑니다." 그때 소를 몰던 노인이 다가와서 저 노래를 부르고는 그 꽃을 꺾어준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저 스토리를 박범신은, 거울을 벼랑 중턱으로 떨어뜨린 17세 은교를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가는 70대의 이적요시인의 모티프로 부활시켰다. 이 영화는 어린 그녀에게 바치는 노시인의 헌화가이다. 사랑은 젊음에게만 고유한 것인가. 순정은 나이들수록 사라지는 것인가. 누가 말했듯이 적요한 인생에 더욱 피사체가 또렷하게 보인다. 젊을 때는 놓치고 지나간 것들이, 그 아름다운 빛과 냄새와 소리와 그림자와 뉘앙스들이, 그제서야 보인다는 주장을, 영화는 헌화가를 빌어 드러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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