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멸치 우려낸 장국에/몇 사리씩 삶아 건진 생각들 느물느물 풀려 떴다/이 히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들 속에는/염천교 다방 골목이나 창가(娼街)의 한낮을 누비던/잡화 행상으로 떠돌던 주인 사내의/슬프나 결절 없는 속 가락들이 올올이 함께 풀려 떴다/알마나 속속들이 풀려야 완벽하게 우러난/돋을새김 담백한 맛으로 깊어지는 것인가(......)
홍신선의 '옛날 국수를 먹으며' 중에서
■ 숟가락은 삽처럼 생겼고 젓가락은 지게작대기를 닮았다. 삽으로는 흙을 뜨고 지게작대기로는 무논에 뜬 지푸라기를 건져내기도 한다. 일상의 사물들은 서로 은유의 거울을 비추며 모인다. 밥은 삽을 뜨듯 한 술을 뜨고 국수는 작대기로 건지듯 그 가락들을 건져올린다. 밥을 뜨는 일은 삽질처럼 야무진 기운이 있지만, 국물들 속에 빠져있는 국수를 건져올리는 일은 어쩐지 서럽고 간절하고 가난하다. 가격 차이가 이런 기분을 도우는 것일까. 밥은 기운을 돋우는 식사요, 면은 그저 끼니를 때우는 것이라는 배고픈 역사의 견적 때문인가. 통멸치 장국에 결절 없는 속 가락이 뜬 옛날 국수는 실속 없이 바쁘기만 했던 이 땅의 삶 한 그릇이다. 담백해서 깊어진 그 국물에 어른거리는 제 얼굴을 젓가락으로 건져 구급(救急)하는 동안 후루룩 반생이 넘어가 있는.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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