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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난 K리그 스타일" 외치는 일본인, 에스쿠데로

시계아이콘읽는 시간6분 9초

[피플+]"난 K리그 스타일" 외치는 일본인, 에스쿠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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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에스쿠데로(FC서울). 서울의 새 외국인 선수다. 임대 영입으로 이만한 임팩트도 찾기 어렵다. 8경기 만에 3골 1도움. 데뷔전에서 데뷔골까지 넣었다. 탱크의 묵직함이 느껴지는 체격에 발까지 빠르다. 데얀과 몰리나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상대 수비수들이다. 에스쿠데로까지 더해지니 이거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셋이 만들어낸 시너지 속에 팀은 리그 선두를 질주 중이다.

독특한 이력이 더욱 시선을 끈다. 외모는 영락없는 라틴인이다. 역시나 스페인 태생에 아버지는 아르헨티나 프로축구 선수 출신이란다. 그런데 국적은 일본이다. 10대 중반에 귀화를 선택한 까닭이다. 고향, 모국, 국적 모두 다른 셈인데, 물려받은 재능과 처음 공을 찼던 땅의 기운은 무시 못 한다. 축구 DNA는 아르헨티나에 가깝다. 저돌적이고 터프하면서도 열정적이다. K리그에 흔한 브라질 외국인 선수와는 차별화되는 이유다.


J리그 코치가 된 아버지를 따라 10대 초반 일본으로 건너왔다. 당연히 또래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가능성을 발견한 J리그 명문 우라와 레즈는 발 빠르게 유망주를 낚아챘다. 16살을 갓 넘긴 나이에 프로무대까지 데뷔했다. 이즈음 아버지와 함께 일본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탱고의 피가 흐르면서도 아르헨티나 축구를 이겨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일본 청소년 대표와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차례로 부름을 받았다. 또 하나의 일본인 귀화 축구 스타를 기대해 볼 법했다.

그런데 오히려 독이 됐다. 외국인에서 일본인이 되자 지도자의 시선도 변했다. 어린 나이에도 빼어난 용병에서 졸지에 성장이 필요한 어린 선수가 돼버렸다. 출전 기회는 줄어들었고, 성장세는 멈췄다.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해선 안됐다. 돌파구를 찾던 도중 어린 시절 우러러보던 스타에게서 연락이 왔다. 함께 뛰어보지 않겠느냐고. 고민은 사치였다. 주변의 만류에도 그대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그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다시금 깨어났다.


K리그 챔피언을 가리기 위한 후반기 스플릿 개막이 코앞이었다.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시간에 장시간 인터뷰를 부탁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조심스레 건넨 얘기에 흔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미안한 마음에 훈련 시간을 덜 뺏고자 점심식사와 인터뷰를 병행했다. 일본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일본인’이기에 육회비빔밥을 건넸는데, 아뿔싸, 육회는 못 먹는단다. 대신 제대로 한식인 뚝배기 불고기 먹어보겠단다. 이 친구, 적응력 좀 대단한 것 같다.


[피플+]"난 K리그 스타일" 외치는 일본인, 에스쿠데로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싶던 아르헨티나 소년


서울 유니폼을 입은 지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이제 적응은 좀 됐나
좋다. 코칭스태프는 물론 한국선수, 외국인선수 가릴 것 없이 옆에서 날 많이 도와줬다. 특히 데얀, 몰리나, 아디 덕분에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다. (뚝배기 불고기를 한 입 먹더니) 음. 괜찮다.


귀화 선수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장배경이 남달랐으리란 추측이 된다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아르헨티나 분들이셨고. 아버지와 삼촌이 축구선수였기 때문에 나 역시 자연스럽게 늘 축구와 함께였다. 두 살 때 온 가족이 아르헨티나로 건너갔었다. 네 살 때 아버지가 J리그 우라와 레즈에 입단하시면서 나도 일본으로 갔다. 8살 때 아르헨티나로 귀국하면서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벨레스 사르스필드(김귀현의 소속팀)에 들어가 14살 때까지 뛰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2001년 가시와 레이솔 유소년팀 코치가 되면서 다시 일본행을 택했고, 6년 뒤 아버지와 함께 일본 국적을 얻었다.


사춘기를 외국에서 보낸 셈이다. 물론 어린 시절 잠시 일본에서 지낸 적은 있었지만, 청소년기에 낯선 아시아 문화에 적응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처음 3~4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일본어도 전혀 못했고, 문화도 달랐다. 당연히 학교생활에도 적응을 잘 못했다. 축구 스타일도 달라서 훈련 때마다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힘든 점은 일본과 아르헨티나의 축구 레벨 자체가 달랐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 시절엔 늘 최고의 선수들과 상대했었으니까.


아버지를 따라 가시와 유소년 팀에 들어갔다가 이내 우라와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이후 우라와에서 1군 데뷔를 하며 J리그 최연소 출장 2위(16세 8개월 21일) 기록도 세웠는데
그 당시 귀도 부흐발트 감독이 우라와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독일대표팀 출신이자 J리그에서도 뛰셨던 분인데, 나를 눈여겨보다 입단 제의를 했다. 결국 우라와에서 프로 1군에 데뷔했다. 그 뒤로 8년을 우라와에서만 뛰면서 리그와 일왕배에서 우승하는 등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한 마디로 잘 나가는 유망주였다. 그만하면 고향인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뛰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일본으로 귀화할 결심을 했던 걸까.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
일본에서 지낼 때였다. 하루는 아르헨티나와 일본이 A매치를 가졌는데, 아르헨티나가 4-0으로 대승을 거뒀다. 그 경기를 보면서 이상하게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일본 대표팀에서 뛰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물론 아버지도 여전히 아르헨티나 국적을 갖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되돌아보면 그때 그 단순했던 생각이 귀하 결심의 계기였던 것 같다.


귀화 이후 일본 올림픽 대표팀에도 뽑힐 만큼 가능성을 인정받았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우라와에선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점도 없지 않았는데
처음 내가 외국인 선수 신분일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귀화를 하면서 많은 게 변했다. 특히 감독님의 태도가 달라졌었다. 아무래도 외국인 선수는 이적도 잦고, 전력상 중요한 존재이다 보니 한 번이라도 더 출전하게 되지 않나. 그런데 일본 선수가 되면서 감독이 나를 너무 쉽게 대한 면이 없지 않았다. 나 대신 다른 외국인 선수나 유망주를 투입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내가 K리그에 와서 8경기 만에 3골 1도움을 올렸다.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난 그라운드에 서면 그만큼의 몫을 해내는 선수다. 하지만 우라와에선 좀처럼 출전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런 과정이 서울로 이적한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렇다. 오랜 시간 늘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좀 지쳤달까, 그런 감이 있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더 좋은 선수가 되고 싶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던 중에 서울 쪽에서 연락이 왔다. 포르투갈, 스페인 쪽에서도 제안이 왔었지만, 한국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가장 중요했던 건 최용수 감독이 나를 원했다는 데 있다.


[피플+]"난 K리그 스타일" 외치는 일본인, 에스쿠데로


“최용수? 그 골 잘 넣던 공격수가 날 원한다고?”


그 얘기를 좀 해보자. 최용수 감독 눈에 띈 것이 지난겨울 가고시마 전지훈련 당시 서울-우라와 연습경기라고 알고 있다. 그때 후반에 교체 투입돼 골까지 넣으며 최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더라. 솔직히 당시 서울에 대한 느낌이 어땠나
일단 데얀, 몰리나, 아디 등 선수들의 기량 수준이 높아 보였다. 데얀의 슈팅, 몰리나의 패스, 아디의 수비 등 굉장히 좋은 팀이란 생각이 들었다. 교체 투입된 탓에 전반전은 밖에서 지켜봤는데, 하나로 뭉쳐있는 팀이란 인상을 받았다. 서로가 서로를 믿는 모습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만 보면 그 팀이 밖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 있다. 저런 팀에서 한 번 같이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랬는데 막상 지난여름 서울 입단 제의를 받았으니 기분이 묘했겠다
어떻게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표현해야 할까. 우라와로부터 “최용수 감독이 너를 데려오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최용수?”라며 깜짝 놀랐다. ‘최용수라면 내가 어렸을 때 J리그에서 골을 많이 넣던 그 대단한 공격수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더라. 한국에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내 에이전트까지 나서서 말리더라. J리그나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들이 한국에서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훌륭한 공격수 출신의 유명한 감독님이 나를 원하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부산을 상대로 한 데뷔전(6-0 승)에서 데뷔골까지 넣으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체격과 힘이 좋을 뿐 아니라 스피드도 대단하더라. 그동안 J리그 출신들이 K리그에선 기대 이하였고, 또 일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유형의 선수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랬나. (웃음) 사실 일본에서 처음 축구를 할 때, 감독님이 내 플레이스타일을 일본 선수들처럼 바꾸려고 했었다. 나는 물론 아버지도 그걸 원치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스피드는 자신 있었다. K리그에 처음 왔을 때는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몇 경기 치르면서 적응이 됐다. 지금은 나만의 플레이를 보여줄 자신이 있다.


이 정도 선수가 왜 일본에서 그토록 활약이 없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 우라와 감독님도 좋은 지도자다. 하지만 그 분 머릿속에는 베스트11밖에 없었다. 내겐 기회가 없었다. 프리시즌 15경기 나서 11골을 넣을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막상 시즌 시작하면 후반 3분 남겨놓고, 그것도 내 포지션도 아닌 자리에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불합리했었다.



“오빤 K리그 스타일!”


앞에서 말한 대로 K리그에선 J리그와 아르헨티나 출신 모두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 그런 점을 알고 있었나
에이전트가 말하기 전까진 잘 몰랐었다. 음…. 내 생각엔 아르헨티나 사람들 자체가 좀 유별나서 그런 것 같다. 자유분방한데다 특이한 성격도 많다. (웃음) J리그에서도 적응 못 하고 떠나는 선수 많다. 일단 문화 자체는 물론이고, 축구 스타일도 다르기 때문 아닐까.


이제 겨우 두 달밖에 안 뛰어봤지만, J리그에서 10년 가까이 뛰어본 경험을 놓고 봤을 때 몸소 느낀 K리그와 J리그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술과 축구 자체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다만 한국 수비수들이 좀 더 강하게 부딪힌다고나 할까. 보디 체킹도 많고 다부진 편이다. 개인적으론 한국 축구 스타일을 더 좋아한다. 서로 강하게 부딪히는 축구가 진짜 축구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내 기량을 더 발휘하기 쉽다. 우라와 시절 한국팀과 연습경기를 하면 항상 골을 넣었었다. 반면 일본은 좀 전체적으로 선수들이 내려와서 뛴다. 그런 점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선수들의 기랑면에선 또 어떤가
한국에 이렇게 좋은 선수가 많은가 싶어 놀랐다. J리그에선 아시아 선수를 보며 ‘정말 잘한다’란 느낌을 받은 적, 많지 않았다. 대부분 워싱턴, 네네 등 외국인 선수들이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선 두 달밖에 안 지났는데도 감탄을 자아내는 선수를 많이 봤다. 우리 팀의 하대성, 고명진, 고요한, 김주영은 놀랍다. 특히 김주영은 일본 대표팀 수비수 툴리오가 연상될 정도로 정말 좋은 선수다


갑자기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하나 떠올랐다. 혹시 런던 올림픽 때 한일전 봤나
봤다. 경기 보는 내내 한국이 이길 줄 알았다. (웃음) 기술적인 면에선 대등했다. 한국선수들의 승리와 성공에 대한 갈망이 더 크게 느껴진 것이 큰 차이다. 평소에도 그렇다. 해외 진출만 놓고 봐도 일본 선수들은 적극적이기보다는 ‘오퍼가 오겠지’라며 무언가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상암과 사이타마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둘 다 관중은 많지만 분위기는 다르다. 한국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많다. 골이 들어가면 터지는 폭죽부터 팬 서비스, 하프타임 이벤트, 가수 공연 등 관중과 함께하려는 구단의 노력이 엿보인다.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팬들과 가족 같은 느낌이다. 반면 일본은 경기장에서 와서 축구를 보고 가는 게 전부다. 그런 점 때문에 J리그 관중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피플+]"난 K리그 스타일" 외치는 일본인, 에스쿠데로


수원전 얘기 안 할 수 없지


지난달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에도 뛰었다.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더비전인데, 혹시 그전부터 알고 있었나
물론이다. 또 2010년에 수원에서 뛰었던 다카하라 덕분에 잘 알고 있었다. 우라와 시절 같이 뛰면서 친했던 사이다. 한국 오기 전에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서울로 가는 거라면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될 거다. 네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먹힐 것 같다”란 얘기를 해줬다.


첫 수원전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것 같은데
두고 봐야 한다. 수원전 같은 경기는 항상 어렵다. 하지만 그 날 경기는 골이 안 들어갔을 뿐, 우리팀 경기력이 훨씬 좋았다. 운이 없었다. 나를 비롯해 데얀, 몰리나 등 누구라도 골을 넣을 선수는 많다. 후반기 스플릿 리그에서 수원과의 두 경기만 이긴다면 서울이 무조건 우승할 것이다.


다카하라는 서울전에서 두 골을 넣으면서 4-2 승리를 이끌었던바 있다. 본인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음, 그건 두고 보면 안다. (웃음)


외국인 선수라는 위치, 참 어렵다. 월등한 기량을 보여줘야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 서울 같은 강팀이라면 더더욱. 오죽하면 ‘용병’이란 표현까지 쓰지 않나. 국내선수로 분류됐던 우라와 시절보다 부담은 되지 않는지
난 적절한 압박과 긴장을 느낄 때 더 잘하는 편인 것 같다. (웃음) 우라와 시절엔 벤치 선수였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은 네 달 만에 겨우 한 경기 출전하고 또 쉬는 상황이 반복됐었다. 경기에 나서기 위해 뛰는 것과 우승을 위해 뛰는 건 다르다. 내가 서울에 처음 왔을 땐 전북에 승점 5점이 뒤진 2위였다. 지금은 그 반대다. 그런 점에서 동기부여가 많이 다르다.


듣다 보니 스타기질이 다분한 것 같다. 압박감을 즐긴다는 건 그만큼 기대받는데 따른 두려움도 없다는 건데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나중에 내 아들이 나를 보고 아빠 같은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피플+]"난 K리그 스타일" 외치는 일본인, 에스쿠데로



“이 팀 뭔가 이상해, 다들 왜 이렇게 친해?”


스물네 살 치곤 너무 성숙한 답변 아닌가. (웃음) 좀 편한 얘기 해보자. 팀 동료들과는 많이 친해졌나? 누가 제일 잘해주나
(고)광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재밌는 친구다. (김)진규, (한)태유, 하비(바르셀로나의 사비에 빗댄 하대성의 팀내 별명)가 있고…. (정)조국, (고)요한, (강)정훈 등 두루두루 다 친하다.


특히 서울은 외국인선수들끼리 관계가 굉장히 좋지 않나
그렇다. J리그에선 외국인선수끼리 사이 안 좋은 경우가 많은데, 우리 동료들은 정말 나를 잘 대해준다. 몰리나, 데얀, 아디와는 형제 그 자체다. 생각해보라. 네 명 모두 국적이 다르다. 이러면 오히려 잘 지내기 힘든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 서울 선수들은 전부 가족까지 포함해서 다 친하다. 아디는 큰 형 같다. 데얀은 내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선수다. J리그에도 워싱턴 같은 좋은 공격수가 있지만, 데얀은 오른발, 왼발, 앞, 뒤 어디로도 골을 넣을 줄 아는 스트라이커다. 몰리나는 경기가 힘들 때 차이를 만들어낼 줄 아는 선수다. 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다. 포지션이 비슷하다 보니 데얀과 몰리나를 보며 많이 배우고 싶다.


서울 얘기를 하는 내내 얼굴 표정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립서비스가 아닌, 진심으로 서울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운가 보다
정말 좋다. 매일 훈련장 가는 게 마치 파티 가는 것처럼 즐겁다. (웃음) 경기 때도 마찬가지다. 또 내가 트위터를 하는데, 서울 팬들이 정말 많이 좋은 얘기를 해주며 응원해준다. 감사한 일이다.


그가 말하는 귀화의 필요충분조건


조금 민감한 질문이다. 올해 초 한국에선 에닝요(전북)과 라돈치치(수원)의 귀화 문제를 두고 말이 참 많았다. 여전히 한국에선 귀화 선수에 대한 여론이 썩 좋지 못한 편이다. 일본 귀화 선수로서의 갖는 생각이 궁금하다
일본 역시 귀화 자체는 쉽지 않다. 한 팀에서 5년을 지내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5년이라도 우라와에 2년 있다가, 교토 상가에서 3년 뛰었던 선수라면 불가능하다. 또 20세 이하는 귀화가 불가능하다. 내 경우엔 아버지가 함께 귀화를 하신 덕분에 가능했다. 또 일본어를 쓰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일본어 배우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손사래를 치며) 진짜 힘들었다. 그런데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네가 어느 나라에 가서 뛰고, 어느 나라 국적을 선택하더라도 그 나라의 음식을 먹고, 말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라고. 외국인 선수라해서 따로 지내거나 혼자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늘 한국 선수들과 어울리며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고 한다.


핵심을 찌르는 얘기인 것 같다. 한참 얘기하다 보니 약속한 인터뷰 시간을 벌써 다 써버렸다. 아쉽지만 마지막이자 중요한 질문 하나 던진다. 요즘 서울 팬들에게 인기 좋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 빗대 “오빤 탱크 스타일”이라 부르기도 하더라. 6개월 단기 임대라 일단 서울 유니폼을 입는 건 올해 말까지다. 팀에 애정도 많으니 더 오래 남고 싶은 마음은 없나
처음 여기 왔을 때 최용수 감독님이 해준 얘기가 있다. 서울에서 열심히 해 실력을 키운다면 머지않아 일본 대표팀에도 선발될 거라고. 맞는 말이다. 다만 내가 남고 싶다고 남는 건 아니지 않나.(웃음) 팀이 나를 더 데리고 싶고 있게 만드는 게 나의 목표다. 몸으로 보여주겠다. 일단 올 시즌 목표는 우승이다. 만약 내년에 팀에 잔류하고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갔는데 우라와 레즈와 만난다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웃음)




전성호 기자 spree8@
사진=FC 서울 제공, 정재훈 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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