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선호 기자]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자 정·관·언론계 고위층에 로비를 하려고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설범식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에 대한 속행공판을 12일 밤늦은 시각까지 진행했다.
공판에는 라 전 회장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총무부 내 임원부속실에서 근무했던 신한은행 본부장 박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신 전 사장 변호인 측은 박씨가 업무지원팀장을 맡고 있던 당시에 검찰이 압수한 이동식저장장치(USB)를 공개했다.
USB 안에는 '2010년 9월2일자 방문대상자'라는 파일 안에 '면담 대상자 명단'을 추려 놓은 목록이 발견됐다. 여기에는 MB정부 실세들의 이름이 정리돼 있었다. 이상득 당시 새누리당 의원,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 국회, 정부 인사들과 언론사 사장 2명의 이름도 올라 있었다.
2009년 4월 라 전 회장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차명계좌로 관리해온 50억원을 건넸다는 혐의로 검찰에 소환됐다. 검찰은 차명계좌를 확인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라 전 회장은 2010년 3월 4연임에 성공했다. 현행법에 금융회사 임원은 "신용질서를 해칠 우려가 없는 사람"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에 라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계속됐다면 연임은 장담할 수 없었다.
검찰 수사는 종결됐지만 곧 바로 정치권에서 또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주성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라 전 회장의 금융실명제 위반 혐의를 지적하면서 2010년 8월 금융감독원은 검찰에 수사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라 전 회장은 금감원으로부터 직무정지 3개월 처분을 받고 11월 회장에서 물러났다.
USB 목록을 정리한 박씨는 실제 정관계 고위층 로비 가능성을 일축했다. 박씨는 "당시 라 회장의 비서로 파일을 작성한 것은 맞지만 계획대로 실행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박씨는 "라 전 회장에게 실제로 이 파일을 전달한 기억이 없다"며 "사실상 비서로 있었기 때문에 이런 자료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선호 기자 like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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