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탈> 마지막회 KBS2 목 밤 9시 55분
애초에 강토(주원)와 슌지(박기웅)를 움직인 것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앞에서 느껴야 했던 분노였다. 사토 히로시를 각시탈로, 소학교 선생을 제국 경찰로 바꿔 버릴 만큼 분노는 힘이 있지만, 분노에만 기댄 삶의 말로는 파국이다. 목단(진세연)만 곁에 있다면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슌지는 강토를 향해 쏜 총알을 목단이 대신 맞고 죽으면서 완벽하게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틈이 봉쇄됐다. 마지막까지 목단을 향한 그의 감정은 강제와 억지로 점철되었고, “널 위해서”라는 시혜적 사랑으로 시작해 분노로 끝났다는 점은 일제의 거시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의 메커니즘과 닮아 있다. 이처럼 <각시탈>은 개인의 감정의 움직임이 비인간적인 사회 체제와 궤를 같이 해 나가는 과정을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그려냈고, 그 전형인 “분노의 노예” 슌지는 결국 절망만을 안고 자살한다.
반면 강토의 분노는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에서 조금씩 벗어나 왔다. 처음에는 형의 복수라는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이유만을 위해 탈을 썼지만 “눈길 닿는 곳 마다 괴로운 사람들이 많아” 탈을 벗을 수 없게 되면서부터 그의 분노는 공동의 것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결점의 완벽한 영웅 각시탈이 아니라 두려워 울고 정체를 들킬까봐 노심초사해 하며 사투 끝엔 언제나 만신창이가 돼야만 했던 고통 속 인간이었고, 자신만을 믿기 보다 그 고통을 나누려는 동지들을 통해 “단결”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강토가 “원흉” 우에노 히데키(전국환)의 “악행을 응징”했을 때 그것은 즉각적이고 우발적인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그간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진화된 분노의 결과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 명의 각시탈에서 출발한 분노는 거리로 나온 수많은 각시탈들의 그것과 함께 하면서 한 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영웅의 서사는 마지막에 이르러 독창을 넘어 합창으로 그 품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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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정지혜(TV평론가) 외부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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