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해하(垓下)는 애잔한 역사로 유명하다. BC 202년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가 한왕(漢王) 유방(劉邦)에 맞서 최후의 일전을 벌여 패퇴한 곳이다. 산을 뽑을 힘과 세상을 덮을 기세를 가졌던 항우였지만 밤마다 울려퍼지며 향수를 자극하는 초나라 노래에는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사람은 심리적 안정이 흔들리게 되면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힘들다.
경제활동에서도 신뢰가 무너지고 불안감이 조성되기 시작하면 그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런(Run)이란 말로 표현한다. 대표적인 것이 은행의 지급능력을 믿지 못해 예금인출이 잇따르는 뱅크 런(Bank Run)이다.
최근 국내 부동산시장에서는 집값 급락 걱정에 주택 매도행렬이 이어지는 하우스 런(House Run)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집값이 연일 하락해 고점대비 30% 정도 내려갔다. 올라간 물가를 감안하면 사실상 40% 이상 떨어지면서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이 애물단지로 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집을 사려는 사람은 자취를 감췄다. 주택거래는 3분의 1 이상 줄고 빚 내 집을 산 하우스푸어들의 고통은 말이 아니다. 대출상환 부담에 여가활동은 고사하고 필수지출항목인 자녀교육비와 의료비까지 줄여야 할 정도이다.
담보금융권의 건전성 관리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집값이 담보가치 이하로 추락하고 대출연체율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금융기관들이 대출회수에 나선다면 더 많은 가계가 집을 팔려고 해 가격하락이 가속화될 것이다. 일본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주택가격 하락은 경제에 깊고 큰 상처를 남긴다. 더욱이 우리는 부동산이 가계자산의 74%를 차지한다. 고령층일수록 생활비 마련을 부동산에 의존하는 비율도 높아 집값 하락의 충격을 감내하기 어렵다.
부동산 불황은 비단 집을 가진 사람의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건설투자가 우리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5%에 달한다. 주택건설은 건설업뿐 아니라 중장비, 철강, 가전, 가구업종과 밀접하다. 중개업소부터 도배, 이사짐센터 등 수많은 자영업자들도 주택거래에 의존해 살아간다.
이러한 절박함을 대변해 정부는 십여차례가 넘게 부동산거래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금요일 금융위원회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적용할 때 40세 미만 무주택 직장인에 대해서는 '10년 뒤 예상소득'을 반영키로 한 것도 주택거래를 살리려는 고심의 발로이다.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집값 전망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 도입돼 시장을 왜곡하는 규제나 제도를 없애야 한다. 특히 민간의 주택품질 혁신 노력을 억누르는 분양가상한제와 거래활력을 저하시키는 다주택자 중과제는 조속히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택거래에 대한 부담도 덜어주어야 한다. 지금의 취득세, 양도세는 과거 매매차익이 좋을 때에 맞춰져 있다. 현실에 맞게 과감히 낮춰 줄 필요가 있다. 은행들도 대출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한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주택담보대출액만 80조원에 달한다. 비오는데 우산을 뺏어서는 곤란하다. 대출자의 사정을 고려해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고 최소한 대출이자를 급격히 올리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부동산만큼 국민적 관심이 크고 다루기 어려운 과제가 없다. 방치하거나 회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냉철한 판단과 현명한 대처만이 침체된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건강하고 활기찬 주택거래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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