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문신 이유태 후손들, “성역화 한다더니 복합커뮤니티센터 건설로 훼손” 주장
[아시아경제 이영철 기자] “일제 때도 지켜낸 묘역이 세종시 개발로 훼손될 위기다.”
조선 중기 유학자 문헌공(文憲公) 초려(草廬) 이유태(1607~1684) 선생의 묘역이 세종시 개발로 위기에 빠져 경주이씨종친회가 화가 잔뜩 났다.
이유태의 직계후손인 이달우(57·공주대 교수)씨를 비롯한 후손 15명이 7일 충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묘역이 훼손되면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의 ‘초려선생묘역 성역화사업’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묘역인 공원녹지를 관통하는 복합커뮤니티센터의 설계변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초려 이유태는 벼슬을 거부하며 살았음에도 조선왕조실록에 관련기록이 360번이나 나오는 인물이다. 선생은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율곡의 경세치용과 사계 김장생의 예학을 계승발전시킨 기호유학의 대가다.
효종 때 그를 김집, 송준길, 송시열, 권시 등과 함께 ‘산림오신’으로 불렀고 현종 땐 15년간 이조참판 등 22번에 걸친 중책에 임명됐으나 나가지 않았다. 또 숙종원년에는 대사헌에 제수되기도 했다. 특히 병자호란 뒤 피폐해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4만자에 이르는 국정쇄신책을 적은 ‘기해봉사’ 상소를 올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연기군 남면 종촌리 산324번지 그의 묘는 일제 때부터 훼손위기가 있었지만 유림들이 이를 막았다. 1904년 호남선 철도개설과 일제의 방목장 개설추진 때 유림이 청원과 연명투쟁을 벌여 묘 이전을 접었다.
1966년에도 조치원~판교간 철도 계획 때도 충청 유림의 청원으로 정부가 계획을 바꿨다. 이런 이유태의 묘가 세종시 개발바람으로 위기에 놓였다.
문중대표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이 만나 ‘성역화사업 추진’을 약속했으나 복합커뮤니티센터 건설이 발목을 잡았다.
이달우 교수는 “행복청이 말했던 것과 달리 현장조사결과 복합커뮤니센터 약 5분의 1면적이 문중부지를 파고들고 있었다”며 “마치 비수로 묘역 옆구리를 찌르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문중들은 특히 “2004년 충남도에 묘역 문화재지정을 신청했음에도 8년째 감감무소식인 이유가 행복청이 LH공사의 개발논리에 현혹돼 고의로 지정을 늦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날 문중들은 ‘초려선생묘역 성역화사업’의 문제점으로 ▲문화재 지표조사 ▲문화재 지정 고의적 지연 ▲복합커뮤니티센터 건설타당성을 들고 나섰다.
문중들은 8일 오전 11시부터 묘역에서 위령고유제를 갖고 오후 1시부터 행복청 앞에서 전국유림궐기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영철 기자 panpan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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