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5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세이부 라이온즈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포스팅 결과를 공개했다.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구단은 보스턴 레드삭스. 적어낸 포스팅 금액은 무려 5111만 달러(약 598억 원)였다. 돈다발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보스턴 구단은 마쓰자카에게 입단 조건으로 바로 6년 5200만 달러(약 608억 원)를 제시했다. 모험이었다. 마쓰자카는 이전까지 메이저리그 마운드 경험이 전혀 없었다. 리그에서 통할지 여부가 불투명했던 셈. 그래서일까. 다수 야구팬들은 보스턴 구단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라이벌 구단인 뉴욕 양키스의 영입을 저지하기 위한 꼼수인지, 마쓰자카를 실제로 절실하게 원하는지 등등이다.
포스팅 결과가 발표되자 2004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칼럼니스트 피터 개먼스는 바로 ‘ESPN 인사이더’에 칼럼을 기고했다. 주 내용은 보스턴이 마쓰자카를 영입하는 세 가지 이유였다. 그는 보스턴이 에이스 조시 베켓과의 원투펀치 구축, 일본 시장에서의 ‘국민구단’ 입지 확보, 구단 수익 증가 등을 동시에 노린다고 내다봤다. 가장 강조한 건 구단 수익 증가. 경제대국 일본의 기업에게서 쏟아질 스폰서 제안, 펜웨이파크를 찾게 될 일본인 관광객, 구단상품의 일본 내 판매 등이 큰 수익과 연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칼럼에서 마쓰자카를 ‘투자대상(Investmentposted)’으로 규정한 건 이 때문이었다. 그는 보스턴이 에이스 보강, 구단 수익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역설했다. 보스턴 팬들은 주장을 그리 의심하지 않았다. 개먼스가 오랫동안 유력 지역지인 ‘보스턴 글로브’에서 담당기자로 활동하며 존 헨리 구단주 등 구단 수뇌부와 막연한 친분을 과시했던 까닭이다.
여론의 응원에 힘을 얻은 보스턴 구단은 12월 14일 마쓰자카의 입단을 공식 발표했다. 나흘 뒤인 18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북한의 핵 문제를 둘러싼 6자 회담이 열렸다. 당시 미국 측 협상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차관보는 독특한 복장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기자들 앞에 선 그는 세이부 선수단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브리핑에 앞서 힐은 “마쓰자카가 보스턴의 유니폼을 입게 되어 너무 기쁘다”라며 방긋 웃었다. 그는 보스턴의 열성 팬으로 유명하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뛴 박찬호(한화)가 2005년 4월 30일 보스턴전 선발투수로 예고되자 직접 전화를 걸어 “살살 던져달라”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건 힐뿐만이 아니었다. 미국과 일본의 다수 언론들은 시즌 전까지 기사를 통해 마쓰자카가 ‘제2의 스즈키 이치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CBS 스포츠라인’ 의 칼럼니스트 그렉 도옐이 대표적이다. 그는 마쓰자카가 보스턴 행을 확정짓기 전인 그해 11월 5일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마쓰자카는 ‘제2의 이치로’보다 ‘제2의 이라부 히데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전자가 된다 할지라도 현재 거론되는 포스팅 예상금액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느 구단이 마쓰자카를 영입하던 간에 웃는 자는 세이부 구단과 중간에서 에이전트 수임료를 챙기는 스캇 보라스가 될 것이다.”
숱한 화제를 몰고 다녔던 마쓰자카는 어느덧 메이저리그 6년차 선수가 됐다. 보스턴과의 계약은 올해로 만료된다. 현재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뛰며 메이저리그 복귀를 준비한다. 얼마나 성적을 낼지는 더 지켜볼 일. 하지만 보스턴은 6년 전 포스팅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명제를 부정하기 어렵게 됐다. 마쓰자카가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6년을 되돌아본다.
화려한 외출
보스턴이 마쓰자카 영입에 성공하자 ‘보스턴 글로브’는 바로 그를 소개하는 특집기사를 마련했다. 내용은 칭찬 일색이었다. 마쓰자카를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 싱커, 고속 슬라이더, 슬라이더, 체인지업, 스플리터, 커브 여기에 자이로볼까지 던지는 만능투수로 포장했다. 모든 구종은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통할만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당시 지바롯데 수장이던 바비 발렌타인 보스턴 감독도 칭찬릴레이에 동참했다. 그는 일본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을 확인했지만 마쓰자카를 능가할만한 투수는 보이지 않았다. 마쓰자카는 지구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기량을 갖췄다. 최고구속 159km의 강속구에 수준급의 다양한 변화구를 정교하게 던진다.”
흥이 난 일본기자들은 역대 최고 컨트롤 아티스트(통산 355승 227패 평균자책점 3.16)로 불리는 그렉 매덕스와의 비교를 부탁했다. 당황스러울법한 질문에 발렌타인 감독은 주저하지 않았다.
“매덕스는 마쓰자카만큼 빠른 공을 던지지 못 했다. 오히려 변화구의 예리함은 마쓰자카가 더 나아 보인다. 한마디로 마쓰자카는 평균구속 153km을 던지는 매덕스다. 당장 내년부터 로이 오스왈트(2006년 15승 8패 평균자책점 2.98 기록)와 비슷한 수준의 피칭을 선보일 것이다.”
계속된 칭찬에 마쓰자카는 메이저리그 성공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해 12월 일본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대단한 피칭을 선보이던 선배들은 하나같이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도망가는 소극적인 투구를 펼쳤다. 특히 선발투수들은 더 그랬다. 나는 다르다. 일본에서처럼 정면승부로 타자들을 잡아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패널로 함께 출연한 사사키 가즈히로(메이저리그 통산 129세이브)는 우회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는 “오른손타자의 바깥쪽 낮은 코스로 완벽하게 꽂히는 시속 153km의 직구를 던진 적이 있다. 그 볼이 밀어 친 타격으로 세이프코 필드 오른 담장을 넘어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나도 일본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며 “그런 일을 실제로 겪어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듬해 마쓰자카는 스프링캠프부터 빼어난 투구를 선보였다. 시범경기 5경기에 선발 등판해 21.1이닝 동안 피안타율 0.147을 기록했다.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빠른 공과 현란한 변화구를 앞세워 26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기도 했다. 평균자책점 역시 2.91에 불과했다. 정규시즌에서도 상승세는 계속됐다. 마쓰자카는 메이저리그 데뷔전이던 4월 5일 커프만 스타디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1실점 호투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잡아낸 삼진은 무려 10개. 동양인의 메이저리그 데뷔전 가운데 최다였다.
마쓰자카는 5월 1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에서 8이닝 3실점 호투로 시즌 5승째를 따냈다. 그 덕에 아메리칸리그 5월 셋째 주 MVP를 수상했다. 상승곡선은 6월이 지나서도 꺾이지 않았다. 6월 한 달 동안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하며 전반기를 10승 6패 평균자책점 3.84로 매듭지었다. 그리고 9월 28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8이닝 2실점 역투를 펼쳐 팀의 5-2 승리 견인과 동시에 15승째를 올렸다. 이날 승리로 보스턴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확정지었다. 화룡점정을 찍은 마쓰자카는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데뷔 시즌 15승과 200탈삼진을 동시에 기록한 다섯 번째 선수로 거듭났다.
하지만 그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후반기 14경기에서 5승 6패 평균자책점 5.19를 남기며 하락세를 그린 탓이다. 마쓰자카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보낸 8년 동안 72차례 완투를 뽐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대명사로 손꼽힌 주된 이유다. 하지만 이런 그도 메이저리그 진출 첫 시즌 맞은 여름 앞에서는 다소 힘겨워하는 모습을 노출했다. 다수 미국 야구관계자들은 강점으로 알려진 체력에 조금씩 의심의 눈빛을 보냈다. 우려는 포스트시즌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보스턴은 10월 5일 펼쳐진 LA 에인절스와의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2차전 선발투수로 커트 실링이 아닌 마쓰자카를 예고했다. 후반기 하락세와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에서의 부진(평균자책점 4.86)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보스턴에게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마쓰자카는 정규시즌 한 차례도 에인절스 타선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간 정규시즌 처음 만난 선수단들을 상대로 평균자책점 3.15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마쓰자카의 낯선 공이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믿은 셈이다.
결과는 보스턴의 기대와 거리가 멀었다. 마쓰자카는 5이닝을 채우지도 못하고 3실점(4.2이닝)한 뒤 강판됐다. 패전은 면했다. 보스턴은 이후 타선의 폭발에 힘입어 6-3으로 승리했다. 마쓰자카는 열흘 뒤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 다시 한 번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이번 역시 결과는 좋지 않았다. 4.2이닝 동안 4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마쓰자카는 7차전에서 5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내며 부진을 일부 만회했다. 타선이 11점을 뽑아낸 덕에 그는 여유롭게 승리를 획득했다. 화력 지원은 월드시리즈에서 이어졌다. 마쓰자카는 27일 콜로라도 쿠어스필드에서 열린 콜로라도 록키스와의 월드시리즈 3차전에 선발 등판, 5.1이닝(2이닝)을 책임지는데 그쳤지만 타선이 10점을 뽑아내 일본인 메이저리거 최초로 월드시리즈에서 선발승을 올린 주인공이 됐다. 선수단은 다음날 4차전을 4-3으로 이겨 3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정규리그 15승과 월드시리즈 우승반지. 하지만 마쓰자카에게서 처음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의 호기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는 결코 만만한 무대가 아니었다.
마쓰자카는 2008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전략을 뜯어고쳤다. 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빠른 직구보다 정확한 제구에 신경을 쏟을 것, 변화구는 카운트를 잡는 용도보다 철저하게 유인구로 활용할 것, 장타자와의 대결에서 볼넷을 허용하더라도 장타를 피할 것 등이다. 그는 정확한 제구력 확보를 위해 투구 시 보폭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대한 타자 앞에서 공을 던지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내밀던 습관도 과감하게 버렸다. 대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팔의 높이를 조금 올려 보다 높은 타점에서의 직구 움직임을 최대화하려 했다. 물론 변화구의 떨어지는 각도도 커질 것을 함께 노렸다. 슬라이더 구사 시 나왔던 특유 투구버릇도 지우려 했다. 자신도 모르게 팔 높이가 내려가는 것을 교정해 타자들의 게스히팅에 대비했다.
기괴한 커리어하이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테리 프랑코나 당시 보스턴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의 마쓰자카 투구에 상당한 만족감을 보였다. 이내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도쿄돔 개막전 선발투수로 그를 낙점했다. 일본인으로는 2003년 LA 다저스에서 뛴 노모 히데오 이후 두 번째 쾌거였다. 마쓰자카는 고향 팬들의 응원 속에 5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성적은 미국으로 돌아간 뒤 더 좋아졌다. 시즌 개막 뒤로 8연승(무패)을 내달렸다. 5월 27일 오른 어깨 회선근건판 통증 호소로 부상자명단에 올랐지만 그는 25일 만인 6월 21일 메이저리그로 복귀했다. 그리고 전반기를 10승 1패 평균자책점 2.65로 매듭지었다.
변화의 근원은 제구에 있었다. 2007시즌 148.8km였던 직구 평균구속은 147.2km로 약 2km가량 감소했다. 타자의 몸 쪽과 바깥쪽을 찌르는 제구는 달랐다. 왼손타자를 상대로 몸 쪽으로 던진 컷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바깥쪽으로 뿌린 체인지업과 커브는 타이밍을 빼앗는데 주효했다.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는 종으로 크게 떨어지는 슬라이더와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가 비슷한 역할을 해냈다. 그 덕에 마쓰자카는 전반기 소화한 88.1이닝 동안 볼넷 57개를 남발하면서도 피안타율을 2할2리로 끌어내렸다.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비결이다. 차곡차곡 승리를 쌓아가던 마쓰자카는 9월 21일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7이닝 2안타 무실점 역투를 펼쳐 시즌을 18승 3패 평균자책점 2.90으로 마무리했다. 특히 승수는 2000년 전성기를 달리던 박찬호가 다저스에서 남긴 수치와 같았다.
사실 18승은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성된 결과였다. 잦은 유인구 승부로 발생된 많은 투구 수(이닝 당 투구 수 아메리칸리그 2위), 이에 따른 많은 볼넷(94개, 아메리칸리그 전체 1위), 타자들의 배트 중심을 비켜 맞으며 생긴 낮은 피안타율(0.211), 구원 투수들의 호투로 인한 자책점 가산 최소화(기출주자 실점 2점), 타선의 득점지원(경기당 6.1점) 등이다. 기록은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더 기괴하다. 마쓰자카의 9이닝 당 볼넷 5.05개는 규정이닝(162이닝)을 채운 88명의 메이저리그 투수 가운데 가장 많았다. 0.645였던 피OPS(출루율+장타율)는 규정이닝을 채운 아메리칸리그 투수 가운데 세 번째로 좋지 않았고 14번의 퀼리티스타트는 규정이닝을 소화한 88명의 메이저리그 투수 가운데 66위였다. 퀼리티스타트(6이닝 3실점 이하) 성공률도 48%(29회 선발등판 14회 퀼리티스타트)로 64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마쓰자카는 퀼리티스타트에 실패한 15경기에서 무려 7승을 챙겼다. 이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뛴 메이저리그 투수 가운데 최다다. 1.64의 삼진/볼넷 비율도 빼놓을 수 없다. 규정 이닝을 채운 메이저리그 투수 88명 가운데 75위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볼넷 90개 이상을 내주고도 규정이닝을 채우며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남긴 투수의 출연은 1992년 이후 16년 만이었다. 무엇보다 167.2이닝은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18승 이상을 거둔 투수들 가운데 가장 적은 이닝 소화였다. 팀 동료였던 션 케이시는
이 같은 마쓰자카의 피칭에 다수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마술 쇼(Magic Show)’라며 혀를 내둘렀다. 팀 동료였던 션 케이시는 “볼 때마다 경이롭지만 어느덧 팀 동료 모두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밝혔다. 데이빗 오티스도 “상대 타자들을 메이저리그 경기에 처음 나서는 신인처럼 굳어버리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카를로스 페냐는 “마쓰자카에게는 위기 상황을 피하는 45가지의 투구패턴이 있는 것 같다. 그 많은 투구패턴의 사인을 다섯 개의 손가락만으로 내는 포수 제이슨 배리텍이 위대해 보인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18승 뒤에 숨겨진 어두운 그림자로 마쓰자카를 향한 보스턴 구단 수뇌부의 신뢰는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일본식 트레이닝 고집 그리고 줄 부상
마쓰자카는 2009년 보스턴 구단의 만류에도 불구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 일본의 2회 연속 우승을 견인했다. 그는 2006년 1회 대회에 이어 또 한 번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타구니 근육 부상을 당해 시즌 개막 뒤 두 차례나 부상자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패 평균자책점 8.82로 부진하던 마쓰자카는 6월 2일이 되어서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상대로 첫 승(5이닝 1실점 6탈삼진)을 신고했다. 하지만 6월 21일 오른 어깨 통증을 호소, 이내 시즌 세 번째로 부상자명단에 등록됐다. 복귀는 9월 1일이 되어서야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마쓰자카는 보스턴 구단과 적잖은 의견충돌을 빚었다. 그 주된 근원은 몸을 축나게 하는 마쓰자카의 일본식 훈련방식 고수였다. 보스턴 구단은 4일간의 휴식 동안 불펜 투구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훈련에 거부감을 보였다. 불만은 마쓰자카에게도 있었다. 투구 수 100개를 넘어가면 강판을 지시하는 투수 운영방식에 자주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같은 문제는 보스턴 지역 언론은 물론 일본 취재기자들의 침묵 속에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갈등이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09년 7월 일본 스포츠잡지 ‘아라타니 S’를 통해서였다. 마쓰자카는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는 요시이 타에코와의 인터뷰에서 보스턴의 투수 운영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보스턴 코칭스태프는 투구 내용과 경기 상황에 관계없이 투구 수 100개만 넘어가면 어김없이 마운드로 올라와 교체를 종용한다. 내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 관리다. 경기를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에이스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쓰자카는 ‘어깨는 쓰면 쓸수록 강해지고 제구력은 던지면 던질수록 좋아진다’라고 일컫는 일본식 트레이닝 방법의 대표적인 신봉자다.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불펜피칭을 하루 최대 250개나 던진 건 여기에서 비롯된다. 보스턴 구단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구단 관계자는 “어깨는 쓰면 쓸수록 닳는 소모품에 가깝다”라며 “어깨를 강화하는 방법은 웨이트트레이닝뿐”이라고 밝혔다.
3년여 동안 펼쳐진 신경전 속에 마쓰자카의 불펜 투구 수는 100여개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보스턴 구단은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들의 평균인 30~50개 정도로 더 줄이고 싶어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마쓰자카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구속이 점점 떨어졌다. 체력도 급격히 떨어져 불펜투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보스턴 구단의 주장에 마쓰자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스턴 구단이 메이저리그 방식의 연습을 계속 강요한다면 일본에서 던졌던 투구를 재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웨이트트레이닝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지만 나는 조시 베켓이나 조나단 파펠본과 같은 백인이 아니다. 근육 크기나 골격, 근육형성도 등이 모두 다른 동양인이라 그들과 똑같은 훈련을 소화해선 절대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없다. 나는 동양인에 어울리는 훈련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할 뿐이지,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내 방식대로의 훈련을 제지하는 보스턴 구단 직원에게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냐고 몇 차례 따진 적이 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항상 같았다. 인종차별이 절대 아니라고 했다.”
인터뷰 내용은 바로 영어로 번역되어 인터넷, 라디오 등을 통해 보스턴 전역으로 퍼졌다.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진 건 불 보듯 뻔했다. 구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전한 WBC, 줄 부상 등이 다시 한 번 거론되며 이내 팀 내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마쓰자카는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쟁쟁한 이력을 쌓은 일본인 투수들이 메이저리그에만 진출하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고 한다. 그들은 이를 기량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몸에 맞지 않는 훈련방식을 강요당해 생긴 문제에 더 가깝다. 그간 경험을 통해 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이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미국으로 건너올 일본인 투수들의 미래를 위해서다.”
마쓰자카는 결국 보스턴 구단으로부터 어깨 부상 회복 시 자신만의 방식대로 훈련을 할 수 있다는 타협안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인터뷰 내용이 알려진 7월 28일 보스턴 구단 및 지역 매체들은 일제히 마쓰자카를 공격하고 나섰다. 포문을 연 건 테리 프랑코나 당시 보스턴 감독이었다. 그는 “매우 실망스럽다. 자신의 의견을 미디어에 이야기하는 것은 자유지만 극비사항인 팀의 미팅내용까지 까발리는 건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라며 화를 냈다. 존 패럴 투수코치는 “우리는 1억 달러(약 1170억 원)를 들여 마쓰자카를 데려왔다. 나를 포함한 코칭스태프 모두는 그간 그가 최고의 컨디션에서 경기에 출장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라고 말했다.
‘보스턴 글로브’도 가만있을 리 없었다. 바로 기사를 통해 “마쓰자카는 자기밖에 모르는 공주와 같다. 자신이 에이스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으로 일관한다”라고 비아냥댔다. 이어 “마쓰자카는 지난 2년 동안 33승을 올렸으니 에이스의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농담하는 것인가? 그의 승수는 타선의 지원과 구원투수진의 호투로 만들어졌다”라고 혹독한 비난을 쏟아냈다. 보스턴 구단은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지역 언론 기자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구단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이나 선수들의 개인별 트레이닝 방법 그리고 팀 미팅 내용 등은 야구단의 기밀사항에 해당된다. 이를 폭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구단은 마쓰자카의 발언에 깊은 실망을 넘어 격노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땅볼 투수 변신, 왜?
마쓰자카는 트레이닝 방법을 둘러싼 소용돌이를 뒤로 한 채 재기의 칼을 갈았다. 그 키워드는 직구 구속의 회복과 땅볼 투수로의 전환이었다. 2007년 148.8km였던 직구 평균 구속은 2009년 146.6km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인지 60.9%였던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도 2년 사이 55.8%로 줄어들었다. 떨어지는 직구 구속에 더해진 불안한 제구는 곧 변화구의 위력 감소로 이어졌다. 마쓰자카는 세이부 시절 다섯 가지의 변화구를 구사하는 투수였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 위력적이라고 인정받은 구종은 하나도 없었다. 변화구가 스트라이크 존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까지 간파되면서 타자들은 좀처럼 유인구에 속지 않았다. 마쓰자카는 총체적인 부진의 해결 차원에서 직구 평균 구속을 150km까지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 특히 투심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의 완성도를 높여 플라이를 이끌어내던 기존 스타일 대신 땅볼을 잡아내는데 주력했다.
겉보기에 새 항해는 순탄하지 않았다. 마쓰자카는 2010시즌 시범경기에서 난타를 당했다. 이유가 있었다. 시범경기를 투심패스트볼을 시험하는 장으로 여겼다. 그는 이어진 정규시즌에서 계획대로 직구 평균 구속을 끌어올렸다. 150km는 아니었지만 이에 근접한 148.4km였다. 직구는 전체 투구 가운데 38.7%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포심 패스트볼의 비율은 4.8%에 그쳤다. 투심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을 각각 15%와 18.9%의 비율로 나뉘어 던졌다. 메이저리그 구속 통계를 살펴보면 투심 패스트볼은 포심 패스트볼에 비해 평균 3km가량 구속이 덜 나온다. 같은 잣대로 컷 패스트볼은 평균 6~8km 더 느리게 기록된다. 하지만 마쓰자카의 투구 내용은 통념을 보기 좋게 비웃었다. 포심 패스트볼과 투심 패스트볼의 평균구속은 모두 148.4km를 찍었다. 2009년 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은 146.3km였다. 상당한 구속 상승을 기록한 셈. 이는 컷 패스트볼도 다르지 않았다. 145.2km로 2009년 142.6km보다 2.6km가량 빨라졌다. 재기의 꿈을 이루기에 충분한 성과였다.
하지만 항해는 암초에 부딪혔다. 온갖 부상이었다. 스프링캠프에서 목 부위 통증으로 고생한 마쓰자카는 부상자명단에 등록된 상태에서 개막전을 맞았다. 그는 복귀해 치른 5월 22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 7.2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쳐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등판이던 27일 캔자스시티전에서 9개의 볼넷을 남발하며 2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왔다. 마쓰자카는 6월 8일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8이닝 4피안타 무실점을 기록, 미일 통산 150승을 올리는 감격을 누렸다. 하지만 나흘 뒤 오른 팔꿈치 통증으로 다시 부상자명단에 올랐다.
변종직구(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의 구속을 올렸지만 타자들은 여전히 변화구에 잘 속지 않았다. 땅볼도 생각만큼 많이 나오지 않았다. 땅볼/뜬공 비율은 0.87이었다. 9승 6패 평균자책점 4.62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2010시즌이 마감된 이유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땅볼/뜬공 평균 비율은 0.8이었다. 마쓰자카는 153.2이닝으로 규정이닝도 채우지 못했다. 내준 볼넷도 74개나 됐다. 구속 상승에도 불구 2008시즌부터 시달린 장타 허용에 대한 공포를 떨쳐내지 못했다.
지난 시즌의 흐름도 2010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구는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했다. 마쓰자카는 개막 이후 치른 2경기에서 7이닝 동안 10실점하며 흔들렸지만 4월 18일 토론토를 상대로 7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그는 4월 23일 만난 LA 에인절스 타선마저 8이닝 9탈삼진으로 넉 다운시키며 15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선보였다. 하지만 상승세는 또 한 번 부상에 꺾이고 말았다. 에인절스전 이후 오른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마쓰자카는 5월 17일 부상자명단에 등록됐다. 일본으로 돌아가 받은 정밀검진에서 그는 팔꿈치인대접합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팔꿈치 치료의 권위자로 불리는 루이스 요컴 박사에게 받은 결과 또한 다르지 않았다. 결국 마쓰자카는 시즌을 포기, 6월 10일 수술대에 올랐다. 그해 남긴 성적은 3승 3패 평균자책점 5.30. 규정이닝은 3년째 채우지 못했다.
순탄치 않은 마운드 복귀
마쓰자카가 그간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다양하게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더 무게가 쏠리는 건 부정적인 시선이다. 보스턴 구단이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한 까닭이다. 실패 원인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거론된다. 첫째는 화려한 포장에 비해 내실이 부실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체격조건, 구종의 완성도, 제구력, 체력, 마인드 등 기본적인 구성요소가 모두 포함된다. 둘째는 많은 공을 던지며 컨디션을 관리하는 일본 특유 트레이닝 방법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많은 경기는 물론 엄청난 이동거리를 소화해야 하는 메이저리그 특성과 어울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메이저리그는 일본의 6인 선발로테이션이 아닌 5인 시스템을 지향한다. 일본 특유 트레이닝은 무용지물로 전락하기 쉬웠다. 셋째는 체중관리의 실패다. 마쓰자카의 프로필상 체중은 91kg이다. 2006년의 84kg보다 7kg가량이 늘었다. 보스턴 지역 언론들은 실제 체중이 이보다 더 증가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마쓰자카에게 늘어난 몸무게는 독이 될 수 있다. 그는 미국 진출 전부터 상체에 살이 잘 붙는 체질 탓에 자칫 투구밸런스가 망가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요코하마 고교시절 은사였던 와타나베 모토노리 감독은 지난해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쓰자카는 상체 특히 복부에 살이 많이 붙어 하체를 활용한 고유 폼을 잃어버렸다. 상체로만 던지는 투구 폼이 되고 말았는데 이로 인해 오른 어깨와 팔꿈치에 과부하가 걸린 듯 보인다. 팔꿈치인대 파열의 원인 또한 여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구로다 히로키(뉴욕 양키스)도 여러 차례에 걸쳐 비슷한 충고를 내놓았다. 그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우회적으로 마쓰자카의 체중관리 부실을 지적했다. 실제로 30세를 넘긴 뒤에도 시속 145km 이상의 강속구를 쉽게 던지는 동양인투수들은 대부분 군살이 많지 않다. 구로다, 박찬호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마쓰자카가 지난 5년 동안 기록한 직구 평균구속은 메이저리그 기준과 비교해 결코 느리지 않았다. 문제는 직구의 제구력(평균 스트라이크 비율 50.1%), 공의 움직임, 트렌드로 떠오르는 변종직구(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 싱커)의 완성도 등이었다. 변화구는 말할 나위도 없다. 보스턴 구단과 에이전트 보라스가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던 자이로볼이 대표적이다. 마쓰자카는 이 공을 포심 패스트볼과 똑같은 궤적으로 날아가다 포크볼처럼 종으로 뚝 떨어지는 시속 140km 정도의 ‘마구’로 홍보했다. 하지만 자이로볼을 따로 취급한 메이저리그 관계자는 한 명도 없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다르빗슈 유는 트위터를 통해 자이로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자이로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공을 던지겠다는 목표로 연습한다면 성과는 제로일 것이다. 구사가 가능하다 해도 그만한 스피드를 붙일 수 없다. 마쓰자카가 던졌다는 자이로볼은 컷 패스트볼이나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다 손에서 빠졌을 때의 공일뿐이다.”
그렇다면 마쓰자카는 왜 여전히 땅볼보다 플라이의 비율이 더 높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포심 패스트볼의 제구와 구위는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한다. 적은 삼진 수가 이를 증명한다. 마쓰자카는 보완을 위해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한다. 하지만 아웃을 잡아낼만한 ‘킬러 콘텐츠’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플라이를 많이 유도하는 투수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보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삼진을 많이 잡고 사사구를 적게 내주며 허용하는 플라이 타구가 내야를 벗어나지 않거나 외야수 정면으로 날아간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 까닭이다. 하지만 마쓰자카의 경우는 다르다. 라인드라이브 타구 비율이 높고 장타 허용이 잦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로이 할러데이(필라델피아)를 비롯해 그라운드 타구를 유도하는 투수들이 에이스의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장타 허용을 낮춰 대량실점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라운드 타구가 모두 아웃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땅볼 제조기’로 불리는 카를로스 실바의 통산 성적(70승 70패 평균자책점 4.68)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장타 공포에 시달리는 마쓰자카가 땅볼 유도 투수로 변신에 성공한다면 적어도 장타 허용수치는 줄어들 것이다. 부담을 뺀 투구로 재기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부상 복귀 이후 보인 투구 내용은 이와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쓰자카는 30일까지 마이너리그 6경기에 등판해 30.1이닝을 소화하며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특히 땅볼/뜬공 비율은 0.66으로 메이저리그 평균인 0.80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마쓰자카는 이 같은 부진 속에서도 거듭 재기를 확신한다. 물론 이를 바라보는 보스턴 지역 언론이나 일본 매체의 반응은 싸늘하다. 5년 전의 들썩이던 모습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그저 조용하게 마쓰자카의 복귀를 기다린다.
지연되는 복귀로 가장 울상을 보이는 건 보스턴 구단이다. 많은 돈을 투자하며 계산한 당초 계획을 한 가지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조시 베켓과의 원투펀치 구축, 일본 시장에서의 ‘국민구단’ 입지 확보, 구단 수익 증가 등이다. 가장 재미를 보지 못한 건 마케팅 효과. 2007년 11월 19일 ‘보스턴 헤럴드’의 밥 브래드포드 기자가 작성한 기사에서 보스턴의 홍보담당 부사장 케네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쓰자카를 이용한 보스턴 구단의 홍보효과는 썩 괜찮았다. 일본 취재진과 일본인 관광객이 펜웨이파크에 운집했고 보도자료 발송을 요구하는 일본 언론사도 꽤 많았다. 문제는 기업과의 스폰서 계약이다. 마쓰자카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일본 기업들의 광고가 몰려들 것이라 강조했다. 하지만 수주를 요청한 건 후나이 전기가 스폰서십 계약을 조건으로 지불한 90만 달러가 전부였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스즈키 이치로가 수비하는 세이프코필드 오른쪽 외야 펜스에 일본기업의 광고를 실어 300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뉴욕 양키스는 양키스타디움에 같은 방법으로 마쓰이 히데키를 앞세워 600만 달러를 챙겼다. 두 선수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과 비교해 마쓰자카가 벌어들이는 액수는 터무니없이 적다.”
세이프코필드와 양키스타디움의 외야펜스 광고비용이 2배나 차이를 보인 건 선수의 지명도 때문이 아니다. 뉴욕은 미국 경제의 중심도시다. 더구나 양키즈의 홈경기는 서부와 동부를 포함한 미국전역에서 시청이 가능한 시간대에 열린다. 반면 시애틀의 홈경기가 열리는 오후 7시는 동부 시간으로 밤 10시다. 세이프코필드의 외야펜스 광고는 서부지역에만 유효한 홍보수단인 셈이다. 그렇다면 동부에 위치한 보스턴은 왜 마쓰자카로 재미를 보지 못하는 걸까. 케네디 부사장은 한숨을 인터뷰 도중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외야수인 마쓰이는 162경기를 출장하는 야수다. 한 시즌 내내 일본기업의 광고가 노출될 수 있다. 선발투수인 마쓰자카는 다르다. 한 시즌 30~33번 등판하는 것이 고작이다. 마운드 위에 광고판을 설치할 수도 없다. 광고 효과를 기대하는 기업 입장에서 매력적인 방법으로 생각할 리 없다.”
안타깝게도 마쓰자카는 1년여 넘게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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