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스케치북> KBS2 금 밤 12시 15분
<유희열의 스케치북> 144장의 부제는 ‘사랑학개론’이었다. 방송 첫 멘트에서 MC 유희열은 이 날을 “보통 날과는 다른 특별한 날”로 소개했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또는 가슴 아픈 사랑을 경험했었던, 아니면 앞으로 달콤한 사랑을 꿈꿀 수 있는,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시간.” 주제로 본다면 이 프로그램이 지닌 고유의 감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테마가 아닐 수 없다. 유희열이 대학교 때의 첫사랑을 위해 작곡했다는 곡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직접 연주하며 부른 오프닝 무대와 ‘기억의 습작’을 부르며 등장한 성시경의 첫 선곡은 그 기대를 더욱 부풀게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날의 방송은 유희열이 말한 첫사랑의 설렘보다는, 편안함과 심심함이 절반씩 섞인 ‘아주 오래된 연인’의 느낌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게스트 성시경, 김범수, 존 박은 이 프로그램의 익숙한 얼굴들이며, 사랑에 관한 시청자들의 사연 역시 평소 자주 접하던 사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달 폐지된 코너 ‘더 만지다’의 빈자리가 유독 커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커다란 기복 없는 안정감 역시 ‘오래된 연인’만이 가질 수 있는 내공이다. “너무 많이 불러서 이제는 금지곡으로 해줬으면 좋겠다”는 익숙함의 대표곡 ‘보고 싶다’를 두 마디로 축약해 부른 김범수의 센스처럼,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무대를 ‘사랑학개론’ 특강으로 구성하는 운영의 묘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이다. 그러니 매번 설레지는 않더라도 우리 곁에 오래 남아주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알기에, 이 금요일 밤의 친구 같은 연인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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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김선영(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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