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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돈과 권력이 법보다 세다"는 고교생들

시계아이콘01분 02초 소요

자본주의와 시장질서는 법치주의를 토대로 성립한다. 그리고 법치주의는 법에 대한 신뢰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법이 불신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는 자본주의와 시장질서가 무너진다.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고, 시장질서는 돈과 권력의 지렛대가 될 뿐이다.


법의 날인 어제 법률소비자연맹이 발표한 '고등학생 법의식 조사 결과'는 우리 법치주의의 현실과 관련해 충격적이다. 전국 고교생 3000여명을 표본으로 대면조사를 해 보니 94%가 '권력이나 재력이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법보다 권력이나 돈의 위력이 더 크다'는 응답은 87%, '우리나라 법률은 불공정하다'는 70%에 이르렀다. 가장 법을 안 지키는 집단으로는 79%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을 꼽았다.

청소년 특유의 반항심이 일부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법과 사법, 법치의 현실에 대한 고교생의 불신이 심각한 수준임에 변함이 없다. 기성세대로서는 치부를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기성세대를 대상으로 같은 조사를 해 봐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청소년이 드러낸 불신을 탓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대견하게 여겨야 할 것 같다.


사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정치 권력자의 입맛에 맞춘 판결을 서슴지 않고 내리던 법원이 민주화 이후에는 재벌을 비롯한 돈의 권력에 약한 모습을 보여 왔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 7명이 1999년 이후 총 2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뿐 아니라 평균 9개월 만에 다 사면됐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약자의 항변을 넘어 법률 이론으로 승격할 판이다.

이래서는 시장경제라는 게임의 룰이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심판이 공정하지 않은 경기에서 어느 선수가 반칙을 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려고 하겠는가. 법률소비자연맹은 이번 조사 결과와 관련해 '가정과 사회에서 제대로 된 법과 공동체 윤리 교육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했지만, 뜬금없는 말이다. 이건 청소년 교육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정의 재정립에 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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