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충무로에서]개론수업을 듣던 시절

시계아이콘01분 41초 소요

[충무로에서]개론수업을 듣던 시절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AD

[아시아경제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수지에게 반해 버렸어요'라고 말하면 다양한 반응이 돌아옵니다. 자신도 강수지를 좋아한다던 선배 교수님도 계셨고 언제 수지로 이사 갔느냐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물론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반응은 '어머, 교수님 주책이시네요'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빠져 버린 대상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배우 배수지, 아니 그가 연기한 극중 인물 서연입니다. 영화를 보고 한 달 남짓 지났는데도 가끔씩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니 제 상태는 중증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제 개인적인 체험과 놀랄 만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답십리에서 태어났고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거기서 살았습니다. 행정구역상 서울이기는 해도 궁벽하기 짝이 없던 동네에서 자란 제게 세상은 너무 압도적이어서 자주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한 여자를 '발견'하고 맙니다. 이제 돌이켜 보면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불가피한 통과의례이며, 처음으로 자신의 운명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종의 성장 과정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땐 이런 설명 따위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부유한 배경을 지닌 그녀-주변엔 압서방(영화에서 압구정ㆍ서초ㆍ방배를 이렇게 부른다고 하더군요)에 사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오빠들이 왜 그리 많던지요-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열등감을 어쩌지 못해 극단적인 자기비하와 말도 안 되는 과잉행동의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안정된 모습이라고는 털끝만큼도 보여주지 못했고 미래에 대한 자기확신이 없으니 그녀를 잡지 못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로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생각만 해도 부끄럽고 무엇보다 그 불안감을 견딜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끔 혼자 생각합니다. '이렇게 세상에 안착해서 밥은 먹고 살 줄 알았더라면 그때 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 텐데….' 물론 다 쓸데없는 생각이지요.


영화 '건축학개론'은 저와 몹시도 닮은(물론 외모는 훨씬 더 잘생긴) 스무살짜리 남자를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모여드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 혼자 유난히 심하게 앓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경험이 사실 꽤 많은 사람이 겪은 보편적 체험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묘한 연대감이 밀려왔습니다. 무뚝뚝하게만 보여 차마 말 걸지 못했던 위층 아저씨의 마음 속에도, 오직 성공에 목매고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직장동료의 마음 속에도 사랑의 열병으로 인한 화인이 하나쯤 꼭꼭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또 권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자고 있는 그 시절, 개론 수업을 듣던 시절을 흔들어 깨워 보고 싶었으니까요.


올해를 선거의 해라고 합니다. 이미 총선은 치렀고 이제 좀 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각 당은 공약을 만드느라 분주하고 정치공학적 고민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각 정치세력과 언론이 요즈음 만들어내는 말끝은 날카롭게 벼려져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말에 찔려 아플 겁니다. 정치권뿐이 아닙니다. '먹고살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냉정한 표정을 연습합니다. 지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습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세상의 냉혹함을 인정하고 견디게 되는 과정인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때때로 우리가 개론 수업을 듣던 시절을 회상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어수룩하고 어리석었으나 옆 사람의 손을 잡으려 애쓰던 그런 날들 말입니다. 때마침 봄이지 않습니까?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6.01.0914:18
    "손해 보고도 집못팔까" 걱정 덜어준다…지방 미분양 '환매보증' 첫도입
    "손해 보고도 집못팔까" 걱정 덜어준다…지방 미분양 '환매보증' 첫도입

    정부가 지방 미분양 해소를 위해 수분양자에게 일정 가격으로 되팔 권리를 보장하는 '주택환매 보증제(가칭)'를 처음 도입한다. 준공 후 미분양 1가구1주택 특례 가액기준을 6억원에서 7억원으로 상향하고, 인구감소지역 세제 특례와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CR리츠) 지원도 연장한다. 공급 측면에서는 3기 신도시 1만8000가구를 포함해 올해 5만가구 착공에 나선다. 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서

  • 26.01.0914:05
    디지털자산 제도화 본격화…스테이블코인·현물 ETF까지 제도권 편입
    디지털자산 제도화 본격화…스테이블코인·현물 ETF까지 제도권 편입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 마련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제도화에 속도를 낸다. 디지털자산 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법안) 입법을 통해 발행·유통·거래 전반을 포괄하는 규제 틀을 마련한다. 또한 디지털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기관은 9일 오후 '2026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 마련 등 디지털자산을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 26.01.0914:00
    국장 장기투자 촉진 ISA 신설…국부펀드는 20조원 규모로 출범
    국장 장기투자 촉진 ISA 신설…국부펀드는 20조원 규모로 출범

    정부가 국내 장기 주식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대폭 확대한 생산적 금융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출시한다. 투자 시 납입부터 배당까지 '더블 혜택'을 주는 국민성장펀드·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펀드도 출시한다. 국내외 산업과 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수익을 창출하는 '한국형 국부펀드'는 20조원 규모로 출범하기로 했다.9일 재정경제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60

  • 26.01.0914:00
    "국장 장기투자 촉진" 세제혜택 늘린 '생산적금융 ISA' 신설
    "국장 장기투자 촉진" 세제혜택 늘린 '생산적금융 ISA' 신설

    생산적 금융을 강조해온 이재명 정부가 국장 장기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생산적 금융 개인종합투자계좌(ISA)'를 신설한다. 일정소득 이하의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청년형 ISA'는 물론, 비과세 200만원이 적용되는 기존 ISA 대비 세제혜택을 대폭 확대한 '국민성장ISA'도 선보일 예정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9일 오후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공개했다. 생산적 금융 기치 하에 첨단

  • 26.01.0914:00
    7월부터 24시간 외환시장 개방…MSCI선진지수 편입 박차
    7월부터 24시간 외환시장 개방…MSCI선진지수 편입 박차

    정부가 오는 7월부터 외환시장을 24시간 개방해 원화 국제화에 나선다. 역외 원화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규제를 정비함으로써 한국 증시의 숙원이자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 기관은 9일 오후 '2026년 경제성장 전략'을 공개하면서 이러한 내용의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외환·자본시장 종합

  • 26.01.1609:11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월 15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전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희석 : 감사합니다. 소종섭 :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제명 처분을 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나요? 윤희석 :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죠

  • 26.01.1416:21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1월 14일) ※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함께 여러 가지 이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지내셨죠? 이준석 : 예, 그렇습니다. 소종

  • 26.01.1008:01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808:49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710:25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1월 5일) 소종섭 : 어서 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성철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종섭 : 이 얘기부터 해보죠.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서 폭언했다, 보좌진에게 갑질했다, 남편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등 의혹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