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여성 직접 신고했지만 경찰은 늦장 대처
잔인한 범죄 전말 드러나며 '조선족' 혐오론까지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지난 1일 경기도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인 사건의 충격이 좀처럼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건 자체가 보여주는 잔인함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지만, 피해자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초동수사 단계부터 너무 안이한 대처를 해왔다는 사실이 온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찰이 사건의 전말을 숨기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불신은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 그녀가 112에 전화를 걸었던 그날 밤= 지난 2일 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집으로 귀가하던 회사원 곽모(28)씨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조선족 오원춘(우위안춘, 42)씨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곽씨는 1일 오후 10시50분 휴대전화로 112신고센터에 전화를 걸어 다급한 목소리로 "성폭행당하고 있어요. 모르는 아저씨에게 끌려왔어요"라고 말한 뒤 연락이 끊긴 상황.
신고를 접수한 수원중부경찰서는 순찰차와 경찰관을 투입해 휴대전화가 발신된 기지국 반경 300~500m에서 불이 켜진 상가와 숙박업소 등을 중심으로 새벽까지 탐문수사를 벌였지만 현장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다 사건 발생 10시간 뒤인 2일 오전 9시20분쯤 인근을 탐문하던 경찰이 인근 상인으로부터 "부부 싸움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 범위를 좁혔고, 바로 옆 건물 1층 다세대 주택에서 오씨를 붙잡았다.
발견 당시 오씨는 이미 숨진 곽씨의 시신을 훼손한 뒤 가방과 비닐봉지 등에 나눠 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살려달라' 외침에 '무덤덤'했던 경찰 = 잔인한 살인 사건에 대한 세간의 분노는, 그러나 피해여성 곽씨가 직접 신고까지 했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으로 옮겨 붙었다.
신고 당시 곽씨의 목소리가 생생히 녹음된 전화통화 기록은 모두 7분36초. 전화를 건 직후 1분20초 동안 곽씨는 수차례 자신의 위치를 강조하며 성폭행 피해를 입고 있다고 호소했지만 경찰은 "성폭행 당하신다고요?", "누가 그러는 거예요?", "주소 알려주세요"라는 공허한 말만 반복했다. 이후 범인인 오씨가 들어오자 휴대전화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전화기에서는 6분이 넘도록 비명과 함께 테이프를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경찰은 이를 마냥 듣고만 있었다.
통화 내용이 공개되자 경찰이 신고 즉시 출동했고 조금만 더 주의 깊게 접근했더라면 무고한 시민이 비참하게 살해되는 참극은 막을 수 있었다는 질책이 이어졌다. 경찰의 오판과 무능하고도 허술한 대처, 거짓 해명 등 심각한 문제점이 하나 둘 확인되면서 결국 조현오 경찰청장과 서천호 경기경찰청장 등이 책임을 지고 잇따라 임기 도중 사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후에도 오씨를 검거하기까지의 과정을 놓고 경찰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속속 드러났고 급기야 13일에는 곽씨의 신고 전화를 받은 경찰이 먼저 전화를 끊는 바람에 위치 파악에 실패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 성폭행하려다 토막살인? 너무나 잔혹해서… = 지난 2일 알려진 이 사건은 연일 사건의 잔혹성이 보도되면서 시민들을 경악케 했다.
오씨가 집안에 있던 둔기로 저항하는 곽씨의 머리를 내리치고 목을 졸라 살해한데 그치지 않고 그 시신을 토막 내 여행가방과 비닐봉지에 나눠 담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가히 엽기적이었다.
특히 언론 보도를 통해 "시신을 280여점으로 토막냈다", "가축을 도축하듯 뼈와 살을 발라냈다", "온몸을 난도질했다" 등 차마 입에 올리기에도 참혹한 현장 상황이 전해지면서 시민들을 아예 할말을 잊은 모습이다.
2007년 한국에 입국해 막노동을 하며 지내온 우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곽씨와 어깨를 부딪쳐 화가 나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지만 현장 인근 길가에 있던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오씨가 의도적으로 곽씨에게 접근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이 또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 조선족 불신·반감 이어 혐오론까지 = 한편 이번 사건은 한편으로는 조선족 등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며 또다른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이미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노골적인 반감과 혐오감을 드러내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중에는 "우리는 조선족을 동포라 생각하지만 그들은 한국말이 통하는 중국인일 뿐이다"는 식의 '반중(反中)' 인식부터 "조선족 보모가 아기를 데리고 사라졌다"라든가 "조선족과 같이 일하다 보면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어 칼을 휘두르기까지 한다"는 '카더라식' 낭설까지 더해지며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는 다시 "외국인노동자들이 국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혜택이 지나치게 많다"와 같은 정책적 불만으로 표출되거나 "중국에서는 아직도 인육을 먹는 민족이 있다"와 같은 괴담을 낳고 있다.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아이디 민희**)은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점점 과격해지는 듯 싶어 씁쓸하지만 그런 여론이 형성된 일차적 책임 역시 조선족한테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끝까지 서로 앙숙이 되어 갈수는 없다고 본다"는 글을 남겼다.
조인경 기자 ik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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