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의 얼굴을 안다. 그러나 정작 하하는 거리에서 좀처럼 제대로 된 인사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한동안은 사람들이 다짜고짜 ‘힘내!’라고 외쳤어요. 지금은 어린아이들도 저만 보면 ‘하로로야’하고 불러요.” 프로그램 밖에서도 캐릭터를 벗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예능인으로서 성공의 증명이다. 그러나 패기만만한 래퍼로 출발한 만큼, 하하에게 문제는 예능인이라는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꼬마 캐릭터가 싫어서 많이 괴로웠어요. 일부러 수염도 길러보고 했는데, 결국 멋있어 보이고 싶다는 건 저만의 착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한계를 인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비워낸 자리에는 그만큼 다른 것이 채워지는 법이다. ‘키 작은 꼬마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인정하자, 하하에게는 대중의 친밀감이라는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 그리고 우러러보게 만드는 카리스마로는 쉽사리 얻어낼 수 없는 응원과 애정을 덤으로 얻게 되었다.
그래서 전역 이후, 하하가 방송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그대로 두기”에 가까웠다.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히 다른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과 MBC <무한도전>에 안성맞춤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정답”이라는 유재석의 조언에 힘입어 특유의 ‘후리한’ 스타일을 천천히 되찾아 나갔다. 조급하게 자신을 부각하는 것보다 방송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눈을 갖게 된 것도 연륜과 여유에서 비롯된 지혜였다. 무엇보다, 컴백한 방송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한 채로 다른 방송에 도전하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하하가 최근 애니메이션 <토르: 마법망치의 전설>에서 주인공 토르 역의 더빙을 맡은 것은 일종의 신호다. “이제는 좀 즐기면서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해 줬던 ‘힘내’라는 응원을 제가 돌려줄 때가 된 거죠. 방송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다른 일들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랜 움츠리기 끝에 멀리 뛰기를 앞둔 하하에게, 그가 즐겨 들었다는 다음의 노래들은 일종의 응원가는 아니었을까. 결국, 그는 사람들의 바람처럼 힘내기를 멈추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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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컬(SKULL)의 <나 이러고 살아>
“무조건 최고예요! 진짜 레게 국가 대표!”라며 자랑스럽게 하하가 첫손에 꼽은 스컬은 사실 그의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다. “제가 힙합을 할 때부터 알던 사이인데, 친구이기도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이에요. 음악을 워낙 잘할 뿐더러, 항상 저에게 힘이 되는 칭찬을 해 주는 친구거든요. 회사 문제로 음악을 한동안 포기했을 때 ‘키 작은 꼬마 이야기’가 우연히 빵 터지면서 나도 노래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스컬은 늘 저에게 레게 할 수 있다, 노래 잘한다, 응원해 주거든요.” YG엔터테인먼트의 작곡가로 활동 중인 이낙과 함께 스토니 스컹크로 데뷔했던 스컬은 <무한도전> ‘나름 가수다’ 특집에서 하하와 함께 무대를 꾸미기도 했던 레게 뮤지션. 그의 새 싱글 ‘나 이러고 살아’는 박효신의 피처링으로 화제가 된 곡이기도 하다.
2. 루드 페이퍼(Rude Paper)의 < You Are Not Loser >
처음부터 레게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점점 더 레게의 매력에 빠져들어 버렸다는 하하는 스컬 외에도 많은 레게 뮤지션들과 친분을 쌓아 왔다. 스토니 스컹크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쿤타 앤 뉴올리언스의 쿤타 역시 하하가 좋아하는 레게 피플이다. “쿤타가 새로 결성한 루드 페이퍼의 노래도 정말 좋아요. 얘는 정말 너무 잘해서 미국에 당장 보내야 한다니까요! 이상하게 한국에서만 유독 레게가 인기가 없는데, 그건 화끈한 걸 좋아하는 국민 정서와도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 음악은 좀 나른하고, 읏짜읏짜 서서히 흥이 오르는 비트니까요. 하지만 저는 계속 레게를 좋아할 거고, 진짜 레게음악을 잘하는 친구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중간자 역할을 앞으로 하고 싶어요.”
3. Nas, Damian Marley의 < Distant Relatives >
레게를 짝사랑하게 된 힙합 보이에게 뉴욕의 대표적인 래퍼 나스와 밥 말리의 아들인 데미안 말리가 함께 작업한 앨범 < Distant Relatives >가 필청 앨범인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두 사람 다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인데 그 호흡이 진짜 환상적이더라구요. 사실……. 힙합으로만 치면 저는 제이지를 더 좋아하고, 밥 말리의 아들 중에서는 지기 말리의 음악이 좀 더 세련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두 사람이 모이니까 이 앨범은 진짜 무조건 추천할 수밖에 없어요.” 서로 다른 장르에서 정점에 오른 두 사람의 합작으로 화제를 모은 이 앨범은 힙합과 레게의 구분을 무력화하고, 원초적인 리듬과 감각으로 흑인 음악의 근원적인 매력에 접근한 작품이기도 하다.
4. 김건모의 < Be Like... >
하하는 콤플렉스를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극복한 사례이기도 하다. ‘키 작은 꼬마 이야기’로 자신의 키에 대한 시선을 극복한 그는 ‘그래 나 노래 못해’라는 노래로 가창력에 대한 천편일률의 잣대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그는 진심을 담는 것이야말로 좋은 노래의 조건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김건모의 ‘서울의 달’은 변함없는 애창곡일 수밖에 없다. “노래의 멜로디나 분위기도 참 좋지만, 가사에도 많은 공감을 하거든요. 그래서 가요는 특히 옛날 노래를 계속해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김현식 선배님의 ‘비처럼 음악처럼’이나 이문세 형님의 ‘사랑이 지나가면’ 같은 노래들 말이죠. 어렸을 때 좋아했던 노래들인데 여전히 최고잖아요.”
5. 하쥬리의 < Unsophisticated >
“마지막은……. 우리 누나 앨범!” 갑자기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음악을 꺼내 들지만, 그것이 이해가 되는 것은 가족을 향한 그의 유난한 애정 덕분이다. 최근에도 아버지와 둘이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는 그에게 가족은 더할 나위 없는 응원의 존재다. “우리 누나 앨범이기도 하지만, 진짜 좋아요. 저도 종종 혼자 있을 때 틀어 놓거든요. 앨범에서 ‘Santa Fe’도 참 좋고, 저는 ‘The Boy & Umbrella’도 좋아해요.” 하하의 누나 하쥬리는 스트로베리 레인이라는 밴드의 건반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며, 피아노 소품집 < Unsophisticated > 외에도 자신의 종교관을 음악으로 담아낸 CCM 피아노 연주 앨범 < Breathe >를 발표하는 등 부지런하게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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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토르 : 마법 망치의 전설> 더빙 과정을 떠올리며 자신만만한 평소의 캐릭터와 달리 하하는 “힘들어 죽을 뻔했어요”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냥 목소리만 연기하는 게 아니라 움직임의 호흡까지 다 보여줘야 하니까 정말 낯설고 어렵더라고요. 계속 성우 분께 훈련을 받으면서 적응하느라 초반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전문 성우 분들과 분명 비교되겠지만 제가 받은 보수에 그런 마음고생을 감수하는 비용까지 포함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최선을 다 했지만, 아마추어로서 겸손할 수밖에요.” 레게, 힙합, 장르의 구분을 넘어서 앞으로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슬쩍 밝힌 하하가 믿음직스러운 것은 그래서다. 키 작은 꼬마는 단지 떼쓰고 소리를 지르는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어른스러움이 만들어 낸 캐릭터인 것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절충을 찾기 위해 가능한 많은 음악을 만나려고 노력 중이라는 그의 새 앨범이 벌써 궁금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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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윤희성 nine@
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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