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날개 없는 선풍기'는 선풍기의 고정관념을 깬 제품이다. 말 그대로 날개가 없다. 기둥 모양의 스탠드 위에 원형의 고리만 덩그러니 얹혀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바람이 쏟아져 나온다.
외관이 세련됐고 유아나 어린이들이 돌아가는 날개에 다칠 염려가 없어 인기를 끈 이 '날개 없는 선풍기'는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사(社)가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라는 상품명으로 2009년 출시한 제품이다.
그렇다면 날개 없는 선풍기에서 바람이 나올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일까.
'베르누이의 원리'라는 것이 있다. 1783년 스위스의 과학자 다니엘 베르누이가 유도해낸 정리로 '공기나 물과 같은 유체의 속도가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하고, 속도가 감소하면 압력이 증가한다'는 원리다. 이는 곧 항공기 날개의 양력 발생 원리와도 같다. 비행기 날개 위쪽에는 돌출한 곡면이 있다. 이 곡면을 지나는 공기는 날개 밑을 지나는 공기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때문에 날개 아래쪽 압력이 위쪽보다 커지고 비행기의 뜨는 힘, 즉 양력이 생긴다.
일상 생활에서도 베르누이의 원리는 발견된다.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줄 때, 호스 끝부분을 누르면 물이 더 세차게 나간다. 단면적이 좁은 곳을 지날 때 유체(물)의 압력이 감소하고 속도가 증가한다는 베르누이 원리가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날개 없는 선풍기와 베르누이 원리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걸까? 선풍기의 아래 쪽 스탠드는 팬과 전기모터가 들어 있다. 여기서 공기를 빨아들인 뒤 고리 내부로 내보낸다.
이제 고리를 살펴보자. 고리는 비행기 날개의 단면 모양을 하고 있다. 고리의 바깥 면은 곡면이고, 안쪽 면은 평평하다. 이 때문에 빈 고리 안쪽의 공기 흐름이 바깥쪽보다 빨라지면서 고리 주변의 공기까지 고리 안으로 빨려들어온다. 이 때문에 선풍기가 팬을 직접 돌려 만들어낸 공기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바람이 고리에서 쏟아져나오게 된다.
'날개 없는 선풍기'의 과학적 원리는 우리나라에서도 톡톡히 인정받았다. 다이슨사는 지난해 우리나라 특허청에 특허 권리범위확인심판을 냈다. 국내에서 날개 없는 선풍기의 짝퉁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편에서도 날개 없는 선풍기의 특허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며 특허 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결과는 다이슨의 압승이었다. 그러나 특허청은 16일 "다이슨은 선풍기나 에어컨같은 분야의 선행특허가 아니라 유체역학 교과서에 나오는 베르누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며 "혁신적이면서 권리 범위가 넓은 특허"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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