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 KBS1 밤 11시 40분
“트레킹 일을 많이 했지만 이렇게 가족처럼 지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네팔 포터 살루밀라가 말했다. 두 명의 한국인 여행자와 두 명의 네팔 포터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정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포터들은 여행자와 가깝게 지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게 될 줄, 여행자들은 예정에도 없던 포터들의 고향길에 동행하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그저 여행이 주는 묘미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네 사람을 묶어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가능한 동행이었다. 살루밀라에게는 한 때 생후 11개월 된 딸을 두고 도망갔을 정도로 어깨를 짓누르는 이름이었지만 여현주에게는 간절히 되고 싶은 존재, 바로 엄마다.
15년 동안 엄마와 아내로 살아 온 김미애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살루밀라의 딸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어미의 마음으로 “손이 얼음장이네”라며 아이의 손을 덥석 잡았고, 세 번째 시험관 아기 실패 후 난임의 고통을 덜어내고 싶었던 여현주는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순마야로부터 “아이를 다섯 명 낳게 될 것”이라는 힘찬 기운을 받았다. 히말라야 풍경과 그 안에 점처럼 박혀있는 네 사람을 담은 풀샷보다 서로를 끌어안고 등을 다독여주는 클로즈업샷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원칙을 어기고 여행 계획을 바꾼 것은 사소한 일탈이었지만, 두 여행자가 살루밀라와 순마야의 일상 속에 들어간 것은 결과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 맺어진 네 사람은 서서히 무거운 짐을 나눠드는 인간 대 인간으로 발걸음을 맞춰나갔고, 마지막에는 엄마 대 엄마로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신들의 영역”이라 불리는 거대한 산에서 얻을 줄 알았던 깨달음은 사실 어디선가 나와 똑같은 엄마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의 품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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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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