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중순, 승강제 구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던 바 있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그 공청회는 의아함과 아쉬움을 남겼다. 적잖은 각계각층 축구 종사자들이 패널과 손님으로 자리하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승강제에 대한 진지한 반대적 입장을 개진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몇몇 우려 사항들이 언급되긴 했지만 구체적인 논의로 연결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심하게 말해 그 공청회는 모두가 모여 "승강제를 합시다"라고 외치는 결의 대회와도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승강제에 반대하고 싶은 사람이 축구계에 정말 하나도 없었을까? 만약 그러한 의견이 있다면 그 때 그 자리에서부터 나서서 적극적으로 개진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만장일치 공청회'의 아쉬움
물론 필자 자신은 승강제 지지자다. 승강제에 대한 염원을 여러 기회들을 통해 피력했으며 나름의 승강제 시행 방식(1부와 2부 사이에 '인터리그'를 둠으로써 2부리그 팀들의 충격을 완화하고자 하는)을 제시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유례없이 커다란 변혁에 대해 진지한 차원의 반대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공청회란 자체로 의아했을 뿐 아니라 심히 아쉬웠다. 진지한 반대로 인한 치열한 토론과 연구를 거쳐 반대의 포인트를 공략하는 문제 해결 및 설득 작업으로 재빨리 나아가야 하는 시기였던 까닭이다.
프로축구연맹 태스크포스 팀이 외국 리그 실사를 마치고서 '스플릿'을 골자로 하는 시즌 운영안을 발표한 것은 이듬해 10월 초의 일이다. 공청회로부터 그 때에 이르기까지 승강제에 관한 가시적 진전이 이뤄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공청회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작년 12월 승강제 시행안은 시도민 구단들의 반발에 직면, 마침내 갈팡질팡 국면으로 돌입하고 만다. 반대는 처음부터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떼쓴 시도민 구단도 중요한 일부
근본적으로 일부 시도민 구단들의 반발은 그 시기와 방법이 매우 적절치 않았다는 생각이다. 시도민 구단들도 모름지기 프로 구단이라면 현실에 안주하려 들 것이 아니라 1부, 2부를 가리지 않고 싸워나갈 준비가 돼야 한다는 비판들에도 100% 동의한다. 일부 시도민 구단들이 ‘떼'를 쓴 것도 맞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시도민 구단들의 존립은 자체로 지극히 중요하다. 하나 둘씩 창단한 시도민 구단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승강제를 거론하지조차 못했을 수 있다. 프로 구단 하나의 창단은 실로 어려운 문제이며 구단들은 하나같이 소중하다. 시도민 구단들이 대도시, 광역을 커버하고 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이미 팬들이 있다. 승강제와 더불어 우리 프로축구의 "판을 갈아보자"는 것은 필자의 지론이기도 하지만, 있는 구단들을 없어지게 해가면서 까지는 아니다. 우리 프로축구 시장의 현실상 충격을 가급적 완화하는 쪽으로 일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구단들이 줄어든다면 종국에는 승강제도 어려워지는 까닭이다.
2부리그 구성에 사활 걸어야
어제 이뤄진 연맹의 승강제 확정안 발표는 과정에 있어 모범적이지도 않았고 실망감도 자아낸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틀어졌다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우리 스포츠 시장의 전반적 현실을 감안할 때, 승강제가 처음부터 그럴싸하게 진행되리라 기대한 것 자체가 너무 이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상 이번 연맹의 발표들 가운데에는 드래프트의 점진적 폐지, 가입비 축소, 수익 분배 등 골몰의 흔적이 충분한, 나름 합리적인 세부 사항들도 꽤 있었다. 물론 이는 잘못된 부분들을 호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연맹은 일단 시도민 구단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일의 구체적 진척이 늦어진 데에 대한 일종의 책임을 진 셈이고, 구단들에게는 시간을 벌어줬다. 팀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강화시켜야 하는 책임은 이제 구단들의 몫이며, 이번 결정을 또다시 뒤엎으려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연맹은 이제는 정말 신속하게 2부리그 구성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야만 한다. 2013년의 2부리그가 승격 가능한 '온리 원' 팀(올 시즌에 강등될 팀)과 '절대로 승격 안하는' 몇몇 팀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부리그에서 뛸 팀들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이는 내셔널리그 구단들의 합류 없이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내셔널리그 팀들에겐 프로화보다 전국체전 우승에 도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쏠쏠하게 다가올 수 있다(아마추어 체육에서 전국체전이 지니는 실속은 여전히 크다. '스카우트 전쟁'까지 발생시키는 무대가 전국체전이다). 또 어떤 팀은 법인 분리가 선결돼야 하고, 어떤 팀들은 연고 중복의 문제가 있으며, 어떤 팀들은 돈이 충분치 않을 법하다. 연맹은 물론이거니와 대한축구협회와 축구계 전체가 조력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 이 과업이야말로 승강제를 위한 결정적 열쇠다.
지금부터는 정말 중요하다
어찌됐건 지금의 계획대로라면, 2014년의 2부리그에는 지금의 K리그 팀들 중 상무를 제외하고 적어도 세 팀(내년 2부리그에 새로운 팀 추가 시 네 팀까지도 가능)은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가운데 1부로 재진입할 수 있는 팀의 최대 가능 수효는 둘이다. 따라서 2013시즌 2부리그의 경우 다소간 '귀양살이 리그'처럼 보일 공산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그 다음해로 넘어가게 되면 떨어진 팀 모두가 되돌아올 수는 없는 경쟁적인 형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올 시즌 4팀을 강등시킬 경우 내년의 상황과 같은 것이다. 새로운 팀을 얼마나 추가시켜 2부리그를 좋게 만들 수 있을지의 문제는 어차피 마찬가지다.
K리그 30주년과 더불어 큰 걸음을 내딛는 승강제가 처음부터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 것에 있어 연맹과 구단들, 축구계에 이르기까지 책임으로부터 면제되기란 어렵다. 누구랄 것 없이 계획 부족, 집단 이기주의, 오락가락 행정 등으로 팬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의 제반 여건 및 준비 기간으로 볼 때 승강제가 이 정도의 문제도 없이 무사통과되리라 기대했던 것이 어쩌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모쪼록 지금부터는 모두가 맡은 일에 전력을 집중해, 이와 같은 난맥상을 최소화하며 승강제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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