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는 읽는 글이 아니라 듣는 글”이라 말하는 김이나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작사가 중 한 사람이다. 이민수 작곡가와 콤비를 이뤄 발표한 브라운아이드걸스(이하 브아걸)의 ‘아브라카다브라’는 지금 대중이 원하는 곡과 노랫말이 무엇인지에 대한 방향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아이유와 임슬옹이 함께 불러 마음을 간질인 ‘잔소리’나 아이유를 ‘국민 여동생’의 전당에 입성시킨 ‘좋은 날’의 노랫말은 누구나 ‘아!’ 하고 공감할 상황을 어렵지 않은 이야기로 풀어낸 보편적인 사랑노래였다. “내 이름이 나가는데 너무 노골적이지 않을까” 는 걱정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김이나 작사가는 스스로의 부족함에 늘 주의를 기울이고 작곡가에 대한 존경심과 가수에 대한 애정을 원동력 삼아 가사를 쓰는 이였다. “(글)자수가 많은 곡을 좋아해요. 워낙 말도 장황하게 하는 편이고. 구차한가?”라고 시원하게 웃으며 들려준 ‘요즘 작사가가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는 구차한 것이 아닌 친절한 그녀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10LOGO#>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했나?
김이나: 아이유 2집 앨범에 참여했고 신인 아이돌 앨범도 작업했다. 아이유 이번 앨범의 제목이 <라스트 판타지>인데, 아이유가 곧 스무 살이 된다. 이 소녀의 마지막 판타지이기도 하고, 참여한 작곡가들의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판타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한 분들이 모였다. 그래서 이번 아이유와의 작업은 생각보다 더 즐거웠다.
“‘오빠’는 소녀시대에게만 용인되는 것인 줄 알았다”
<#10LOGO#> 당신의 가사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사랑 노래’와 ‘곡에 딱 붙는 가사’라는 의견이 많다. 그런 점에서 아이유의 ‘잔소리’가 인상적이었다.
김이나: ‘잔소리’는 내가 아이유라는 가수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을 때 만들었다. 이민수 작곡가가 미리 자료 조사를 잘 해두는 편인데, 어린 아이가 성인 남자랑 연애 할 때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 방향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열일곱, 열여덟 살이었을 때 생각해보면, 스스로 어린 표현을 많이 쓰지는 않는다. ‘아, 진짜 남자들이란’ 이러면서 다 아는 것처럼 굴었지. (웃음) 그런 이야기를 아이유가 부르니까 겉보기에는 꼬마 같은데 어른스러운 잔소리를 늘어놓는 게 귀여웠던 것 같다.
<#10LOGO#> 아이유의 ‘좋은 날’에서는 ‘오빠가 좋은 걸’이라는 가사가 정수였다. ‘오빠’라는 단어를 두고 작곡가와 의견 충돌도 있었다고 들었다.
김이나: 반대가 아니라 우려였다. 솔직히 30대인 작사가가 쓰기에 부끄러운 단어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작사가로서 내 이름이 나가는데 너무 노골적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던 거다. 사실 나는 스태프니까 아이유한테 제일 잘 맞는 걸 써 주면 되는 직업인데 어설프게 이름이 알려지다 보니 의식하게 됐다. 하지만 아이유가 녹음할 때 들으니까 역시 다르더라! 가사는 가수를 통해서 나왔을 때 완성되는 글인데 프로듀서와 작곡가가 ‘오빠’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해도 나는 그건 소녀시대에게만 용인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만 해도 아이유의 저력을 몰랐던 거지. (웃음) 결국 그 곡으로 빵! 떴는데 아이디어는 내 것이 아니지만 따르길 잘 한 것 같다.
<#10LOGO#> 곡과의 조화라는 부분에서 특히 주목했던 건 브아걸의 ‘아브라카다브라’였다. 총체적인 스타일링이 거의 완벽했던 곡이기도 한데, 가사의 역할도 컸다.
김이나: 그 때가 지금 소위 팀이라 불리는 ‘프로듀서-작곡가-작사가-뮤비 감독’이 뭉친 첫 작품이었다. 지금처럼 완전히 처음부터 작전을 세워서 했던 건 아니고 데모를 듣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곡의 느낌이 정신이 반쯤 나갈듯 말듯 하는 여자의 느낌이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사실 처음 지누 씨한테 “곡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했더니 그 분도 별 생각 없이 “이거 어때요?” 하고 주신 곡이었는데 완전 센세이션이었던 거지. 그렇게 곡의 캐릭터가 선명하면 가사도 엄청 쉽게 나온다.
<#10LOGO#> ‘블링 블링’ 같은 가사는 영어인데도 앞뒤 맥락은 물론 곡과 착 달라붙었다.
김이나: 데모에 ‘블링 블링’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선배 작사가들만큼 시적인 압축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많이 노력하는 부분이 테크니컬한 쪽인데, 그게 가이드를 많이 살리는 거다. 가이드를 무시할 수 없는 게 작곡가가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렸지만 그 멜로디랑 리듬에 제일 잘 맞는 말들을 흥얼거린 거다. 일종의 잘 짜인 스케치 같은 거라서 그걸 잘 살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블링 블링’ 말고 다른 가사가 들어가면, 예를 들어 ‘사~랑’ 이런 걸 넣으면 어색해진다. 곡마다 여기는 무조건 이게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내러티브 욕심을 내서 그걸 해쳐버리면 신나는 곡을 망치게 된다.
<#10LOGO#> 그렇게 전체의 조각을 맞춰가는 것이 완성도에 있어서 좋을 수도 있지만 크리에이터로서는 일종의 제약이지 않나.
김이나: 발라드 곡은 고음에서 성대를 다치게 하는 발음만 아니면 작사가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는데 댄스 곡은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해야 하니까 여러 가지를 감안해야 한다. 요즘 작곡가 분들은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 신사동 호랭이 같은 경우는 숨을 어디에서는 많이 쉬어야 하고 어디서는 아껴둬야 하는지도 고려한다. 그렇게 정해져 있으면 아무래도 어떤 단어가 생뚱맞게 박혀 있으면 안 되니까 얘가 여기에 왜 있는 지 앞뒤에서 만들어 줘야 한다.
<#10LOGO#> 흔히 ‘후크 송’이라고 하는 것들이 제일 어려울 것 같다. 가사가 들어갈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짧고 정해진 패턴 같은 것도 있을 텐데.
김이나: 어휴, 어렵지. (웃음) 후크 송을 많이 써보진 않았는데 그걸 만드는 작곡가나 작사가나 쉬운 게 아니다. 작곡에서 아무 멜로디나 반복한다고 좋은 곡이 나오는 게 아닌데 단순하다는 이유로 폄하되는 게 있다. 작사가로서도 굉장히 난감한 게 왜 그 단어를 그토록 반복해야 하는지를 얼마 없는 구간 안에서 설명해야 하는데 공은 공대로 들이고 욕은 욕대로 먹고. (웃음)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은 작곡가에 대한 동경”
<#10LOGO#> 예전과 달리 프로듀서가 중심이 되는 시스템 안에서 작사 방식도 달라졌을 것 같다.
김이나: 예전처럼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는 곡들이 인기 있었을 때는 작사가들 사이에 경쟁이 엄청 났다고 하더라. 요즘에는 시장에서 요구받는 곡 자체가 변했고, 작곡가 분들이 직접 작사도 많이 하니까 전문 작사가들이 많지 않다. 작사 의뢰를 받을 때, 우리끼리는 알음알음으로 서로 아니까 친한 작곡가 분들은 이번에 너 말고 다른 누구한테도 맡겼어 라고 솔직하게 얘기해 주신다. 그걸 미안해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나는 A&R을 하던 사람이고 지금도 제작 일을 같이 하고 있어서 그 시스템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10LOGO#> 내가네트워크에서 팀 작업을 할 때는 곡을 먼저 프로듀서한테 추천하거나 뮤직비디오의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하나?
김이나: 서로 유기적이다. ‘아브라카다브라’ 이후 삼위일체의 느낌이 생겨났고 ‘돌이킬 수 없는’이 특히 그랬다. 프로듀서가 먼저 이번에 가인이는 무조건 탱고를 한다고 했고, 음악이 나오기도 전부터 우리끼리 되게 신났다. 다들 탱고를 좋아하기도 하고 가인이가 탱고를 하면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 아이의 평소 성품이 탱고다. (웃음) 황수아 감독이 뮤직비디오도 완전 신파로 찍고 싶다고 하면서, 클리셰 범벅으로 여자가 남자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느낌이면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거기서 상상하기 시작해서 앞뒤 상황 없이 그냥 남자가 “Bye Bye” 하면 여자는 자존심도 다 팽개치고 매달리는 상황만 가지고 가사를 쓴 거다.
<#10LOGO#> 원래 작곡을 지망하다가 김형석 작곡가의 제안으로 작사가의 길을 걷게 됐다. 음악에 대한 이해나 애정에 있어 곡이 먼저였기 때문에 갖는 이점이 있을 것 같다.
김이나: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이 작곡가에 대한 동경인 것 같다. 그래서 언제나 일을 갓 시작한 기분이다. 이번에 아이유 앨범 작업하면서 정석원 씨가 가사를 써달라고 하시는데 어휴, 벽돌이 어깨에 딱 놓이는 기분이었다. (웃음) 가사 잘 쓰시는 데 왜 나한테 부탁하시냐고 했을 정도다. 쓸 때는 너무 괴롭지만 내가 쓴 가사가 확정되었을 때는 처음 데뷔했을 때랑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편곡이라든지 악기 같은 걸 많이 들으니까 좀 더 테크니컬한 쪽으로 파고들게 되는데 이건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10LOGO#> 테크니컬한 부분에 더 신경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
김이나: 다들 비슷하겠지만 처음 가사를 쓰기 전에는 ‘아, 나도 저 정도는 한다,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데모가 들어오면 자괴감의 시기가 온다. 왜 대단한 선배들이 오래 일을 하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왜 이걸 시작했나 싶어지는 거지. 전에는 그냥 어떤 문장을 보고 좋으면 좋다고 느꼈었는데 내가 막상 하기 시작하니까 남들이 그냥 잘 쓰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어떤 경지에 있다는 걸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바이블처럼 듣기 시작했던 분들이 박주연, 양재선, 박창학 선배님 같은 분들이다. 이 분들은 테크닉이나 어감이나 시적 표현이나 대단하시다. 그게 보이기 시작하니까 ‘나 따위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도 하다가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기니까 또 일을 일로써 받아들이기도 한다.
<#10LOGO#>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작사가가 되겠다는 의지가 서기 전이었던 것인데 당황스럽기도 했겠다.
김이나: 그 때가 스물 셋, 넷일 때니까 아무래도 어리고 겁이 없었지. 그 때는 뭘 믿고 그랬는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라고 했다. (웃음) 그러니까 피아노를 잘 치는 것도 아니고 기타도 못 다루고, 화성도 전혀 모르고 전공도 전혀 달랐는데 작곡가가 되겠다는 무모한 꿈을 꾸기도 했고. 그 때의 나였기에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감사하다.
<#10LOGO#> 작곡은 재능을 타고 나야 하거나 전문적으로 배워야 하는 프로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반면, 작사는 일반인들도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보고 싶은 영역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김이나: 이게 되게 민감한 얘기인데, 나도 리스너일 때는 ‘수익 배분이 5대 5라고? 진짜?’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도 다른 작사가는 모르지만 내가 하는 일만 놓고 봤을 때는 작업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사가 나쁘게 나오고 짧을수록 칭찬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민수 작곡가가 곡 쓰는 걸 보면 정신적 고통은 물론 물리적으로도 엄청난 시간이 든다. 그런 물리적 고생만 놓고 보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내가 쓸 때는 스스로 평가를 못 하지만 A&R을 하면서 남들 것을 듣고 이 가사, 저 가사를 붙여보면 가사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10LOGO#> 가사에 대한 몰이해가 단적으로 드러났던 게 여성가족부의 심의 사태인 것 같다.
김이나: 개인적으로는 힘들다기보다 되게 코믹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틀이 필요하다는 것도 아주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평가를 하는 거다. 학생들이 봐도 웃는 수준이니까.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가인이 부른 ‘Bad Temper’라는 곡이 있는데 가사 중에 ‘입 안에서 혀처럼 놀아주는 건’이라는 부분이 있었다. 이 관용적인 표현을 “입 안의 혀? 야하다”고 하더라. (웃음)
<#10LOGO#> 스스로는 어떤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나?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신을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일 수도 있다.
김이나: 사실 크리에이터로서의 내 입장은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은 건데 아무리 숨겨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끊임없이 내 자아만이 아닌 새로운 자아를 계속 만들어 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일단 부를 가수와 내가 쓰는 글이 어울리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대중들이 특정 가수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맞는 말투나 설정을 한다. 실제 가수가 가진 캐릭터를 많이 녹여냈을 때는 무대에서의 실수조차 노래의 한 부분이 되더라. 그게 제일 큰 기준이라서 모르는 가수에 대한 의뢰가 들어왔을 때는 많이 조사를 하는 편이다.
“휘성의 가사에 패배감을 느꼈다”
<#10LOGO#> 가요는 넓게 보면 모두 사랑 노래다. 작사가 입장에서는 그만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는 것이기도 할 텐데. 제약 내에서도 좀 더 표현하고 싶은 방향이 있나?
김이나: 이것저것 다 좋아해서 딱 어떤 성향이 정해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여기서 널 영원히 기다릴게 하는 식의 가사는 안 써진다. 그렇게 쓰면 내가 봐도 후지게 나온다. 헤어지고 나서 혼자 영원히 기다리는 건, 헤어지는 사람한테도 민폐고 부르는 사람도 너무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지 않나.
<#10LOGO#> 차라리 매달릴 수 있을 만큼 매달리는 게 낫다는 건가? (웃음)
김이나: 매달리는 게 왜 꼭 그렇게 지질한 건가? 매달리는 것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정말 지질하게 매달리는 것, 쿨 한 척하면서 매달리는 것, 아니면 염세주의자로 매달리는 것. 다채로운 걸 쓸 수 있어서 재미있다.
<#10LOGO#> 동료 중에 인상적이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 한 표현을 한다는 생각이 드는 이들도 있나?
김이나: 많지. 요즘 워낙 발라드 곡이 별로 없다 보니까 시적인 깊이를 가진 작사가가 예전만큼은 없지만. 이미나 작사가라고 성시경 씨랑 작업을 많이 하셨다는데 나는 최근에 알게 된 분이 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 O.S.T 중 ‘너는 나의 봄이다’라는 곡의 가사가 정말 좋다. 박진영 씨 가사도 테크닉과 캐릭터가 좋다. 혓바닥이 잇몸을 찰싹 찰싹 때리는 리듬감이 있다. (웃음) 무게를 잡지 않으면서도 흔한 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내 이름은 수지가 아닌데’ 이런 가사는 무대 자체를 확 만들어 버리지 않나?
<#10LOGO#> 휘성도 그런 의미에서 색깔이 분명한 가사를 쓰는 것 같다.
김이나: 휘성 씨도 대중들이 보기에는 가벼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대단하다. ‘아, 이 친구는 진짜 보컬리스트라 이런 게 나오는 구나’ 싶었다. 이효리 씨 노래 중에 ‘Hey, Mr. Boy’의 가사가 기가 막힌다. 문장이 되게 무거운데 편하게 들린다. 눈으로 읽어 보면 꽤 무거운 문체고 쉽지 않은 단어들의 나열인데 어감이 가벼우니까. 예를 들어, 꽃이라는 단어가 보기에는 예쁘고 가벼운 단어인데 가사로 들어가면 되게 찐득한 느낌이 된다. 밑에 치읏 발음 때문에 다음 단어로 뭘 쓸지 난감한데 그런 면에서 그 가사는 정말 잘 썼다. 또 놀랐던 게 나랑 경합이 붙었던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였다. ‘철없게 철없게 철없게’ 그 파트가 가이드에서는 ‘셧 업 앤 셧 업 앤 셧 업 앱’이었다. 그 어감을 다 살려야 하기 때문에 쉬운 방법으로는 영어로 ‘셧 업’과 비슷한 걸 한다거나 하는데 그걸 ‘철없게’로! 글자로는 굉장히 무거워도 귀에는 리드미컬한 말이지 않나. 패배감을 느꼈지. (웃음)
<#10LOGO#> 스스로 생각하는 좋은 가사는 어떤 것인가?
김이나: 모든 작사가들이 다 그렇겠지만 곡이랑 맞는 가사. 물론 발라드 곡일 때는 보편적 감성을 얼마나 깊이 있게 이야기하느냐가 관건이지만 퍼포먼스나 캐릭터가 필요한 곡인 경우에는 작사가의 욕심보다는 가수가 직접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은 게 멋있어 보이는 것 같다. 예전에 비가 ‘I'm coming’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 전에도 춤을 추면서 자기화법적인 가사를 부르는 이들도 있었지만, 비는 표현력도 되게 좋은 가수지 않나. 스스로를 가사에 넣고, 무대 위에서 뭘 하고자 하는지 알고 있는, 그 퍼포먼스나 표정을 보면서 ‘아, 되게 멋있구나’ 싶었다.
<#10LOGO#> 부르는 사람이 할 법한 이야기로 들리는 것이 좋은 가사라는 의미네.
김이나: 가인이가 ‘나는 여려, 상처 받아, 수줍은 소녀야’라고 한다고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나. ‘천하무적 이효리’ 같은 노래를 이효리가 아닌 신인이 부르면 공감이 안 될 거고. 노래와 캐릭터가 딱 만나면 가수가 무대에서 확실히 멋있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f(x)의 4차원적 이미지를 되게 좋아한다. 가사라는 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기승전결이 있고 슬프거나 기쁘고 감동적인 것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능이 있는데 f(x)의 가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팀의 색깔을 만들어 준다. ‘피노키오’ 같은 가사도 되게 잘 썼다고 생각한다.
<#10LOGO#> 리스너였을 때는 가사로 위로도 받고 인생을 배우기도 했을 텐데 본인의 가사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욕망도 있을 것 같다.
김이나: 당연히. 그래서 발라드 곡이 들어왔을 때는 예전에 생각했던 작사가로서의 모습으로 작업을 하려고 한다. 내가 사람을 철렁 하게 만드는 깊이는 없지만. 예전에 노영심 씨의 ‘그대 내게 다시’를 들었는데 그 노래가 그런 감정을 처음 준 곡이었다. 그리고 성시경의 ‘내게 오는 길’도 이걸 쓴 사람이 도대체 누굴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게 했던 곡이었다. 워낙 작곡가에 대한 동경이 있었으니까 옛날 노래도 작곡을 누가 했는지는 대체로 아는데, 그 두 곡은 작사를 누가 했지? 라는 게 처음으로 궁금했다.
<#10LOGO#> 유명세와 상관없이 가장 애착을 가지는 곡은 뭔가?
김이나: 이민수 작곡가와 처음 쓴 서지영의 ‘어느 멋진 날’이라는 곡. 내가 ‘울면서 뛰는 곡’이라고 표현하는 장르다. TOY의 ‘좋은 사람’처럼 템포가 있는데 정서는 슬픈 곡을 좋아한다. 그런 곡에 가사를 붙이고 싶었는데 그 곡이 그랬다. 되게 신나게 썼다. 잘 안 알려진 노래이긴 한데 처음 써 봤던 표현 방식과 캐릭터가 그 곡에서 처음으로 윤곽이 잡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김종국 씨의 ‘친구에게’라는 곡이 있다. 내가 풋풋했을 때 쓴 가사고 쭉 써 놓고 나서 되게 서글프기도 했던 곡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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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
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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