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과 나는 1995년 프로야구 입단 동기다. 6살 어린 동생이지만 경북고 졸업 뒤 바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2001년 나는 삼성으로 이적해 그를 보다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3년간 함께 경쟁하며 느낀 이승엽의 가치를 설명하는 데는 많은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대단했다.
처음 삼성으로 넘어왔을 때 나는 이승엽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벽은 높아보였다. 한계를 실감한 것이다. 이내 넘어설 수 없는 타자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승엽의 타격능력은 타고났다. 방망이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홈런 생산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손목 파워, 스윙 궤도, 홈런 생성 존, 실투를 놓치지 않는 선구안 등 다양한 조건들이 절대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이승엽은 이 같은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국민타자’라는 수식어는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다.
이승엽은 일본 진출 전까지 9년 동안 324개의 홈런을 때렸다. 일부 관계자들은 펜스까지 거리가 다소 짧은 대구구장을 홈으로 둔 덕에 가능했던 수치라고 주장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다른 구장을 홈으로 썼어도 개수에 큰 차이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8시즌 동안 159개의 홈런을 친 것만 봐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이전 위력을 재현할 지에 대한 우려 역시 기우에 불과하다. 이승엽은 내년에 36살이 된다. 내리막을 걷는다고 예상할 수 없는 나이다.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홈런(762개)의 주인공인 배리 본즈는 36살이던 2000년 49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이듬해에는 무려 73개의 공을 담장 밖으로 넘겼다. 그는 40대에 접어든 이후에도 104개의 홈런을 쳤다. 더구나 타자는 구속이 떨어지면 투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투수와 달리 나이의 영향을 덜 받는다. 오히려 타격에 노련미를 실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승엽은 한일 통산 500홈런, 2000안타에 각각 17개와 30개를 남겨놓았다. 다양한 경험을 쌓아 이전 실력을 충분히 재현해낼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 그와 정면 대결을 펼칠 투수는 몇 명이나 있을까. 일부에서는 일본에서 부진했다는 논리를 앞세워 이승엽에 대한 기대치를 낮게 내다본다. 하지만 일본의 야구 수준은 한국에 비해 현저히 높다. 그 차이는 투수진의 능력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일본의 토종선수들 가운데서도 2, 3명만이 한 시즌 30홈런 이상을 때릴 정도다. 이승엽은 올 시즌 15개의 홈런을 치며 이 부문 퍼시픽리그 8위를 기록했다. 3위에 이름을 올린 나카타 쇼(니혼햄)와 3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삼성은 이승엽이 복귀할 경우 향후 몇 년간 독주를 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차우찬, 장원삼 등이 버티는 선발진에 오승환, 안지만 등이 포함된 뒷문은 리그 최고 수준이다. 최형우, 박석민 등이 자리를 잡은 중심타선에 이승엽마저 가세한다면 약점을 발견하기 힘든 난공불락으로 거듭날 것이다. 삼성 구단이 이승엽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고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해영 IPSN 해설위원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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