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이문구의 '장한몽'.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그리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
이 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제목으로 보나 저자로 보나 같은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이 책들은 모두 '체험형 글쓰기'라는 점에서 하나로 묶입니다.
작가가 어떤 글을 쓸 때 관련 자료를 수집해 공부하는 일은 보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한 책들은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빈곤 근로층의 현실에 대한 글을 쓰기 전 수개월 동안 직접 호텔 종업원 등으로 취업해 생활을 해보는 식입니다. 말 그대로 체험을 하고 집필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런 체험형 글쓰기의 전통은 꽤 오래됐습니다. 그 시작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꼽을 수는 없지만 고전으로는 조지 오웰이 1936년 탄광 노동자로 일한 뒤 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1970년대 산업화에 따른 아픔을 담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과 자신의 노동운동 기록을 풀어낸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으로 거슬러 올라와 살펴보면 코너 우드먼의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과 같은 체험형 글들이 베스트 셀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긍정의 배신'을 발견하고 국내 출간을 기획한 정희용 부키 기획편집부장은 이와 관련해 "체험형 글쓰기는 60~70년대에 강세를 보이다가 2000년대를 전후해 잠시 퇴조했다"며 "최근 다시 체험형 글쓰기의 바람이 부는 건 그만큼 사회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점과 한동안 팽창했던 미디어가 가벼운 흐름을 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체험형 글쓰기가 아직까지 대세는 아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이런 글쓰기가 점차 늘어나야 한다는 게 정 부장의 말입니다.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실천 활동에 눈을 감는 삶을 상상해보지 않았다'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말이 새삼 귓가를 맴돕니다.
빈곤 근로층에 대한 책을 쓰려 6개월 동안 저소득 근로자 생활을 하고, 사무직의 노동 환경을 다룬 책을 쓰기 전엔 1년 가까이 구직 활동을 했던 그의 열정이 그리워집니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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