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10월이 끝나간다.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는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사람을 ‘센티’하게 만드는 마력의 달이다.1993년 10월 31일은 할리우드 배우 리버 피닉스(River Jude Phoenix)가 캘리포니아 바이퍼 룸에서 마약 과다 복용으로 유명을 달리한 날이다. 기자가 된 이래 매년 10월 31일이 가까워 오면 다소 ‘오버’다 싶을 정도로 유난을 떠는 자신을 발견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1970년 8월 23일생인 리버 피닉스는 나와 동갑이다. 이런 터무니 없는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리버 피닉스는 영화에 대한 막연한 꿈을 품기 시작하던 시절 나의 우상이자 영화로의 안내자였다. 리버 피닉스의 1985년 영화 데뷔작 '컴퓨터 우주 탐험 Explorers'을 보면서는 그와 같은 우주복을 입고 우주를 여행하는 꿈을 꾸었으며, 로브 라이너 감독의 ‘스탠 바이 미 Stand by Me’는 친한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묻지마 여행’을 감행하게 한 그런 영화로 기억된다. ‘허공에의 질주 Running on Empty’는 초등학교 이후 놓아버린 먼지 쌓인 피아노 뚜껑을 다시 열게 했으며, ‘샌프란시스코의 하룻밤 Dogfight’을 보고 나선 극 중 이야기처럼 ‘폭탄 골라내기’ 미팅을 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리버 피닉스의 영화가 모두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청계천 비디오 상가를 누벼 어렵게 찾아낸 ‘지미 리어든 A Night in the Life of Jimmy Reardon’이나 ‘리틀 니키타 Little Nikita’ 같은 영화는 졸작 중에 졸작이었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에는 언제나 공통점 하나가 존재한다. 그의 캐릭터에 철저히 감정 이입된 상태로 영화를 보게 하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는 것. ‘길의 감식사 Road Seeker’ 라는 영원한 닉네임을 안긴 거스 반 산트 감독의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나 리버 피닉스의 유작 ‘리버 피닉스의 콜 잇 러브 Thing Called Love’는 건조하면서 냉소적인 그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들이다.
1993년에서 2011년으로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다. 그는 여전히 23세 나이의 청년의 얼굴로 남아있지만, 어느덧 중년의 문턱을 넘긴 나와 그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커진다. 하지만 리버 피닉스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어렸을 적 즐거웠던 혹은 참혹했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린다. 리버 피닉스의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은 나는 다시 10대의 꿈 많은 고등학생 혹은 장래를 걱정하는 20대 초반의 냉소적인 청년이 될 수 있다.
10월 31일에는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 레터 Love Letter’에서 와타나베 히로코가 그랬던 것처럼, 오직 눈 뿐인 벌판에서 목청이 터지도록 외쳐 보았으면 좋겠다. “리버, 잘 지내냐? 난 잘 지내.”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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