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퍼로 친근감 강조 VS 블루셔츠로 신사 느낌 연출
[아시아경제 박지선 기자]
곧 그날이다.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는 확성기 유세는 사라졌지만 나경원, 박원순 두 호보는 오늘도 발바닥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유세전을 펼친다.
후보의 모든 것이 관심 대상이다. 옷차림도 예외는 아니다. 22일 토요일, 나경원 대표는 선거 중반부터 유니폼처럼 입어 온 파란색 사파리형 점퍼를 입고 거리 유세에 나섰다. 평범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전략이다. 최근 억대 피부가 회원권 등 부자 이미지가 강한 나후보가 패션을 통해 보여주려는 이미지는 ‘친근함’이다.
반면 박원순 후보는 점차 격식을 갖추고 대중 앞에 나섰다. 넥타이까지는 아니지만 푸른빛이 도는 잘 다려진 와이셔츠 차림이다. 시민운동을 통해 굳어진 지나치게 친근한 이미지에서 조금 정돈된 카리스마를 보여주려는 전략이다.
옷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옷 잘입는 사람이 일 잘하는 것처럼 옷 잘입는 정치인이 세련되고 깔끔하게 일 처리하는 (적어도 그럴 거라는 믿음을 주는) 세상이 됐다.
요즘 정치인들의 옷입기에 분명 변화가 있음을 느끼고 그 점이 내심 반갑다. 이미지를 연출하는데 옷, 넓게 보면 스타일링의 힘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서거를 앞두고 그 누구보다 바쁜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후보. 이들의 스타일링을 지켜보는 관전 포인트도 흥미롭다.
“두 사람의 성격은 다르지만 패션을 통해
달라진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어하는 것은 똑같다”
유명 정치인의 이미지 컨설팅을 진행과 방송인 스타일링을 오랫동안 담당해 온 윤혜미(퍼스널 브랜딩그룹 YHMG의 대표, <남자의 멋·품·격> 저자) 씨가 두 후보의 패션 키워드를 분석해봤다.
나경원 후보 - 화려함을 벗고 서민적 이미지를 연출
나경원 후보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예쁜 정치인’이다. 약간 마르긴 했으나 선명한 눈, 코, 입매에 단아한 화장법까지. 전체적으로 가늘고 여성스럽지만 그녀는 정치인으로서의 강단을 보여줄 정도의 패션 연출력을 가지고 있다.
작고 처진 어깨는 질 좋은 슈트로 살리고, 긴 목은 스카프나 실크 블라우스로 부각시킨다. 대체로 단정하지만 브로치나 스카프 등으로 포인트를 주는 연출법은 덜하거나 과함이 없이 패션 전문가 이상이다. 의상의 생명인 소재도 고급을 선호했다.
고급 부티크의 몇 백 만 원을 호가하는 정장을 누구보다 우아하게 뽐내던 그녀가 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점퍼를 입고 운동화 끈을 조이고 나섰다. 이미지가 생명인 정치인에게 다소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그녀의 패션 센스는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평범하고 친 서민적인 패션으로 갈아입으면서도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연출력은 잊지 않았다. 각진 턱 선을 갸름하게 보이게 하던 그녀의 필수품 귀고리도 착용하지 않는다. 젊어 보이면서 얼굴의 각을 살리는 후드 점퍼와 자신에게 어울리는 점퍼를 색상별로 구비했다.
점퍼는 엉덩이를 반쯤 가리는 길이를 선택하여 다리가 길어 보이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결점을 완벽하게 커버하며 친 서민적인 이미지를 연출했다. 이런 나경원 후보의 전략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대문 시장에서 판매되는 영세 브랜드의 점퍼를 입어 서민 대통령으로 이미지를 살린 것을 다시 재현하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어느 자리에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당당한 미소는 또 하나의 무기다. 물론 한 마라톤 대회에 참석, 현빈 옆에 서서 과하게 좋아하는 표정을 지은 사진은 세간의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그녀의 미소는 대체로 의연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현의 다른 방법이다.
박원순 후보 - 서민에서 신뢰를 주는 말쑥한 정치인으로 연출
박 후보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기 전, 뒤축이 다 떨어진 낡은 신발이 트위터를 통해 공개되며 ‘역시 서민 변호사’란 찬사를 받긴 했으나 패션에 있어 박원순 후보는 그저 이 시대 대표 한국 아저씨 스타일이다.
염색을 하지 않은 희끗희끗한 머리는 그를 더 피곤해 보이게 했다. 목의 주름을 드러나게 하는 반목 티 위에 대충 걸친 슈트 재킷은 대한민국 보통 아저씨들의 필수 아이템이다. 통이 넓어 펄럭이는 바지나 대충 입은 듯한 셔츠는 그의 소탈한 성격을 대변하는 듯 했다.
박원순 후보의 패션은 나경원 후보와 역방향으로 진행되는 듯하다. 과거에 수수하고 편안한 차림이었다면 지금은 격식을 갖추어가려는 듯 보인다.
뒤축이 떨어진 구두를 세련된 옥스퍼드화로 바꾸고 말쑥한 슈트에 목선과 얼굴 색을 살리는 블루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고 블루 타이를 맸다, 혈색이 없고 길어 보이는 얼굴은 은색 브릿지의 반무테 안경을 착용하여 보완하고 헝클어지고 희끗한 모발은 염색을 하고 가르마를 단정하게 정돈했다.
스타일에는 신경 쓸 틈이 없이 바쁘게 시민운동을 하던 변호사 박원순이 셔츠를 단정하게 입고 타이를 단단하게 맨 것은 서민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빛을 찾아 주겠다는 신뢰의 메시지를 대신한 것이다.
우아함을 탈피하고 서민의 곁에 서고 싶은 여자와 자유로움을 벗어 던지고 격식을 갖춘 정치인이 되고 싶은 남자의 메시지를 국민은 어떻게 바라볼까? 여자의 변신이 그러하듯 외모도 메시지를 전달의 수단인 정치인의 변신도 죄가 되지 않는다. 패션만으로 보자면 그들은 상반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변화라는 면에서 그들을 본다면 똑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박지선 기자 sun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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