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지난 5일 오후 3시(현지시간) 자택에서 호흡정지와 췌장암으로 사망한 스티브 잡스가 생전 이끌었던 애플컴퓨터의 제품들은 최대 억제한 디자인, 간편한 사용법으로 선(禪)을 연상케 한다는 평이 뒤따르곤 했다. 이와 관련해 팝문화 칼럼니스트 제프 양은 "없앤 것만큼이나 내포한 게 많다"고 표현했다.
잡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한 선승(禪僧)과 교류하며 그를 애플의 영적 지도자로 모셨다. 그가 바로 1991년 3월 18일 잡스와 로렌 파월의 결혼식 주례를 선 오토가와 고분(乙川弘文·1938~2002년·사진)이다.
잡스가 불교를 처음 접한 것은 젊었을 적 인도로 '영적 여행'을 떠났을 때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그가 연을 맺게 된 것이 일본의 선종 가운데 하나인 조동종(曹洞宗)이다. 잡스는 1970년대 캘리포니아주 로스앨토스에 있는 선원(禪院)에서 일본 태생의 오토가와를 알게 됐다.
오토가와가 선원에서 가르친 것이 명상법이다. 오토가와는 제자들에게 명상의 목적과 관련해 "내 안에 있는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라며 "자신을 발견하는 게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고 자신을 발견하지 않고서는 남과 소통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오토가와로부터 영향 받은 잡스는 2005년 6월 12일 미국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지난 33년 동안 아침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자문했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그러나 숱한 날 아침마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깨닫게 된 것이 뭔가 끊임없이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해서 잡스는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게 됐다.
오토가와는 1938년 니가타현(新潟縣)에서 조동종 승려의 아들로 태어나 12세에 승려가 됐다. 도쿄(東京) 고마자와(駒澤)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69년 교토(京都) 대학에서 대승불교로 석사 학위도 받았다.
선사(禪師)나 노사(老師)라는 호칭 대신 그냥 고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좋아한 그는 1967년 스즈키 순류(鈴木俊隆) 선사로부터 초대 받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타사자라 마운틴 선원'에서 1970년까지 그를 보좌했다.
오토가와는 틈틈이 후쿠이현(福井縣)의 에이헤이지(永平寺)에서 수행하고 사와키 고도 같은 몇몇 고승으로부터 사사했다. 사와키는 일본 최후의 떠돌이 승려로 한 절에 머물지 않고 이리저리 떠돈 인물이다.
타사자라 마운틴 사원에서 로스앨토스 선원으로 옮긴 오토가와는 선종 포교에 힘쓰다 1971년 사와키가 입적하자 그의 뒤를 이어 1978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오토가와는 뉴멕시코주 타우스 인근에 또 다른 선원을 세우고 콜로라도주 볼더의 나로파 대학에서 선종을 가르치면서 참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고분이 사망한 것은 2002년 7월 26일 스위스에서다. 함께 여행 떠난 5살 난 딸 마야가 한 선착장에서 실족해 물에 떨어지자 아이를 구하려다 함께 익사한 것이다.
이진수 기자 com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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