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대한적십자사의 부실한 혈액관리 실태가 국정감사 도마에 올랐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A형간염 보균자, 말라리아 감염자 등의 혈액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며 문진검사나 혈액검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4일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지난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총 14명의 A형간염 보균자가 헌혈해 24개의 혈액제제가 만들어졌다"면서 "이 혈액을 수혈받은 환자 중 2명이 A형 간염에 감염됐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와 적십자사는 2008년부터 헌혈 후 A형 간염 증상이 나타나 진단을 받고 혈액원에 알려온 경우에 한해 수혈로 인한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최 의원은 "헌혈 당사자도 잠복기인 경우 A형 간염 감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중증 질환자가 수혈을 받으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문진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효기간이 지난 생리식염수를 사용해 제조된 세척적혈구제제가 출고돼 4명에게 수혈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최 의원은 "적십자사 전라북도혈액원은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도 14일이나 늦게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해 혈액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며 "주요 물품의 사용 및 재고관리를 위한 지침을 마련하고 유효기간이 경과된 주요 물품이 사용돼 제조된 유사사례가 다른 혈액원에도 있는지 신속히 파악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은 말라리아 감염 위험 혈액이 다른 사람에게 수혈되거나 혈액제제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올 8월까지 말라리아 감염 위험이 있는 헌혈 부적격자의 헌혈 건수는 2064건에 달한다. '국내 말라리아 위험지역에 거주 또는 여행'에 해당하는 경우가 1854건(90%)으로 가장 많았고, '국외 말라리아 위험지역 여행'(192건), '말라리아 병력이 있는 사람이 헌혈'(15건), '헌혈 후 말라리아 감염이 확인된 경우'(3건) 등의 순이었다.
2006년과 2010년에는 말라리아 감염자의 혈액이 다른 사람에게 수혈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검사결과 음성으로 판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혈액관리법을 보면 말라리아 위험지역에 6개월 미만 여행을 하거나 거주한 사람은 1년간, 6개월 이상 거주하거나 군 복무를 한 사람은 2년간 헌혈이 금지된다. 또 말라리아 병력이 있는 경우 치료 종료 후 3년이 지나지 않으면 채혈을 금지하고 있다.
원 의원은 또 말라리아 헌혈 부적격자 혈액이 5059유니트(unit)의 혈액제제로 만들어졌는데, 이중 3687unit의 혈액제제가 출고됐다고 비판했다.
원 의원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말라리아 발생률 1위 국가지만, 말라리아는 간염이나 에이즈처럼 헌혈 혈액검사 대상이 아니어서 사전 문진에 의존해 헌혈 부적격자를 걸러내고 있다"며 "말라리아에 대해서도 헌혈 혈액검사를 실시하고, 헌혈 보관검체에 대한 사후조사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적십자사가 '불량' 진단시약을 사용하고 있어 제대로 검사되지 않은 C형간염 의심혈액이 유통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승용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중앙혈액검사센터가 지난 8월 C형간염 양성인 41개 검체를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LG생명과학 진단시약(LG HCD Confirm)의 C형간염 확인율은 95.1%에 그쳤다. 반면 다른 2개 회사의 시약은 C형간염을 100% 잡아냈다.
적십자사는 지난 2007년부터 올 6월까지 문제의 시약만을 사용해 1만7002건(unit)의 혈액을 검사했다.
주 의원은 "이 진단시약은 1차 검사를 통해 C형간염에 걸렸다고 양성 판정받은 혈액에 대해 2차 확인검사를 목적으로 사용된다"며 "따라서 1만7002건의 혈액 중 4.9%인 833건의 C형간염 의심혈액이 정상 혈액으로 유통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금이라도 역학조사를 실시해 해당 혈액을 수혈받은 사람들이 정말로 C형간염에 걸렸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혜정 기자 pa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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