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속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워낙 자화자찬을 싫어하는 분이니까요."
유튜브 등에 떠도는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그룹 회장의 불호령 동영상을 보고받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반응을 두고 나온 말이다.
동영상에는 빈터콘 회장이 최근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 행사장에서 현대차 i30를 구석구석 살핀 후 현장에서 '현대차는 가능한데 왜 우리는 안되나'며 담당임원을 질책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현대차그룹 고위임원에 따르면 정 회장은 최근 주재한 품질회의에서 품질본부 임원의 보고를 받고 오히려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자만하지 말라'는 무언의 표현인 셈이다. 기쁜 마음에 보고했던 임원이나 참석자들 입장에서는 무안할 수도 있지만 이 같은 반응에 당황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폭스바겐 회장의 동영상은 현대차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동안 현대차가 세계시장에서 질주를 했지만 경쟁사 최고경영자의 '불쾌한(?)' 반응을 적나라하게 접한 적은 없었다. 빈터콘 회장은 지난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신경 쓸 라이벌은 도요타가 아니라 현대차다"면서 "최근 비약적인 품질 향상은 놀라울 정도"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 포드 이사회 의장인 빌 포드도 지난 1월 미국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경쟁사의 전기차 동향을 설명하면서 현대차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밖에 많은 해외 완성차 CEO들이 현대차의 성장에 찬사를 보냈다.
현대차의 글로벌 파워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영상 보고를 받은 정 회장의 시큰둥한 반응을 임원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차는 올 초 가솔린 하이브리드차 독자개발로 기술력을 과시한데 이어 최근에는 세계 최초 10단기어 개발에 착수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업계를 조용히 선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차의 지난해 글로벌 판매대수는 570만대. 폭스바겐은 이 보다 140만대 많은 710만대를 기록했다. 현대차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지만 경쟁사 입장에서는 불편한 존재가 됐다. 세계 경제 위축에도 불구하고 '중형 하이브리드 홍보를 강화하고 유럽시장을 겨냥한 i40의 판매대수를 늘려잡으라'는 정 회장의 주문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체득한 경쟁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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