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나이키는 중국의 저소득층 인구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 데 주목하고 '월드슈즈'라는 10달러짜리 운동화 시리즈를 내놨지만 큰 실패를 거두고 맙니다. 문제는 유통망이었습니다. 월드슈즈는 주로 쇼핑몰의 나이키 매장을 통해 판매되었는데, 대부분 농촌지방에 살고 있던 잠재고객들로서는 도시에 자리잡은 대형 쇼핑몰에 갈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지요.
한편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신발을 판매하는 바타라는 회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몇 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하나의 실험을 합니다. 저소득 여성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와 협력해서 낙후된 지역 여성들을 신발산매상으로 교육시킨 것이지요. 불과 2~3달러에 지나지 않는 샌들이지만 이 신발을 판매함으로써 미혼모나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당당히 사업가로 자립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현재 바타의 방글라데시 신발시장 점유율은 70%를 넘습니다.
우리는 흔히 삶과 비즈니스를 나눕니다. 저도 회사에 다니던 시절, 아빠와 남편으로서 김도현의 삶은 잘 접어 옷걸이에 걸고 출근하곤 했습니다. 폴리니라는 학자는 일찍이 1940년대 후반에 쓴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이라는 책에서 이런 현상을 지적합니다. 산업화가 경제와 사회를 분리시키면서 우리는 경제체제 내에서 단지 '고객'이나 '장사꾼'이면 족할 뿐 '이웃'이나 '친구'일 필요는 없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경제는 사회적인 관계와 독립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정부나 사회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은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 기후변화, 생물다양성의 훼손, 광신주의와 테러리즘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경제문제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경제체제를 바꾸지 않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점점 힘을 얻어갑니다.
그래서 최근 기업이 단지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경제의 주체일 뿐 아니라 사회의 변화와 개선을 이루어낼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하며 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넬대학의 스튜어트 하트 교수는 사회문제 해결에 있어 정부의 한계가 분명해진 이상 기업이 이런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예측합니다. 노벨상을 받은 그라민 뱅크의 사례는 너무도 유명하고, 앞서 바타의 사례도 이런 가능성을 알려줍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기업들의 도전이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유사한 움직임이 다른 영역에서도 포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술 분야에서는 예술작품을 관객들에게 단순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찾아가 지역민들이 예술작품을 직접 창작하고 함께 즐기도록 하자는 이른바 커뮤니티 아트 운동을 국민대의 이혜경, 문영, 김민 교수 등이 시작했습니다. 과학계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을 지낸 민동필 박사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가운데 우리에겐 큰 소용이 없지만 저개발 국가들에는 도움이 되는 기술을 찾아 제공하고, 그 기술을 근간으로 산업을 일으킬 수 있게 지원하자고 역설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아직 미미하고 체계가 잘 잡혀 있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대다수의 기업들은 '대상고객에게 물건을 팔아 돈을 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기업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는 또 다른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저는 예감합니다. 이런 날이 온다면 기업은 무엇보다도 '고객'이 아닌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고, 그 준비는 어쩌면 바로 오늘 시작되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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