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정선은 기자]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과열되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둘로 갈렸다. 주민투표 대표단체로 나선 진보와 보수 진영 시민단체는 물론 대학생, 종교단체까지 나서서 주민투표 '불참'과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주민투표가 과열되면서 무상급식 방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묻는 본래 취지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불은 주민투표를 발의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붙였다. 지난 21일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말하면서 복지 논쟁에서 시작한 주민투표가 시장 재신임안으로 성격이 바뀐 탓이다. 오 시장 입장에서는 최후의 승부수를 던진 셈이지만 주민투표의 취지는 그만큼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시기를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24일 주민투표 결과가 가져올 후유증도 걱정스럽다. 투표 이후에도 무상급식 여부를 놓고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시의회 간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여전하다. 오 시장의 시장직 유지여부에 따라 서울 시정은 물론 정치권도 후폭풍이 일 수 있다.
◆주민투표 과열…고소·고발 난무= 이번 주민투표는 진보·보수 진영 시민단체간 고소·고발전으로 이미 진흙탕 양상을 보여온 만큼 상당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주민투표 기간 서울시의 단계적 급식을 찬성하는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주민투표법 제21조 제2항 공무원이 투표운동을 할 수 없게 돼 있는 규정을 곽 교육감이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맞서 전면 무상급식안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인 나쁜투표거부 시민운동본부는 오 시장과 투표참가운동본부 등을 고발했다. 역시 공무원이 투표운동을 할 수 없게 돼 있는 규정을 어겼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또 주민투표 청구인 서명부 가운데 14만건이 불법 서명으로 확인된 점 등도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나쁜투표거부시민운동본부는 22일에도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해 오 시장을 주민투표법 위반으로 고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불법 선거 운동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선관위는 자원봉사자에게 식사비로 4만원을 건넨 한나라당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고발했다. 또 교사와 학부모 에게 투표 불참을 유도하는 이메일을 보낸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와 사내 통신망에 주민투표 참여 독려 글을 올린 귀뚜라미그룹 회장을 고발하기도 했다.
주민투표가 과열되면서 분열 양상 역시 심화되는 모습이다. 보수성향의 대형교회 9곳이 주민투표 독려에 나선가 하면 불교·가톨릭·원불교 등 범종교인연합은 투표 거부를 선언했다. 거리로 나선 대학생들도 진보와 보수로 갈려 투표 거부와 참여 운동을 각각 벌이고 있다.
◆투표 이후에도 갈등은 여전= 투표가 끝난 이후도 걱정이다.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서울시, 서울시교육청, 자치구 간 무상급식 강행 여부를 놓고 갈등을 지속할 수 있다.
시교육청은 이미 "내년 2월까지 무상급식 예산은 이미 편성돼 있기 때문에 2학기에도 무상급식에 변동이 없으며 내년부터도 교육청 자체 예산으로 이들 학년에는 계속 무상급식 혜택을 줄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만약 투표율이 33.3%를 넘기고 단계적 무상급식이 과반수 득표를 받아 채택됐다면 지난 9개월간 벌여온 무상급식 논쟁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
투표율이 33.3%를 밑돌아 투표함을 열지 못한다면 보궐선거가 치러지기까지 서울 시정의 공백이 우려된다. 이 기간 권영규 행정1부시장의 권한대행이 서울시정을 운영하지만 신규 사업보다는 기존 사업의 현상유지 선에서 시정이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오 시장이 10월 이후로 사퇴를 미루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보궐선거가 내년 상반기로 미뤄져 시정 공백 기간이 더욱 길어질 수 밖에 없는 탓이다. 정치권에 미칠 파장도 엄청나다. 한나라당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주민투표 패배→시장직 사퇴→보궐선거 패배→총선 및 대선 패배'다.
이밖에 진보와 보수로 확연히 나뉘었던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것도 남은 숙제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정선은 기자 dmsdlunl@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