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 일관제철소 ‘브라질 엘도라도’ 쾌속진군
경영자는 전장을 누비는 장군과 같다. 승리는 달콤한 결실이요, 패배는 죽음과 같다. 승리를 위해 군사의 사기를 돋우는 것은 장군의 몫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뻔하다. 백전백패다. 시장은 냉정하다. 잠시도 빈틈을 주지 않는다. 여기 백전백승의 CEO가 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 주인공. 직원과의 약속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장 회장. 불가능할 것 같던 브라질제철소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어냈다. 동국제강의 새로운 도약,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아버지 드디어 해냈습니다.” 이렇게 외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동국제강이 브라질 고로제철소 사업의 첫 삽을 뜨는 순간, 장세주 회장은 “믿고 따라와 준 직원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브라질 고로제철소 사업은 아버지인 고 장상태 전 회장의 숙원사업이었다. 장 회장도 잘 알고 있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뛴 주역이 바로 그다. 그런 그의 입에선 ‘직원에 대한 고마움’이 먼저 나왔다. 왜일까. 1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한결같이 그를 믿고 따라와 준 임직원의 신뢰는 분명 브라질 사업 성공의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2층 사옥 9년 동거, 직원과 신뢰를 쌓다”
장 회장의 별명은 ‘장수 고시생’이다. 23년 동안 경영수업을 받은 데서 비롯됐다. 고 장상태 전 회장의 장남이지만 일반인과 똑같은 직장생활을 했다. 1978년 사원으로 입사해 대리, 과장, 차장, 실장을 거쳐 2001년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다른 오너 일가 자녀에 비해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특출난 능력을 충분히 살려내기 위한 아버지의 배려였다.
직원들과 부대끼며 기업문화를 익히고, 그들의 애환을 직접 경험해보란 의도인 셈. 장 회장은 입사 첫해부터 동기들과 격의 없이 지냈다. 점심시간이면 함께 족구를 하며 땀을 흘렸고, 저녁시간엔 술잔을 기울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최고경영자(CEO)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지를 몸으로 체득했다.
장 회장이 첫 취임했던 2001년의 일이다. 주변에서 신임 회장 취임을 계기로 사옥을 이전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당시 재계 순위 21위인 동국제강이 성장하는데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동국제강의 사옥은 2층짜리 건물. 대기업 사옥이라고 하기엔 허름했다. 집무실도 초라했다.
2층에 위치해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웠다. 동국제강은 철강 업무의 특성상 사무직보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많다. 현장 직원의 고충을 함께 느끼고 싶었을 게다. 회사가 성장하면 할수록 직원들에게 복리를 향상시키고 싶었을 게다. 자신이 세워놓은 계획이 성공하기 전까진 멀리에서나마 희로애락을 함께 나눴다.
장 회장은 2층짜리 사옥에서 9년을 지냈고, 2010년 현재 동국제강의 사옥인 지상 28층의 최첨단 빌딩인 페럼타워(을지로 위치)로 이전했다. 장 회장은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각오로 브라질 일관제철소 건설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미래를 계척하자”고 밝혔다. 브라질 고로제철소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다.
불가능한 일을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직원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채찍질이었다. 10여 년 간 위기를 함께한 직원들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페럼타워의 페럼은 라틴어로 철을 뜻한다. 브라질 고로제철소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그 결과 브라질 고로제철소 사업에 대한 직원들의 불안감은 기대감으로 바뀌게 됐다.
브라질 감동시킨 “나의 꿈에 동참해달라”
장 회장이 직접 고로제철소를 짓자는 결심을 한 것은 2001년이다. 취임 첫해부터 고로제철소 건설을 위해 불철주야 움직였다. 고로제철소는 철광석과 유연탄을 고로에 넣고 불을 지펴 쇳물을 뽑아낼 수 있다. 쇳물은 바로 사용할 수 없어 불순물 제거와 용도에 맞는 제강 공정을 거쳐 슬래브 같은 철강 반제품이 된다.
철강회사로서 고로제철소는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얘기다.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는 매출 상승으로 이어진다. 장 회장은 2005년 브라질 세아라 주에 고로제철소 건설 사업을 발표했다. 당초 전기로제철소를 건설에 방향을 맞췄다. 꼭 필요한 사업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2007년 에너지 가격 폭등이란 난관에 부딪혔다. 천연가스를 원료로 하는 전기로 방식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원들 사이에서 제철소 사업이 무산 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브라질 현지 반응도 좋지 않았다. 일본과 중국의 철강사들이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다 무산된 것의 여파가 컸다. 불가능하다는 반응이 계속되자 장 회장이 직접 나섰다. 세계 최대 철광석 공급사인 브라질의 발레(Vale, 당시 CVRD)와 주 정부, 연방정부에 변함없는 사업 의지를 각인시켰고, 합작을 통한 사업 지속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세계 최대의 철광석 회사인 발레가 합작한다면 독자적으로 원료를 자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공들여 온 제철소 건설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은 마침내 브라질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 회장은 브라질 세아라 주 정부의 주선으로 룰라 대통령을 만나 의지를 피력했다. “우리의 꿈을 믿고 지지 해준다면,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될 것이다.” 장 회장의 말에 룰라 대통령은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 세아라 주 정부와 동국제강의 상호협력 조인식 주재에 나섰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이다.
그때만이 아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브라질 고로제철소 건설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앞을 내다볼 수 없고, 기업의 생존조차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 1년간 지속됐기 때문이다. 당시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부분 벌였던 사업을 정리하거나 중단했다. 장 회장은 달랐다.
이번에도 직접 나서 꾸준히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고로제철소 건설 예정지에 대한 1차 정지작업(부지조성)을 벌인 것이다. 문제는 제철소 건설을 위한 파트너 선정이었다. 일본 철강회사인 JFE가 1년에 걸쳐 타당성 검사를 마쳤지만 금융 위기로 갑작스레 손을 뗀다.
장 회장은 포스코를 찾아가 설득했다. 포스코는 정밀한 타당성 검토를 거친 뒤 2010년 11월 동국제강과 함께 제철소 건설 참여에 합의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포스코가 브라질 제철소 건설에 참여하기로 확정하면서 고로제철소 건설이 급물살을 탄 순간이다.
10년간 8조원 투입, 철강신화 쓴다
동국제강과 포스코, 발레는 1단계로 브라질 북동부 세아라(Ceara) 주의 뻬셍
(Pecem) 산업단지에 발레 50%, 동국제강 30%, 포스코 20%의 지분율로 연산 300만t급 고로제철소를 2015년까지 건설키로 했다. 2단계 프로젝트는 300만t급 고로를 추가, 총 600만t 규모로 고로사업을 확장키로 했다.
브라질 고로 제철소 건설 사업은 세계 최대 철광석 공급사와 세계 최고의 기술 경쟁력을 지닌 철강사가 참여하는 ‘한-브’ 고로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다. 10년간 총 8조원이 투자되는 브라질 CSP제철소는 유례를 찾기 힘든 글로벌 ‘삼자 동맹’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한국 철강기업이 해외에서 고로제철소를 건설, 안정적으로 철광석을 확보하고 성장성이 높은 브라질에 진출하게 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합작 3사는 향후 상호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켜 한국에서의 철강 성공 신화를 브라질에서 재현한다는 목표다.
말·말·말로 본 장세주 회장 경영철학
“직접 확인해보니 나의 확신은 더 커졌다”
약속을 통한 믿음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2002년 신년 임원 워크숍에서 브라질 세아라를 제철소 입지로 선정한 까닭과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는 임직원과의 자리에서.
“아반싸 쎄아라, 아반싸 브라지울(쎄아라여 전진하라, 브라질이여 전진하라)”
현지 사람들과 융화할 수 있어야만 해외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2005년 12월 제철소 건립 현장에서 브라질 주민을 대상으로 포르투갈어로 직접 작성한 연설문 중에서.
“10년의 준비, 100년의 대계”
반드시 이뤄진다고 믿으면 불가능은 현실이 되고, 철저한 준비를 통한 오랜 기다림은 신성장동력이 된다. 2010년 1월 그룹 신입사원들과의 만남에서.
브라질에 한국어 이름 부두가 떴다
지난 11일 동국제강은 브라질 세아라 주 페셍산업단지에서 제철소 전용 다목적 부두 준공식과 원료 컨베이어벨트 가동식을 가졌다. 행사에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과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시드 고메즈 세아라 주지사, 세계 최대 광산업체인 발레의 페헤이라 회장 등이 참석했다.
부두명은 ‘Cais Song-Won’으로 ‘송원 부두’로 명명됐다. 송원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선친인 고(故) 장상태 회장의 호다. 고인의 브라질 제철소 건설의 꿈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브라질 정부의 배려로 고 장 회장의 호를 따 부두 이름을 지었다.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부두를 상징하는 명판을 직접 장 회장에게 선물했다.
이코노믹 리뷰 김세형 기자 fax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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