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1968년 개봉된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혹성탈출’은 충격적인 영화였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의 동명의 공상과학소설을 영화화한 ‘혹성탈출’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침팬지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설정으로 인간 중심의 진화론을 비롯한 모든 과학 문명을 완전히 거슬렀다. 또한 주인공 조지 테일러(찰톤 헤스턴 분)가 해변에서 페허가 된 자유의 여인상의 일부를 발견하고 울부짖는 엔딩은 지금까지도 할리우드 영화 중 최고의 엔딩으로 손꼽힌다. 평단과 흥행 양쪽에서 대성공을 기록한 ‘혹성탈출’은 공상과학 불멸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하며 팀 버튼 감독의 리메이크 ‘혹성탈출’(2001)을 포함해 모두 6편의 속편들을 양산했다. 하지만 ‘형만한 아우 없다’는 속설은 ‘혹성탈출’ 시리즈에도 적용됐다. 영화의 이야기는 재탕과 삼탕을 반복하며 ‘혹성탈출’은 할리우드에서 서서히 그 생명력을 잃어갔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이하 ‘진화의 시작’)은 통산 7번째 ‘혹성탈출’ 시리즈다. 사실 이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기울인 영화 관계자는 별로 없었다. 제임스 프랑코(‘스파이더맨’ ‘127시간’)와 프리에다 핀토(‘슬럼독 밀리어네어’) 등 최근 주목 받는 ‘핫’한 스타들이 출연하고 있지만 이미 ‘혹성탈출’ 이야기는 구닥다리가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시작’ 제작진은 ‘혹성탈출’ 1편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으로 승부를 걸었다. 과거 그 어떤 시리즈도 밝힌 적 없는, 인간이 어떻게 유인원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와 ‘아바타’를 탄생시킨 뉴질랜드 웨타 디지털의 특수 효과와 퍼포먼스 캡쳐 기술은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진화의 시작’의 이야기는 명쾌하다.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을 위해 유인원이 인간의 실험 희생양으로 변한 현재의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진화의 시작’은 과학자 윌(제임스 프랑코 분)과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소유한 유인원 시저(앤디 서키스 분)를 그 중심에 두며, 자신이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시저는 인과의 전쟁으로 나아간다. 이미 결말이 결정되어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화의 시작’은 관객으로 하여금 끝까지 긴장을 놓게 하지 않는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장점을 톡톡히 발휘한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과 ‘킹콩’의 킹콩을 연기했던 앤디 서키스의 침팬지 ‘시저’는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동물 캐릭터들을 확실히 능가하는 최고의 감성 연기를 선보인다. 내러티브 전개는 빠르고 명쾌하며 극 중 인물 선악 구도도 뚜렷하다. ‘혹성탈출’ 1편의 엔딩에 비교될 만큼 효율적이고 영리한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진화의 시작‘이 ‘프리퀄 Prequel’의 기능은 말할 것도 없이 여름 블록버스터의 조건도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전편들에 대한 선지식이 없어도 영화를 보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아니, 전편들을 완전히 모르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진화의 시작’은 완전히 죽어버린 시리즈를 무덤에서 되살린 ‘똘똘’한 여름 블록버스터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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