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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인생2막 50+]“역사는 대하드라마 난 행복한 내러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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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해설가로 즐거운 인생 이효일씨

인정한다. 국사를 곱씹어 보는 건 대부분 삼일절, 광복절, 한글날처럼 역사적 의미가 서린 날을 앞두고서다. 역사해설가를 떠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역사는
멀리 있다. 한데 ‘역사장이’ 이효일(69)은 꿋꿋하다. 인생 후반부, 아예 우리 역사 알리기의 첨병이 됐다.


[당당한 인생2막 50+]“역사는 대하드라마 난 행복한 내러이터” (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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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지난 2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강연 레퍼토리 보강 차원에서 궁궐 사진을 찍기 위해 나온 이효일씨를 만났다. ‘인터뷰하기로 한 사람 정말 맞나’ 할 정도의 ‘동안’ 외모. 나이에 비해 족히 10년은 젊어 보였다.


그는 예순아홉의 나이에 역사해설가로 승승장구 중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 역사 및 고궁에 대한 의미와 지식을 가르치고 직접 고궁 탐방을 진행한다. 대상자는 비슷한 또래의 장년층들이다.

이 사람, 누가 ‘역사 이야기꾼’ 아니랄까 봐 인사를 건네자마자 덕수궁 얘기다. “덕수궁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이예요.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에는 정동 일대부터 새문안길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지금보다 더 넓었답니다. 혹시 궁 안에 놓인 괴석에 대해 아세요? 신선의 터임을 나타내는 건데….”


오랜 대기업 직장생활을 접고 시작한 제2의 인생. 경력 3년차지만 탄탄한 배경지식으로 역사의 무대를 손에 잡힐 듯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는 망설임 없이 “취미생활을 통해 얻었다”고 말한다. 무엇이 그를 못 말리는 이야기꾼으로 만들었을까. 은퇴 3년이 다 되지만 그의 무대는 되레 더 화려하다.



사회복지사 취업 좌절 후 찾아온 기회


이씨는 1970년대 초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해 30년 넘게 근무했다. 계열사 임원 자리까지 올랐음에도 사업가의 꿈을 안고 2005년 퇴직, 패션 업체를 차렸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는 경영 악화로 3년 뒤, 결국 운영하던 회사를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나이 탓이 컸어요. 패션이란 분야가 매우 트렌디 하잖아요. 60대 감성으로는 젊은 감각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더군요. 좋게 말해 은퇴지, 젊은 세대에 밀린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갑자기 실패한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고 서글퍼졌어요.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었죠.”


자괴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고 먹고 살 걱정은 파도와 같이 요동쳤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던 끝에 최근 복지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나이 제한이 없는 사회복지사에 도전, 힘들게 공부해 그 어렵다는 1급 자격증을 따냈건만. 정작 쓸모가 없었다.


“일자리를 얻으려고 집 근처 사회복지관을 찾았는데 나이 많은 사회복지사를 쓰려 하지 않더라고요. 요즘 복지사나 복지관장들 대부분이 어린 친구들입니다. 한참 어른인 제가 아무래도 부담스럽지 않겠어요?”


그러고 보면 일단 65세가 넘을 경우 사회에서 완전히 퇴출당하는 분위기다. 아파트 경비원, 하고 싶어도 못 한다. 노인 일자리 소개소에서도 사실상 직업을 구하기 힘들단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면 능력은 나이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외치고 싶을 만큼 씁쓸한 현실과 그는 또 다시 마주해야 했던 것.


그러던 중, 한줄기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북부종합사회복지관 측으로부터 사회복지사 외에 특기로 내세울 게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평소 심취해 있던 역사 이야기를 꺼낸 것이 계기가 됐다.


“역사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어요. 그동안 모아놓은 풍부한 자료와 수천 장의 사진들…. 자신 있었어요. 파워포인트로 기획안 일부를 만들어 복지관장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복지관장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당당한 인생2막 50+]“역사는 대하드라마 난 행복한 내러이터”


[당당한 인생2막 50+]“역사는 대하드라마 난 행복한 내러이터” 젊은 시절 역사 읽기 취미로 인생2막을 연 이효일씨가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궁궐 탐방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그의 강의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 생생하고 흥미진지하다.
스토리텔링형으로 사건을 재미있게 구성하되 극적인 부분에서
‘빵’ 터질 수 있는 클라이맥스 장치를 반드시 삽입한다.



역사 읽기 젊은 시절 취미가 인생2막 열어


결과는? 재미와 완성도 두 측면에서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2008년 그는 북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역사탐방 교실-궁궐이야기’를 열고 역사해설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지금까지 전국의 수백여 복지관 어느 곳에서도 역사 강의를 개설한 적이 없었으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들어서게 된 길. 결코 그냥 움켜쥔 행운의 네잎클로버는 아니었다. 우리 역사를 향한 무한한 관심과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란 얘기다.


산업화 시대와 맞물린 20~30대 시절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40대에 들어선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때부터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만 있으면 경복궁, 창덕궁에 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마치 천생연분임을 말해주듯 궁에 오면 그저 편안하고 좋았다고. 구석구석을 마치 호기심 천국에 온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휘젓고 다니며 관찰했다.


역사적 사실을 틈 나는 대로 공부하고 현장은 사진으로 담았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는 일도 허다했다. 역사를 벗 삼아 지낸 젊은 시절은 훗날 그가 역사해설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자양분이 됐다.


“회사를 그만둔 바로 다음날부터 컴퓨터 학원에 다녔어요.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면 컴퓨터 활용 능력은 필수거든요. 두 달간 엑셀과 파워포인트 전문가 과정을 이수했죠.”


그는 한 번의 강의를 위해 무려 5시간(+α)을 준비한다. 전개 방식을 고민하고 적절히 보강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련 신간은 나오는 족족 독파한다. 얼마 전에는 사진 편집을 더 잘하기 위해 포토샵까지 배웠다. 어설프고 판에 박힌 레퍼토리가 싫어서다.


역시 공짜는 없나 보다. 그래서인지 그의 강의는 촘촘하고 알이 꽉 차 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다. 스토리텔링형으로 사건을 재미있게 구성하되 극적인 부분에서 ‘빵~’ 터질 수 있는 클라이맥스 장치를 반드시 삽입한다. 게다가 입심도 좋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니 귀에 쏙쏙 들러붙는다.


‘이효일’표 강연 프로그램은 2시간씩 한 달에 4~5회를 하며 1회 정도는 궁궐 탐방으로 꾸며진다. “교육생들이 주로 65세 이상이니까 부담 없이 무료로 지하철을 타고 고궁에 입장할 수 있죠.


가볍게 산보 나온 것 같이 기분 전환 되고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호응이 상당히 높습니다. 또 강좌를 수료한 후 저처럼 역사해설가로도 활동할 수 있어 열의를 갖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 싶어 저렴한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게 해 사진 찍기부터 컴퓨터를 통한 촬영 파일 보정 및 편집 작업까지 하나하나 가르쳤다. “역사탐방교실로 일석오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신세계’를 경험하고 나서 처음엔 느릿느릿하고 의욕이 없던 이들이 확 달라졌어요.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죠.”


호기심에 들으러 왔다가 이효일의 팬이 됐다는 어르신들도 여럿이란다. 날이 갈수록 전국 각지의 복지관으로부터 강의 요청이 쇄도하는 이유다. 현재 이씨는 북부종합사회복지관을 비롯해 중계복지관, 동작구복지관, 시니어들을 위한 포털 사이트 ‘유어 스테이지’ 등에서 시니어 역사강좌를 맡고 있다.


어느 정도 일이 자리를 잡았음에도 그는 한사코 편하게 가기를 사양한다. 오히려 배움과 도전에 대한 열의를 더욱 불태우고 있다. 하긴 나이가 무슨 상관 있으랴. 요즘 푹 빠져 있는 건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꾸미기. 책을 사서 독학하는 중이다. “좀처럼 실현하지 못하는 게 있는데요.


동영상 배우기예요. 너무 어렵더군요. 실습을 해도 자꾸 잊어버려요. 역시 나이는 못 속이나 봅니다. 정적인 사진보다 역동적인 동영상 이미지를 활용하면 강의가 훨씬 생동감 있을 텐데 말이죠. 더 늙기 전에 마스터하고 싶습니다.(웃음)”


그는 또 유어스테이지에서 ‘일조’라는 닉네임으로 운영하는 궁궐이야기 카페의 전시회 및 박물관 정기 순례 코너를 새로 구상하고 있다. 교육생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역사와 좀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봤다. 시니어 역사해설가로 활동하는 이가 있었나. 장년층에게 이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선봉장으로 나선 그가 바라본 역사해설가의 전망은 어떨까. “1회 강의료가 교통비 정도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노후를 의미 있게,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일입니다. 보람이 엄청나거든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지키는데 앞장선다는 사명감마저 들어요. 이 분야는 이제 시작 단계예요. 반응이 좋고 시니어 일자리 창출 효과도 커 기회는 점점 많아질 겁니다.”



역사해설가 시작단계 이지만 전망은 밝아


경제력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두 자녀를 출가시키고 아내와 단둘이 살면서 한 달 생활비를 최대한 줄였다. 200만원이 채 안 든다고. 65만원의 국민연금과 직장생활 할 때 저축한 자금을 보태면 먹고 살기엔 괜찮단다.


그는 자신의 수준을 “아마도 요즘 대한민국 시니어 경제 생활상의 표준이라 보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바쁜 와중에 건강은 어떻게 지키는지 궁금했다. 매일 아침 하루도 거르지 않는 걷기 운동이 그 비결. “체력적으로는 힘들지 않은데 매번 강의 내용의 반절 가량을 참신하게 바꾸려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쉽게 구할 수 없는 자료도 있고요. 지루한 건 딱 질색입니다. 교육생만이 아니라 제 만족을 위해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거죠.”


그에게 두 번째 인생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답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주변에서 ‘행복을 주는 소재’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 “아침 7시에 종묘 풍경을 보셨나요. 노인들이 우르르 몰려 바둑을 두다가 나중엔 술판을 벌입니다.


취해서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그들의 모습이 답답하기 이를 데 없어요. 좋아하는 일을 찾으세요. 저도 내일 모레면 곧 칠십인데요. 늙었다고 가만히 있지 말고 시간을 유익하게 사용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1시간 30분 가까이 인터뷰를 하며 발견한 사실. 역사장이 이효일은 나이를 초월한 열정으로 행복의 정답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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