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선박 보유하고픈데 우리 조선소는 못 만들어···”
선박 중고가 하락도 고민, ‘메이드 인 코리아’는 안 떨어지는데···
中 정부 감시속 조심스레 문의 늘어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자국 조선사에 일감을 몰아주던 중국 해운업계가 서서히 한국 조선소에 발주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발 선박 수주는 금액 규모와 달리 상징성 면에서 의미가 크지만, 업계에서는 되도록 이러한 상황이 공개되지 않도록 쉬쉬하는 모습이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메이저 조선업체들이 중국 해운사로부터 선박 건조 의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출 통계에서도 올 1~4월 대중국 선박 수출은 2억2100만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1677.8% 급증했고, 홍콩 수출도 5억1100만달러를 기록중이다. 물론 같은 기간 전체 선박 수출액 221억5400만달러에 비해서는 미비한 수준이다.
선박은 100% 수주산업이라 현재 건조 계약을 체결해도 관세청에 수출통관에 신고되는 것은 선박이 선주에게 인도되는 2~3년 후가 된다. 따라서 현재 체결된 계약은 2년후에 수출액으로 잡히므로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데, 현재의 의뢰 건수 증가는 향후 대중국 선박 수출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내 조선업계의 전망이다.
자국 정부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인지 중국 해운사들은 간접계약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해운사와 조선사를 이어주는 브로커를 통하거나 제3국에 적을 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계약이 이에 해당하며 선박을 해운사에 용선해주고 이익을 취하는 중국 투자자들도 선박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조선산업을 키우기 위해 대대적인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대신 선박을 자국 조선소에 발주토록 유도했다. 저렴한 인건비, 방대한 조선소 투자를 기반으로 중국은 신조 시장에서 경쟁사를 압도했다. 이를 토대로 중국은 지난 2008년부터 신규 수주ㆍ수주잔량ㆍ건조량 등 3대 지표에서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그런데 중국 산업이 급격한 성장과 고도화를 겪으며 이야기가 달라졌다. 제조업 생산규모가 크게 늘면서 이들 산업에 필요한 원자재 또는 완성품을 운반하려면 선박도 더욱 크고 성능도 좋아야 한다. 여기에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확대되면서 드릴십과 부유식 원유 생산ㆍ저장ㆍ하역설비(FPSO) 등 해양 설비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거대한 제조업을 뒤에 업은 중국 해운사는 메이저 업계에 몰리는 물량을 빼앗고 싶은 게 당연지사다. 이를 위해서는 초대형 광탄운반선(VLOC),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1만3000TEU(20피트 길이 컨테이너)급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을 갖춰 규모의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선박을 건조할 능력이 있는 자국 조선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브라질 발레로부터 40만t급 VLOC 12척을 수주한 중국 장쑤룽성중공업이 경험 미숙으로 인도 기일인 내년까지 선박을 만드는 게 불가능해 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인도받은 선박의 중고가격 하락도 고민거리다. 같은 선박이라도 '메이드 인 차이나' 선박은 품질이 떨어져 가격 하락률이 한국산 선박에 비해 훨씬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사는 시황이 좋지 않을 경우 보유 선박을 팔아서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선박가격 급락은 채산성 악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 조선업계는 과도한 설비투자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 발주량 축소 등으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술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은 양적인 팽창의 결과다. 사태가 확산될 경우를 대비해 선박 발주처를 마련하고픈 중국 해운사들의 긴박감도 한국 조선사에 손을 내미는 이유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국내 대형 조선사 고위 관계자는 "중국 해운사로부터 지속적으로 건조 의뢰를 받고 있으며 협상도 진행하고 있다"며 "단, 중국 정부의 통제가 워낙 강하다 보니 자칫 정보가 샐 경우 발주사들이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철통같은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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