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 선두 동서식품에 남양유업·롯데칠성 토종업체 원두로 도전장
직장인 조성근(45)씨는 하루를 모닝커피로 시작한다. 출근하기 전, 뜨거운 물에 일회용 커피믹스를 뜯어 붓고 몇 번 휘휘 저으면 끝. 바쁜 출근시간엔 이만한 효자가 없다.
점심시간에 부하 직원들이 커피전문점으로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를 마시러 가도 꿈쩍 않는다. 왜냐고? 귀찮기도 하거니와 커피맛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다방 커피’처럼 적당히 프림이 섞여 구수하면서도 달달한 커피믹스가 그의 입맛엔 최고다.
집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저녁식사 후 입가심용으로 꼭 커피믹스를 찾는다. 주변에서 프림이 칼로리가 높아 다이어트에 안 좋다고들 얘기한다. 배가 나올까 봐 조금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대놓고 반박을 하고 싶다.
‘하루에 커피믹스 몇 잔 마신다고 뭐, 어떻게 되나? 가격도 싸고 얼마나 맛있는데’ 하고. 출장을 갈 때도, 등산을 갈 때도 그의 가방 속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커피믹스다.
1조원 시장 매년 15% 성장 예상
1:2:1.5, 2:2:2, 2:2:3…. 커피·설탕·프림이 만들어내는 다방 커피의 황금 비율 공식이다. 오랫동안 한국인의 커피 취향으로 대변되던 다방 커피의 계보를 잇는 것이 인스턴트 커피계의 커피믹스다.
한 개 가격이 100원 안팎. 요즘 성장세가 무섭다. 커피믹스 시장은 2010년 기준 약 1조원 규모로 5년 사이 두 배로 성장했고 매년 15%씩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는 커피전문점의 고속성장이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오고 국내 새로운 커피문화를 정착시켜 커피믹스의 소비도 덩달아 늘어났다고 말한다.
미국계 크래프트푸드사와 합작법인인 동서식품의 ‘맥심’, 스위스 식품회사 네슬레의 ‘테이스터스 초이스’. 양대 강자가 지배하고 있던 이 시장에 최근 토종 업체들이 뛰어들어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남양유업이 지난해 12월 ‘프렌치 카페 카페믹스’를 출시하며 커피믹스 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롯데칠성도 커피믹스 ‘칸타타 모카클래식’과 ‘칸타타 아라비카’를 내놓은 것. 남양유업의 경우 기존 프림에 우유맛을 내기 위해 사용하던 화학적 합성첨가물인 카제인나트륨 대신 천연 무지방 우유를 넣은 커피 크리머를 만들어 차별화했다.
이 같은 전략이 주효하면서 커피믹스 시장 진출 3개월 만에 100억 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 4월까지의 성적은 170억 원 정도.
김홍태 남양유업 홍보 담당자는 “소비자들이 프림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커피믹스를 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식물성 기름이 주 성분인 프림 원액에 합성첨가물 대신 천연 원료인 진짜 우유를 넣어 특허출원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동서식품과 남양유업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얼마 전, 동서식품이 프렌치 카페믹스의 ‘프림 속 화학적 합성품인 카제인나트륨을 뺐다’는 광고가 타사 제품 비방이라며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카제인나트륨이 함유된 동서식품 제품이 나쁘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카제인나트륨은 식약청이 식품첨가물로 인정한 재료이므로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라며 “사실상 프림을 구성하는 식물성 기름 때문에 다이어트 등에 안 좋다는 인식이 있는데 커피믹스 1개가 50kcal 정도로 하루 몇 십 잔씩 마시지 않는 이상 해롭지는 않다”고 밝혔다.
남양유업은 현재 천안에 200억 원을 들여 첨단 커피 생산시스템을 갖췄고 1000억 원을 추가로 투자, 올해 시장점유율 20%를 올려 업계 2위 네슬레를 추월하겠다는 목표다.
남양유업과 롯데칠성의 시장 진입에 대해 동서식품 측은 “대형업체들이 커피믹스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는 것은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시장을 확대시키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와중에 한국야쿠르트와 대상 등도 커피믹스 사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스타벅스가 국내 인스턴스 커피시장에 진출할 것이란 소식도 들린다.
미국에서 출시된 스타벅스 인스턴트 커피 ‘비아’는 현재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필리핀,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 하워드 슐츠 회장은 “그동안 비아를 출시했던 지역을 잘 살펴보면 다음은 어딘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조만간 한국 출시 계획이 있음을 내비친 바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비아의 가격대가 국내 커피믹스 수준으로 책정되지 않는 이상 경쟁 상대는 우리가 아니라 커피전문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커피믹스의 높은 인기 요인은 ‘빨리빨리 문화’와 구수하고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식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설탕과 프림까지 혼합된 형태의 커피믹스는 거의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품 형태.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커피를 대중적 음료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0년대 최초로 커피믹스라는 제품을 내놓은 업체가 동서식품이다. 이 회사는 30여 년간 7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해왔다.
커피믹스 고급화·RDT커피 인기 추세
크게 보면 소비자의 취향과 입맛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고급화되는 사회문화적인 변화와 관계가 있다. 미국식·이탈리아식 카페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커피믹스의 맛이 곧 다방커피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최상급 원두인 아라비카를 100% 사용한 ‘맥심 아라비카 100’ 제품은 원두의 맛과 향을 잘 살려 블랙으로 마시기에도 좋을 만큼 우수한 품질을 강조한다. 칸타타 커피믹스는 브라질산 최고급 아라비카 원두와 천연암반수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점을 내세운다.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커피를 마시고자 하는 20~30대 젊은층으로부터 RTD(Ready To Drink) 커피음료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른바 슈퍼마켓과 편의점 등에서 파는 캔, 병, 컵 커피다. 커피전문점 커피에 떨어지지 않는 프리미엄급 품질이지만 가격대는 저렴하기 때문.
RTD커피 시장은 롯데칠성의 캔 커피 ‘레쓰비’와 남양유업의 컵 커피 ‘프렌치 카페’, NB캔 형태의 동서식품 ‘T.O.P’와 롯데칠성 ‘칸타타’ 등 단독형 제품과 스타벅스-동서식품, 탐앤탐스-광동제약, 할리스-웅진식품, 커피빈-매일유업, 엔제리너스-롯데칠성, 도토루-서울우유 등 커피전문점 브랜드와의 제휴형 제품들의 치열한 격전지가 되고 있다.
전체 커피시장은 커피믹스(약 1조원), 인스턴트 커피(약 1500억원), RTD커피(약 4000억원), 커피전문점(약 7000억원) 등으로 분류한다. 이 가운데 병·봉지 포장의 커피와 프림을 일컫는 인스턴트 커피는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다.
양대 축은 커피믹스와 커피전문점 시장으로 앞으로도 지속·고속 성장이 예상된다. 한편 RTD시장은 고객 수요가 끊이지 않을 것이란 낙관론 속에 일각에서는 커피전문점 커피와 커피믹스의 어중간한 사이에 존재해 접근성이 확실치 않다는 점, RTD보다 저렴한 커피전문점 커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성이 좋지 않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기후 악화, 약달러 등이 커피값 상승을 부추겨 국내 커피값 동향도 귀추가 주목된다. 먼저 동서식품이 지난 4월 25일부터 커피 제품의 출고가격을 9.0~9.9% 인상했으나 남양유업 등 동종 업체들의 가격 인상 계획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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