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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 “영원히 어른이 안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시계아이콘09분 06초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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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 “영원히 어른이 안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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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10 아시아>가 <매거진t>로 불리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우리는 ‘아역시대’라는 타이틀아래 중학교 1학년이었던 이 소녀와 처음 만났습니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어린 수지니를 연기했던 심은경은 이미 그때 데뷔 4년차 배우였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그녀와 ‘인터뷰100’이란 이름으로 다시 마주 앉습니다. 영화 <헨젤과 그레텔>, <불신지옥>, <반가운 살인자>, <퀴즈왕>, <로맨틱 헤븐> 개봉을 앞둔 <써니>, 드라마 <태양의 여자>, <경숙이 경숙 아버지>, <나쁜 남자>까지 대충만 불러도 그 사이 쌓인 필모그래피의 키는 성장기 청소년의 활발한 신체변화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훌쩍 자랐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쉬지 않고 작은 몸을 움직이던 어린 여배우는 지난해 말 훌쩍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반년 후 한결 성숙해진 얼굴로 잠시 짧은 방문을 감행했습니다. 허세는 없지만 기운은 당차고, 내숭은 없지만 수줍음은 피어나는 소녀가, 코 아래 솜털을 따라 하얀 구름이 만들어지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우유로 목을 축이며 영화에 대해, 음악에 대해, 인생에 대해, 외로움에 대해, 마음을 나눈 친구에 대해 속삭입니다. 이제 겨우 열여덟입니다. 아니 벌써 열여덟입니다.

100: 피츠버그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은 어떤가요.
심은경: 미국이 공부하기에는 (웃음) 참-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아이들도 많이 다르긴 해요. 가치관이랄까, 마냥 자유롭기만 할 것 같은데 예의가 필요한 순간엔 한국 아이들 이상으로 예의바르기도 하고. 일단 적응은 생각보다 빨리 했는데 아직까지 영어가 빨리 트이지 않으니까 그런 게 좀 어렵죠.


100: <써니>에서 전라도 사투리 숨기려고 전학 와서 별로 말 안 섞던 나미와 비슷한데요. (웃음)
심은경: 예. 어설픈 것도 많고 어수룩한 행동도 많이 하고, 그런데 이번에 한국 들어오기 조금 전부터 학교 아이들하고 많이 친해졌어요. 말도 좀 많이 하게 되었고.

100: 혼자 떨어져 사는 건 처음일 텐데 외롭지는 않나요?
심은경: 안 외롭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가끔씩은 별것 아닌 일에 울기도 하고. 나도 한국가면 엄마, 아빠 다 있는데... (웃음) 그런 생각도 들고. 속상한 일 있으면 민박집 주인아주머니랑 이야기하면 풀리기도 하고... 그래요.


100: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그 사이 바뀐 부분이 있어요?
심은경: 한국에 있을 때보다 잘 먹고 많이 먹어요. 그게 다 키로 간 것 같아요. 한 2cm정도 컸어요! 또 어릴 때부터 이런 생활을 쭉 해오다 보니까 많이 조급하기도 하고 좀 불안한 것도 있었거든요. 뭐랄까. 나는 왜 항상 제 자리 걸음일까, 이런 생각. 그런데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비록 영어는 서툴고 공부도 빨리 따라잡아야 하지만 좀 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좀 천천히 가면 어떤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내가 좋아하는 연기하면서 남들보다 조금 느긋하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모르게 책 읽는 습관도 생겼고, 그 전엔 엄마에게 의지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이겨내는 법도 배우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씩 성숙해져가는 것 같아요. 헤헤.


“이 손 하나도 캐릭터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나봐요”


심은경 “영원히 어른이 안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100: 사실 은경 씨를 만난다고 18살 때 썼던 일기장을 몇 십 년 만에 꺼내봤어요. 충격적인 건, 그 때가 지금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생각도 많고 그렇더라고요. (웃음)
심은경: 물론 전 아직도 사춘기라고 생각하지만 중학교 다니던 때가 좀 더 사춘기의 절정이었던 것 같아요. 어수룩한 면도 많았지만 저도 옛날이 좀 더 성숙했던 것도 같기도 해요.(웃음)


100: 그땐 뭐가 고민이었는데요?
심은경: 그때는 다-아- 고민이었던 같아요. 아무도 내 곁에 없다. 한참 음악에 빠져있던 때라서 음악이 나의 유일한 안식처다, 뭐 이런... 흐하.


100: 일기 써요? 아니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게 그걸 대신해주나요?
심은경: 일기를 쓰는데, 일기라기보다는 시 같은, 직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저만 알아볼 그런 글이에요. 그런데 엄마가 가끔씩 몰래 봐요. (웃음)


100: 필모그래피로 보자면 <써니>가 지금의 심은경을 가장 가깝게 그린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또래들하고 또래적인 고민을 하는 가장 평범한 역할이랄까.
심은경: <불신지옥>은 신들린 아이였고, <헨젤과 그레텔>은 나이는 어리지만 상처와 비밀이 있고, <퀴즈왕>도 교복만 입었지 정상적인 학생도 아니고 (웃음) 그런데 오히려 저는 <써니>의 나미가 평범한 또래의 아이라 어려웠어요. 사실 평범함을 연기한다는 게 제일 어렵잖아요.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10대답게, 더 소녀스럽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촬영 전에 강형철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영화를 통해서 아역을 벗어나보자고. 아역배우 심은경이 아니라, 배우 심은경이 되보자고. 그동안은 엄마에게 연기에 대해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감독님이 이제 엄마에게 연기 잘했는지 물어보지 말라고 하셨어요. 근데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서... 몰래 물어보기도 했어요. (웃음) 하지만 엄마도 딱 잘라서 이건 이제 감독님과 너와의 문제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저 옆에서 돌봐주는 것만 할 거라고,


100: 그렇게 혼자 헤쳐 나가는 중에 뭔가 짜릿함을 느낀 순간도 있었어요?
심은경: 감독님은 가끔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걸 해줄 때가 많았다고 칭찬하셨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에게 칭찬을 잘 못해요.


100: 자기에게 냉정한 편이군요
심은경: <써니>는 시사반응도 좋고, 영화 전체는 너무 좋은데 제 연기에 대해서는 그냥 아 저렇게 했구나, 그래요.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에는 더 잘해야지. 그렇게만 생각하죠. 연기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아서인지 제 자신에게 만족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사실 관심이 없는 분야는 부족해도 상관없거든요. 아무렇게나 좀 망쳐도 되고. 난 노력을 분명히 했지만 안 되는걸 어떻게 해, 하는 거죠. 그런데 연기에 대해서는 이만큼도 실수가 스스로 허락이 안 되는 거예요. 이만큼 했으니까 됐어, 잊고 다음 장면 잘하면 되지. 이런 마인드라면 좀 편할 텐데 그게 잘 안돼요.


100: <경숙이 경숙아버지>의 홍석구 감독은 “OK컷이 나더라도 꼭 재촬영을 요구하는 배우”라고 했고 <불신지옥>의 이용주 감독은 “화면에 손이 조금 잡히는 인서트 컷이라 해도 일일이 모니터를 다 체크한다”고 하더라구요. 꼼꼼한 편에 완벽주의자 같은 면도 있는 것도 같고.
심은경: 뒷모습도 진짜 캐릭터처럼 보여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손만 잡혀도 그게 어색하면 뭔가 전체가 아닌 것 같고, 이 손 하나도 캐릭터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나봐요.


100: 그간 어둡거나 비밀이 있는 캐릭터를 비교적 많이 해왔잖아요. 어때요? <써니>처럼 밝은 영화를 하면 마음이 좀 밝아지나요?
심은경: 밝은 영화나 어두운 영화나 연기적인 고민은 다 똑같아서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써니>는 얼핏 쉬워 보이기도 하지만 이게 결코 쉬운 역할이 아니더라고요. 일단 전라도 사투리에다가 술 취한 장면도 있고 어리바리하면서 웃겨야하고 게다가 빙의까지! (웃음)


“<써니>가 제 짧은 인생의 축약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심은경 “영원히 어른이 안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100: 혹시 무서움은 많이 타는 편이예요?
심은경: 무서움을... 타는 것 같지는 않고, 세상에 무서운 게 좀 있죠.


100: 뭐가 제일 무서운데요?
심은경: 엄마요.


100: 하하하. 이건 쓰지 말까요?
심은경: 아니요 괜찮아요. 엄마가 엄하게 혼내서 무서운 건 아니고요. 어릴 때부터 엄마와 거의 붙어 지내다 보니까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연기에 대한 마인드부터 시작해 대부분을 어머니를 통해 얻었으니까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려는 것도 있고. 무섭다기 보다는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거 같아요. 사실 친구 같아요. 너무 편하기도 하고.


100; 일기장도 보고? (웃음)
심은경: 휴- 그건 왜 보시는지...


100: 사실 <써니>는 엄마 세대의 이야기잖아요. 그 시대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감독님이 내준 숙제 같은 건 없었어요?
심은경: 기본적으로 촬영 전에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보네엠의 ‘써니’라던가 ‘타임 애프터 타임’같은 음악들을 다 구워주셨어요. 그런데 저는 80년대 10대나 요즘 10대나 별로 다를 게 없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너무 시대를 신경 쓰기보다는 지금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다, 고하니까 감독님께서, 벌써 캐릭터를 잡았네, 하셨어요. (웃음)


100: 학교 다닐 때 보면 ‘써니’처럼 여러 명이 우르르 그룹으로 친한 스타일이 있고 단짝하고만 다니는 스타일이 있잖아요. 저는 한 학년에 진짜 친구는 한명! 이런 식이었는데 은경 씨는 어땠어요?
심은경: 중학교 때 영화 속 ‘써니’처럼 친구들끼리 만든 그룹이 있었어요. 그게 이름이... ‘싸이코’의 뒤에 ‘이코’만 따와서 ‘이코 패밀리’라고... 하하. 총 7명이었는데 되게 재밌는 친구들이에요. 요새는 공부하느라 자주 만나지는 못해서 한 명 빼고는 생사가 확인이 안 돼요. (웃음)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 보고 싶다 친구야!


100: <써니>의 나미를 보면, 전학 초기에는 말도 못할 만큼 내성적이었다가 결국엔 용감할 정도로 발랄해지는 변화가 마치 심은경이라는 사람의 지난 10년을 압축해놓은 것 같던데요? 수줍음 극복하려고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심은경: 듣고 보니 이 영화가 제 짧은 인생의 축약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웃음) 감독님도 시나리오에서 톡 튀어나온 것 같다고 하실 만큼 나미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어릴 땐 낯을 너무 가려서 말도 잘 못하고 뒤로 숨고 그랬어요. 이제는 친해지다 보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시끄러울 때도 많고, 웃긴 면도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100: <라 붐>을 따라한 장면은 그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와! 하는 게 있는 순간이라는 거 아세요?
심은경: 영화 때문에 <라 붐>를 조금 봤는데 소피 마르소는 참 예쁘시더라고요. 어쨌든 그 장면은 저도 참 좋아요. 아! 나도 이런 멜로적인 분위기의 장면을 찍었구나. 내 필모그래피에 절대 없을 줄 알았는데! (웃음)


100: 저도 보면서 이제 살며시 여자 느낌도 나는구나, 했죠. (웃음) 사실 <퀴즈왕> 초반에 경찰서에 온 한재석씨를 게슴츠레 한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눈빛이 어쩐지 섹시하다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심은경: 아아아! 이런 이야기 처음 들어봐요. <퀴즈왕>은 대본을 보니 애가 너무 특이해서 그런 눈빛이나 목소리 설정을 잡은 건데, 촬영 때 장진 감독님이 “너는 어떻게 술 취한 아저씨가 어우 아가씨 맘에 들어,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냐”하시면서 엄청 웃으셨거든요. 영화 보고도 웃기다, 특이하다. 그런 평만 들어봤지. 섹시하다는 표현은 아직도 좀 쑥스러워가지고. 흐흐. 그래도 좋네요.


“여운이 많이 남는 멜로 영화를 좋아해요”


심은경 “영원히 어른이 안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100: 다른 영화나 혹은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해요?
심은경: 예. 많이요. <써니> 찍을 때 가장 영향을 받았던 영화는 스웨덴 오리지널 버전의 <렛 미 인>이랑 <뽀네뜨>였어요. 나미는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눈 땡글땡글하고 수줍은 소녀로 그리고 싶은데 제 성격이 소녀답지 못한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뽀네뜨>란 영화를 꺼내봤어요. 캐릭터는 확연히 다르지만 아기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 나미를 저렇게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아이로 표현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렛 미 인> 역시 장르는 많이 다르지만 그 두 어린 배우들 연기에서 느낀 점이 많았구요.


100: <렛 미 인>은 소녀 이엘리가 좀 더 야수 같고, 남자인 오스칼이 훨씬 소녀 같은 부분이 있잖아요.
심은경: 저랑 정말 친한 친구가 있는데요, 서태지 팬이라서 친해지게 된. 생각도 정말 깊고 둘이 공통된 취향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농담처럼 그 친구가 이엘리고 제가 오스칼이라고 그러고 놀아요. 오스칼과 제가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100: 어떤 부분이 비슷한데요?
심은경: 그 아이는 항상,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잖아요. 누가 놀아주기를, 어울려주기를. 저도 항상 친구를 기다려왔던 것 같아요. 진정한 누군가가 제 옆에 다가와 주기를. 마음으로 알아보고 가까이 와 주기를. 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은근히 친구가 자주 있었던 편은 아니었거든요.


100: 친구는 원래, 자주 오지 않아요.
심은경: 그러니까요. 또 단순히 친구라기보다는 저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와 주기를 항상 기다려왔던 것 같아요.


100: 먼저 찾아다닐 생각은 안했어요?
심은경: 엄마도 제가 외로워하는 거 보면, 네가 먼저 다가가야지, 하시는데 저는 다가간다고 생각했는데, 안 온 것 같기도 하고. 요즘은 바빠서 그런 생각 할 시간도 없지만. (웃음)


100: <불신지옥>의 이용주 감독은 “은경이가 좋은 감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시나리오 쓴 것도 꽤 있죠?
심은경: 꽤 쓰지는 않았지만 (웃음) 제 수준에서 완성된 단편이 딱 한편이 있어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라는 영화를 너무 인상 깊게 봤거든요. 그걸 모티브로 한국에서 일어난 한 실화 사건을 배경으로 쓴 시나리오가 있어요.


100: 일단, 멜로 영화는 아니군요.
심은경: 하- 멜로. 멜로. 예, 제가 아직 사랑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런데 멜로영화는 좋아해요. 로맨틱코미디는 아니고 여운이 많이 남는 멜로 영화.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의 <연연풍진>이란 영화를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100: 아니, 열여덟 소녀가 <연연풍진>을 도대체 어떤 경로로 봤단 말입니까. 저도 예전에 지직거리는 비디오로 봤는걸요.
심은경: 아... 그게.... 인터넷에... 저도 다운을 받고 싶지 않았으나... 달리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아! 영상자료원에 가야 하나요? 어쨌든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그래도 제휴로... 봤는데 어쨌든 <쓰리 타임즈>라는 영화의 포스터가 너무 예뻐서 찾아보다가 그 감독님을 알게 되어서 다른 영화는 어떨까 해서 <연연풍진>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이게 슬픈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운이 너무 깊게 남더라고요. 미국에 있을 때는 <비정성시>라는 영화를 봤는데 제가 그 격동의 역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특유의 느린 연출법이나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전히 마음에 많이 남아있어요.


100: 음악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아는데 영화가 아니라 음악 쪽으로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심은경: 미국에 혼자 있으니까 아무래도 음악을 더 많이 듣게 되요. 밴드도 만들고 싶고, 디제이도 하고 싶고, 지금 기타하고 드럼 레슨을 받는 중인데 기회가 된다면 음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니 하고도 싶어요. 물론 이제 기타 조금 치고 드럼 정말 쪼끔 칠 줄 아는 게 다지만. 올드팝과 락 특히 비틀즈가 제일 좋아요. 김현식, 유재하, 너바나, 핑크플로이드도 좋구요. 요새는 싸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한 음악까지 다양하게 듣는 것 같아요.


100; 이러니 <써니>를 따로 힘들여 이해할 필요가 없었겠어요. 김현식에 유재하라니!
심은경: 어떨 때는 정말 옛날로 가서 그때 당시의 학생이 되어보고 싶다는 상상도 해요. 그 당시에는 제가 좋아했던 아티스트들도 많이 나왔었고 그들의 음반도 쉽게 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좋아했던 취향의 영화들도 다 그 시대 때 많이 나왔으니까 한번 그때쯤 내가 살아봤으면 어땠을까 상상 해봐요. 더 행복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100: 음악은 연기와 다르게 본인에게 어떤 걸 주나요?
심은경: 연기할 때 상상을 하는 것 보다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걸을 때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되요. 음악 들으면서 상상하면, 정말 좋거든요.


“서태지는 9집이 안나올까봐 더 걱정이 되요”


심은경 “영원히 어른이 안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100: 트위터 아이디인 ‘abstracteur_ek’에서 ‘abstracteur’는 공상가, 망상가라는 뜻인데 공상에 자주 빠지는 편인가요.
심은경: 예. 너무 자주요. 가끔은 잠에서 깨고 나면 이 모든 현실이 다 꿈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100: 이렇게 말할 때 보면 영락없이 꿈꾸는 소녀인데 연기할 때는 엄청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들었어요. 성인 배우들에게 절대 밀리지 않을 만큼 당차다고, 좀처럼 기도 안 죽고.
심은경: 저는 연기할 때는 아무 생각이 안나요. 아무것도 생각 안하고. 주변에 신경을 거의 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떨 땐 카메라도 의식이 안 될 때도 많으니까.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되어버려요.


100: 연기자, 유명한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거의 평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살았잖아요. 그래서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하나,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나, 하는 고민을 또래보다 더 많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심은경: 제 인생의 롤 모델이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이예요. 보통은 비틀즈하면 존 레논이냐, 폴 매카트니냐로 파가 나뉘잖아요. 저도 처음엔 존 레논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비틀즈를 점점 알아가게 될수록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보다 조지 해리슨이 좋아졌어요. 관심은 조금 덜 받았지만 비틀즈의 음악에는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도 관심을 조금 덜 받더라도, 스포트라이트는 남들이 더 많이 받더라도. 한국영화에 좀 더 많은,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100: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보다 더?
심은경: 예. 그런 것보다 더. 예전에는 관심을 많이 받고도 싶어 했어요. 어린 마음에. 인기 같은 것도 솔직히 부러웠고.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잠시일 뿐이라는 것도 알겠고. 그냥 좋아해주는 사람은 좋아해주고 좀 안좋아해줘도... 에잉 말아라! 이러고. 스타가 되기보다는 누군가 알아봐주기 기대하는 것 보다, 묵묵히 하고 싶은 연기 열심히 하고, 제 연기나 삶으로 남들에게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멋있는 삶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00: 트위터에 어른이 되기 싫다, 라는 말을 써놓은걸 봤는데, 어른이 되기가 싫은 거예요, 아니면 지금 이 시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심은경: 저는, 이 시기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불안하고 아픈 것도 있지만 청춘이니까.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나만의 공상을 즐기는 것도 좋고요. 2년 뒤면 이제 스무 살인데 어른이 된다는 게 상상이 안가요. 영원히 어른이 안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냥 이 모습 그대로 피터 팬처럼 평생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 되겠어요? (웃음)


100: 포털사이트에 연관검색어로 뜰만큼 서태지의 팬으로 유명한데요. 최근 ‘서대장’에게 일어난 일들을 보면, 참 어른들의 세계란 말이죠. 혹 그런 이면을 보게 되었을 때 이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깨졌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어요?
심은경: 물론 저도 처음엔 놀랐고, 실감이 잘 안 났어요. 그런데 그건 개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랑하고 결혼하고 헤어지고, 그런 건 그 두 사람만이 아는 일이잖아요. 저는 그냥 서태지가 좋을 뿐이고 그 분의 음악이 좋을 뿐이에요. 그 사람의 사생활이 공개가 되었다고 해서 아 실망이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좋아했는데 이게 뭐야! 이런 마음은 없어요. 그리고 그냥 좀 그러면 어때요? 저는 그냥 9집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여전한 마니아인거예요. 뉴스들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9집이 안나올까봐 더 걱정이 되는.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사진. 백은하 기자 one@
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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