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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와 맞장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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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는 '절대' 어렵지 않다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와 맞장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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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지난 주말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진 않았다. 모차르트, 브람스, 베토벤, 말러,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에 그 난해하다는 스트라빈스키까지, 고전 음악과 현대음악까지 유명한 '클래식' 넘버들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연주자 별로 그 비싼 수입 CD로 대부분 수집했다고 자부했지만, 오페라만은 여전히 넘지 못한 산이었다.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나 푸치니의 '토스카', 비제의 '카르멘' 같은 '이지 리스닝' 오페라들, 그것도 유명한 스코어나 노래 위주로만 들었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오페라가 세 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 타임에 극 중 나오는 모든 노래와 대사가 영어가 아닌, 대개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 독일어로 진행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애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번에 보게 될 작품은 '시몬 보카네그라 Simon Boccanegra'. 귀에 낯선 제목만큼이나 어렵고 거대하고 두렵게 느껴진다.

'시몬 보카네그라'는 '아이다'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등으로 이탈리아 낭만파 오페라의 정점을 찍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Fortuino Francesco Verdi, 1813~1901)가 작곡한 작품이다. 한국의 오페라 무대가 아주 유명한 레파토리를 반복적으로 올리는 것과는 달리 국립오페라단이 준비한 '시몬 보카네그라'는 지난 2001년 단 한번 국내에서 상연되었을 뿐인 낯선 제목의 오페라로, 한국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를 맡아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명훈에게 '시몬 보카네그라'는 유독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1986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서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로 정명훈이 오페라 무대 지휘자로 데뷔한 작품이 바로 '시몬 보카네그라'이기 때문이다. 감미로운 선율과 감각적인 노랫말,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로 유명한 베르디의 작품을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휘자 정명훈이 지휘하고, 고성현, 한명원, 강경해 등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모두 모였다면, 마음 속 깊이 자리한 '오페라 공포증'을 게워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와 맞장뜨다 '시몬 보카네그라' 중 1막 1장 바닷가 장면


1857년,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된 '시몬 보카네그라'는 14세기 평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지중해의 해상권을 독점한 제노바 왕국의 총독 자리에 오른 실존 인물 '코르사로 보카네라'의 극적인 삶을 오페라로 옮긴 작품이다. 시대를 앞선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던 보카네라처럼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역시 여러 면에서 시대를 앞섰다. 프롤로그(서막) 포함 총 4막으로 구성된 '시몬 보카네그라'는 미성의 소프라노와 테너가 아닌, 저음의 바리톤과 베이스로 구성된 네 명의 남자들이 등장, 오페라 역사상 가장 어두운 무대의 프롤로그를 연출한다. 19세기 당시 오페라의 주류 트렌드와는 확실히 차별되는 점이다. 음침하다 못해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네 남자의 저음 하모니로 한 남자의 장대한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평민파의 정치가 파올로와 피에트로의 추대로 해적에서 총독 자리로 급상승하는 시몬 보카네그라의 프롤로그로 운을 뗀 '시몬 보카네그라'는 이후 25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숨가쁘게 3막까지 달려간다. 보카네그라를 둘러싼 다양한 선, 악의 캐릭터들이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고, 보카네그라의 여러 전사(前史)들은 그의 삶을 한층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사랑과 이별, 배신과 갈등, 승리와 패배 등 낭만파 오페라의 '디폴트' 요소들 역시 '시몬 보카네그라'에서 빠지지 않는다. 무대 상단에 위치한 자막기에서 쏟아내는 자막의 속도가 다소 빠르기는 하지만 충실한 고증과 현대화 작업을 거친 탓에, 원작과 실존 인물, 클래시컬 음악의 기초 지식이 없어도 내러티브를 따라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와 맞장뜨다 1막 2장, 시몬 보카네그라(고성현 분)와 아멜리아(강경해 분)


물론 여기엔 베르디 특유의 아름답고 감상적인 음악이 큰 역할을 차지한다. 굳이 언어의 미묘한 라임을 몰라도 문제 없다. '아이다'와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해 여러 불멸의 오페라 명곡들을 창조해낸 베르디답게 '시몬 보카네그라'의 노래들 역시 섬세함과 장엄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또한 무대 상단에서 내려 쬐는 핀 조명 대신 무대 측면과 후면의 빛 조명을 통해 극의 강약을 조절하며, 미니멀하게 창조된 구조물은 효과적으로 14세기 이태리의 분위기를 상징화한다. 정명훈의 적당히 '쇼맨십'이 가미된 지휘, 엄청난 성량과 곡 이해력으로 화답하는 성악가들의 훌륭한 연기와 노래는 극을 클라이맥스로 올려놓는다. 마침내 보카네그라가 모든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장대한 최후를 맞는 엔딩 장면에 오면 관객 모두 그의 입장이 되어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한방 맞았다. 지독히 진부한 말이지만, 음악이 '만국 공통어'였다는 진실을 퍼뜩 되새겼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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