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끼쳐서 미안합니다." 일본의 대지진 속에서 사흘 만에 구조된 할머니의 첫마디란다. 연일 계속되는 일본의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고 방사능이니 원전폭발이니 계속되는 속보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정작 그 난리통 속 일본 사람들은 담담해 우리를 더 놀라게 한다. 수시간을 걸어서 퇴근하고, 수백미터 줄을 서서 달랑 물 2병을 사가도 일본인들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다. 물론 시일이 지나며 그들의 인내심도 점점 떨어져 가는 듯하지만 담담함과 고요함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국민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헬로키티로 유명한 '산리오'라는 일본 기업이 있다. 전 세계 캐릭터 시장을 석권한 산리오는 브랜드 가치로만 15조원이 넘고 빌 게이츠의 인수 제의도 거절한 콧대 높은 기업이다. 그러나 그들의 눈부신 성공은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위기가 있었고, 일본인 특유의 정신으로 극복했다. 이름하여 '네바리쯔요이(ねばり-づよい)', 끈질김이다.
사실 산리오는 1974년 헬로키티 캐릭터로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뒤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감행했다. 1976년 미국, 1983년 유럽, 1987년 남미 시장에 진출했지만 결과는 실망 그 자체. 현지 사정에 어두웠던 탓에 1990년대까지 해외 매출은 전체 매출의 5%에 불과했던 것. 이뿐 아니다. 산리오는 약 1조원을 투자해 1990년 퓨로랜드와 1991년 하모니랜드라는 테마파크를 개장했지만 때마침 불어닥친 일본 불황 때문에 적자를 면치 못했다. 1981년부터 애니메이션 영화도 만들었으나 이 또한 수익을 내지 못한다. 거듭된 실패로 두 자릿수에 달하던 영업이익은 2%대로 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헬로키티 캐릭터가 소비를 조장한다는 비난부터 짝퉁 소동까지…. 이런 위기 속에서 산리오의 네바리쯔요이, 즉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의 정신은 끝내 빛을 발했다.
끈질긴 산리오의 위기극복사를 보자. 해외진출 초창기에는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 후 절치부심 철저한 현지화에 매진한 끝에 지금 헬로키티는 전 세계 70개국에서 팔리는 글로벌 히트 상품이 됐다. 테마파크는 어떤가. 산리오는 사옥 하나 없을 정도로 검소한 기업임에도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부동산이 테마파크다. 회사가 어려울 무렵 그 부동산이라도 팔자는 주위의 유혹을 끝까지 뿌리쳤다. 창업주 부부가 주말마다 공원에 나가 화장실 청소까지 하면서 정성을 쏟은 결과 지금은 연 매출 59억엔, 연 방문자 수 약 130만명에 달하는 대표적인 테마파크가 됐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헬로키티 대신 새 캐릭터를 등장시킨 애니메이션은 2004년, 2007년 연속 대히트를 기록하고야 만다.
일본인은 역사상 가장 불행한 민족 중의 하나라는 얘기가 있다. 원폭의 유일한 희생자이며, 나라는 부자일지 모르나 국민들은 몇 평 되지 않는 아파트에서 살인적인 물가에 쪼들리며 사는 민족. 그리고 지금은 자연의 대재앙까지. 그들을 돕는 데 우리도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구호 운동이 '오버(over)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보다 국민소득 5배가 넘는 부자나라 아닌가. 독도 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 등 현실적인 갈등요인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몇 년 전 배우 배용준은 한류 열풍이 부는 이 시점에 한국인이 이제는 과거 얘기를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쉽게 잊어버리기에는 우리가 겪은 아픔이 너무 컸다고. 과거 일본의 잘못을 떠올리기에는 지금 그들이 겪는 아픔이 너무 크다. 지금은 마음을 다해 일본인들이 네바리쯔요이의 정신으로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응원할 때다.
조미나 IGM(세계경영연구원)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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