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LOGO#>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드디어 2010년 제4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특히 수상소감이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계속 노미네이트되면서 수상소감을 매년 준비해왔다고 했는데 어떤 심정으로 그랬던 건가.
정성화: 올라가면 이런 말을 해야지 정도는 준비해왔다. 난 매번 내가 무조건 탈 거라고 생각하고 갔으니까. (웃음) 배우가 그 정도의 자신감은 있어야지. 그런데 그날만큼은 뭔가 적어가야겠다 싶었다, 부적처럼. 탈 것 같은 느낌이 조금 있었고. (웃음) 매니저한테 출력 좀 해오라고 줬는데 A4 용지에 그냥 크게 해온 거다. 좀 잘라서 가져와야되는데! 그래서 그냥 읽었더니 오히려 그게 득이 됐다. (웃음) 아무래도 뮤지컬을 하면서 처음으로 받은 상이기도 했고, 상황도 내가 한 얘기들도 좀 드라마틱했다. 그래서 이후 한국뮤지컬대상도 혹시 몰라서 가져갔는데 그게 부적인가보다. 그때는 절대로 안 탈줄 알았거든. 허허허.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수상소감을 어떻게 해야 되나 굉장히 고민이 된다. 더 세지 않으면 안 되니까 윗도리라도 벗어야 하나. 허허허허
“<아이러브유> 때 받은 박수는 이게 사는 거구나, 라는 걸 느끼게 했다”
<#10LOGO#> 뮤지컬 팬과 업계 관계자 모두가 인정하는 수상이었던 만큼 좀 ‘앗싸!’ 하는 느낌이었을 것 같다. (웃음)
정성화: 사실 그랬다. (웃음) 이때쯤 되면 뭔가 한번 소식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긴 했었다. <영웅>을 오래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도 받았으니까. 1등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을 못 받는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행히 상을 받았고 굉장히 좋았다. 남우주연상 정성화, 이렇게 부르는데 ‘아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개그맨으로 출발해서 뮤지컬에 발을 들였고, 개그맨이라는 이미지를 벗으려고 한 적은 없지만 그 선입견에 치우친 것들을 배제하는 작업을 굉장히 오래했다. 나도 뮤지컬배우로서 여러분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라는 것들. 2003년에 시작해서 2010년에 그게 된 거다.
<#10LOGO#>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정성화: 개그맨 생활을 그만두고, 드라마 주인공 사무실에 있는 직원 중 가장 웃긴 직원을 전전하며 설움도 많이 받고, 굉장히 잘할 수 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 같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도 했다. 한편으로 상을 받고 생각한 것이 그거였다. 상을 받는다고 해서 그 모든 것들이 보상되는 것은 아니구나. 나는 지금도 드라마에 가면 주인공의 친구다. 주인공 회사 직원 중 가장 웃긴 사람이고, 여전히. 그것은 아직도 배우로서 해결해야할 숙제고, 주어진 역할을 잘 소화해내서 그들에게도 뮤지컬처럼 좋은 걸 보여줘야 되는 상황이다.
<#10LOGO#> 그렇다면 여기 있어야겠다, 라는 결심을 하게 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정성화: 방송을 할 때는 내 직업이 너무너무 훌륭하고 이걸 끝까지 하다가 죽을 거야란 생각이 사실 없었다.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보다는 왜 나를 안 써주지? 왜 난 운이 없지?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2004년 <아이러브유> 첫 공연 커튼콜 때 박수를 받으면서 그걸 느꼈다. 그때의 박수를 잊을 수가 없다. 그 박수는 너 진짜 잘했어 여기 오기 잘했어, 라고 관객 모두가 인정해주는 박수였다. 그 전에는 소녀들이 꺅꺅 거리면서 그랬다. 오빠 너무 잘해요, 못해도, 오빠 너무 잘 생겼어요, 못생겨도. 물론 그 친구들의 반응도 소중했지만 어느 정도 문화 쪽으로 눈이 틔어있고 박수를 쳐야 되는 사람과 안 쳐야 되는 사람을 구분할 줄 아는 이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받았을 때는 이게 사는 거구나란 생각을 조금 하게 됐다. 그래서 그날 박수를 받고 그 이후부터 내 길은 뮤지컬이구나 싶었다.
<#10LOGO#> 그게 터닝포인트였나보다.
정성화: 그렇게까지 폭발적인 박수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연습할 때 우리끼리 짓궂게 했는데, 공연이 올라가보니 관객들이 너무 심하게 재밌게 보는 거다. 끝나고 엄청난 박수를 주시는데 뭐라 형연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만 쏟아졌다. 그 전에 드라마를 하면서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일까, 난 언제 잘 될까 싶었다. 부모님이 남들에게 “우리 성화 드라마 해”라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본적이 없고, 어디 나온다고 하면 “아~ 그 역할”이라 말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일들이 계속 이어져오다보니 이곳에서 나도 뭔가 터닝 포인트를 맞아 정성화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갖게 된 거다. 그리고 아직까지 잊을 수 없는 박수가 하나 더 있는데, 난생 처음 기립박수를 받았던 때다. 2006년 충무아트홀에서 <아이러브유>를 할 때였는데, 그때는 거기가 800석이었다. 내가 하는 마지막 공연 날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인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일어나는 거다. 여기에 비교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도박중독인 사람들은 몇 억을 따면 뇌에 도파민 수치가 높아져서 미친다고 하질 않나. 그리고 그 다음부터 행복지수가 거기까지 오르지 않으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게 뭔지 알겠더라. 허허허허. 그때는, 정말 짜릿했다.
<#10LOGO#> 그럼 그 이후로 행복지수가 그때만큼 올라간 적이 없나? (웃음)
정성화: 도박과 이것의 다른 점이 그거겠지. 내가 굉장히 열심히 준비한 날 관객들이 그런 박수를 보내주면 아까 말한 도파민지수가 엄청 높아지는 것 같다. (웃음)
“5년 뒤에는 뮤지컬이 아닌 곳에서도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10LOGO#> 하지만 얘기한 것처럼 무대에 비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굉장히 기능적으로만 쓰이게 된다. 두 영역에서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움직인다는 것이 느껴진다.
정성화: 물론이다. 마음을 비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얼마 전에는 카메오 출연제의를 받았는데, 이건 카메오가 아니라 그냥 단역이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안 할까라고도 생각했는데 그래도 내가 이것을 한다라는 것을 보여줘야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다. 주인공 얘기하는데 뒤에서 얼굴 반만 나오고, 몇 씬 되지도 않는다. 서럽기도 했지만 열심히 했다. 이게 지금 내 현주소라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뮤지컬 팬 여러분들이나 이 업계 사람들은 ‘네가 왜 그런 짓을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인생 전체의 청사진을 놓고 봤을 때 10년 뒤나 5년 뒤에는 그 바닥에서도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러면 뮤지컬업계에서도 환영할만한 일이고.
<#10LOGO#> 최근엔 장르파괴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외부에서 뮤지컬로 유입되는 이들 만큼 여기서 TV나 영화로 진출하려고 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에게 역으로 조언을 해준다면.
정성화: 나 같은 경우는 어릴 적부터 그쪽 일을 해와서 거기 사람들에게는 뮤지컬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도 정성화는 뭐, 이런 분위기가 있다. 현재 뮤지컬에 계시는 분들이 타 장르로 진출할 때는 나보다 좀 더 좋은 조건으로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말 잘 해야 된다는 거다. 아무래도 큰 역할로 그쪽에 넘어가면 업계사람들에게 한번이라도 실망을 주게 되면 다시 하기 힘들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해야 된다.
<#10LOGO#> 뮤지컬, 영화, 드라마를 다 아우르고 있는데, 장르별 연기가 다르다고 생각하나.
정성화: 기본적인 궤는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카메라 연기와 무대 연기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관객을 보고 하는 무대와 카메라를 보고 하는 카메라 연기는 결국 비슷하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주변 환경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관객의 반응을 같이 치고 올라가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
<#10LOGO#> 다양한 탤런트가 있는 만큼 오히려 쉽게 인지도를 쌓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무대에 계속 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성화: 타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에게 감동과 행복을 주는 장소가 무대다. 여기서는 관객들과 실제로 플레이를 하면서 호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며 강약이나 템포 조절을 할 수 있다. 고무줄처럼 베리에이션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거지. 관객들의 반응조차 공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배우를 더 침착하게, 더 무대에 빠져들게 한다. 프라이드를 만들어주고 여기 계시는 분들은 모두 내편이다, 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무대는 못 떠난다.
<#10LOGO#> 스스로도 자신의 선입견을 배제하는 작업을 해왔다고 했는데, 그 처음이 <맨 오브 라만차>였던 것 같다. 그 작품으로 인해 무엇이 가장 많이 변했나.
정성화: 주인공 캐릭터가 많이 들어온다. (웃음) 그동안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 있는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저 친구가 저런 것도 할 수 있구나 한번 시도해보자, 라며 업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게 달라졌다. 아무래도 대극장 무대에서 흥하다 보니까 팬 여러분들도 그만큼 많이 생겼고. (웃음)
<#10LOGO#> 아직도 보여주지 못한 필살기가 있나.
정성화: 악역이겠지.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쟤가 저런 것도 하네, 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내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 중 하나가 의외성이다. 정성화가 게이를 하네? <영웅>으로 흥하고 있는데 뮤지컬이 아니고 연극을 하네? 이런 것들. 악역도 그런 부분의 일환인 것 같다. <레미제라블>이 들어오면 자베르 경감을 해보고 싶다.
<#10LOGO#> 나오면 든든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던데, 어느 정도 도달한 것 같나.
정성화: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그 결과를 안 보려고 한다. 그것을 재보는 순간, 그 다음부터 작업 속도가 굉장히 느려진다. 그 위치를 의지하면서 작업을 하게 되니까. 배우로서 제일 하지 말아야 될 일 중에 하나가 ‘내가 대한민국 뮤지컬계의 이 정도 위치야’라든지, ‘후배들에게 커피를 얻어먹어야 될 위치야’ 같은 생각으로 대접 받으려고 하면 안 되는 거다. 그러는 순간 어디서든 하락세를 걷게 되어 있다. 언제나 앞만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10LOGO#> <맨 오브 라만차>에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되어질 모습을 연모 하겠나이다”라는 대사가 있다. 정성화의 앞으로 되어질 모습은 어떤 것인가.
정성화: 글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까지 목표를 잡아도 될 것 같다. 해외에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내 공연을 기웃거리는 사람. 늙어서도. 목소리가 받쳐주는 한은 5~60대에까지도 하고 싶다. 반드시 50대가 지나서 <맨 오브 라만차>를 해보고 싶다. 그때의 돈키호테는 지금처럼 파워는 없겠지만 엄청난 밀도를 가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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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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