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 일본 대지진 여파로 엔화 값이 급등하면서 서울 남대문과 명동 일대 암시장에서 엔화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듣고 직접 찾아가 봤다.
"엔화 가치가 곧 떨어질지 모르니 지금 당장 파세요."
일요일인 20일 남대문에서 만난 한 환전상에게 엔화를 갖고 있다며 시세를 물었더니 다짜고짜 "갖고 있는 엔화를 몽땅 살 테니 서둘러 팔라"고 종용했다.
가격을 물었더니 1000엔당 1만4300원씩 쳐주겠다고 했다. 은행에서 팔 때 1000엔당 1만3710원 정도 받는 것을 감안하면 1000엔당 590원 더 쳐주는 셈이다. 일본 지진이 나기 전 남대문 암시장 시가가 1000엔당 1만3000원 내외였으나 최근 열흘 새 10% 정도 급등했다고 한다.
이 기간 은행의 원-엔 환율이 3.6% 정도 오른 걸 감안하면 최근 남대문과 명동에는 엔화 가수요로 인한 '엔화전쟁'이 만만치 않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더 기다리면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말에 그는 "대지진 복구사업이 시작되면 엔화가 급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고베 대지진 때도 잠시 강세를 보였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말했다. 이어 "1400억 달러의 재산피해를 낸 1995년 고베 지진 후 4개월 동안 달러대비 엔화가치는 약 20% 올랐고 당시 엔화는 사상 최고치인 79.25엔을 기록했다"면서 "그러나 복구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약세로 돌아서 연말에는 고점 대비 28%까지 하락했다"면서 이론적인 근거까지 제시했다.
좀 더 둘러보고 오겠다고 한발 빼고 다른 곳으로 가봤다.
명동에서 만난 50대 암달러상 B씨는 "엔화를 바꾸려는 일본인은 줄었지만 한국인 숫자가 그 이상으로 늘었다"고 귀띔했다. 늘어난 것은 엔화를 팔려는 한국인들의 숫자뿐 아니다. 액수도 커졌다. B씨는 "예전에는 소액으로 거래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어디에서 났는지 엔화 뭉칫돈이 계속 나온다" 며 "예전에는 관광객 위주로 몇만엔에서 몇 십만엔 수준이었지만 요즘에는 100만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환전상들이 엔화 사재기에 나서는 건 단기 매매차익을 위해서다. 약 두 시간 정도 둘러봤는데 환전소와 암달러상이 제시한 엔화값이 1000엔당 1만3300원에서 1만4000원으로 다양했다. 정해진 시세없이 '부르는 게 값'이었다. 천재지변이란 특수 상황에 나름대로 지켜지던 시장의 컨센서스가 무너졌다고 말하는 환전상도 있었다.
실제로 남대문에서 만난 50대 암달러상 C씨에게 14만500원 주고 1만1000엔을 산 뒤 약 한 시간이 지나 다른 곳에서 원화로 바꿨다. 그렇게 해서 받은 돈은 15만2300원. 불과 한 시간 사이에 1만1800원의 수익을 남긴 셈이다.
한편 남대문과 명동 일대의 일본인 관광객 수는 눈에 띌 만큼 줄었다. 명동에서 마사지숍을 운영하고 있는 윤모씨(47)는 "개업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진이 터져 일본인 수가 줄어들어 속상하다" 며 주변 상인들도 다 같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7일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일본인 입국자 수는 2만6790명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만7507명보다 28.5% 줄어든 수치다. 여행사 하나투어의 경우 일본관광 예약자 5000명 중 4000명이 취소했고 신라면세점도 지진 사태 발생 후 20%를 웃돌았던 일본인의 매출비중도 19%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조목인 기자 cmi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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