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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病 고치자]지을수록 빚더미..임대주택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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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젠 '가지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입주 별따기..만성 빚더미 만성 악성구조


[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있는 김영제(53)씨는 수도권의 전용면적 28㎡(12평)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두 자녀와 이곳에 이사온 지 4년째다.

이곳에 온 후 김씨는 다달이 만만치 않은 액수가 지출되는 월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방도 2개나 돼 다 큰 자녀들에게 어느 정도 독립된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어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게 됐다.


임대아파트에 들어올 때는 2종 기초생활수급자였지만 2년 전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해 돈벌이가 생기면서 일반세대로 편입됐다. 김씨는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오기 위해 7년을 기다렸다. 대기 순번이 길게 늘어서 있어 영구임대아파트 입주는 하늘의 별따기다.

입주 후 지난해까지 보증금 200만원에 월 4만원씩을 내고 살았다. 지난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상실해 일반세대로 편입되면서 보증금이 400만원으로 불었다.


모자란 200만원을 채우기 위해 김씨는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야했다. 같은 단지에 사는 입주민이라도 임대보증금이나 임대료가 다르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소득이 생기면 자격을 상실한다.


김경자(65ㆍ가명)씨는 17년 전 임대아파트가 준공될 당시 무주택세대주로 입주했다. 예전에 다친 허리병이 도져 2년 전 디스크 수술을 받고 기초수급생활자가 됐다. 외동딸이 출가한 이후 혼자 지내고 있지만 보조금 외에 생활비를 조금씩 받아 산다.


이씨는 매달 25만원씩 나오는 보조금을 손에 쥔다. 월 4만7000원 정도를 임대료로 내고 2만8000원 정도를 일반관리비 납부한다. 공동전기료 전액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대신 내주고 쌀과 부식 등은 정기적으로 인근 복지관 등에서 지원받는다.


◇아직 턱없이 모자란 임대주택=국내에 공급된 임대주택은 132만가구 정도다. 여기서 5ㆍ10년 공공임대나 사원임대, 매입임대 등을 뺀 민간과 공공부문의 10년 이상 장기임대주택은 69만 가구로 집계된다.


이 중 49만가구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했고 서울시 SH공사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급한 주택이 14만8000가구 정도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공급된 우리나라의 장기공공임대주택 비율은 많게 잡아도 4.8%에 불과하다. 장기공공임대주택의 분류기준은 통상 10년 이상 임대로 거주가 가능한 경우다. 영국, 프랑스 등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월등한 선진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장기임대주택 중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 등 가장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사는 곳이 영구임대주택이다. 이제까지 전국적으로 LH가 14만가구, SH공사 등 지자체가 5만가구를 공급했다.


영구임대주택에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 국가유공자, 한부모가정 등이 많이 입주해 있다. 이곳에 사는 입주민 대부분은 그만큼 사회적 지원이 절실한 계층이다.


영구임대주택은 분당ㆍ일산 등 1기 신도시개발사업이 한창이던 1989년에서 1992년 사이 건설됐다. 이후 20여 년간 건설이 중단됐다가 2009년이 돼서야 재개됐다. 이웃들의 반발도 문제지만 재원 마련 등 정책적인 방향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간 탓이다.


영구임대주택은 보증금이나 임대료가 낮고 도배, 장판, 씽크대 교체는 물론 난방, 배관설비 개보수 등 돈이 많이 드는 시설개선도 무상으로 해주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입주 물량이 풍부했던 공급 초기에는 기초생활수급자는 물론 저소득 무주택세대주의 입주도 많았다. 이후 공급이 중단되면서 서울이나 수도권의 경우 지금은 대기순번을 받아 5~6년씩 기다려야 입주가 가능하다.


분당의 한솔7단지와 인근 영구임대아파트 등 3개 단지 4000여 가구의 입주를 기다리는 대기자만 2600여 명이다. 통상 1년에 10~12% 정도의 입주민이 교체되는 것을 감안하면 마지막 순번 대기자가 이 단지에 입주하려면 6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지을 수록 빚더미..사회복지시스템 연계도 절실해=영구임대주택을 많이 지어 더 많은 저소득층을 지원해야하겠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집값 하락과 슬럼화를 우려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큰 문제지만 돈만 충분하다면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임대주택을 짓는데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원가 1억원짜리 임대아파트 한 가구를 지으면 그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고 많지 않은 보증금도 부채로 잡힌다. 한번 지어놓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운영하고 유지보수하는데는 장기적으로 그 이상의 돈을 쏟아 부어야한다. 영구임대아파트의 임대료나 관리비 연체율도 20~30%에 달한다. 10~20개월씩 장기체납한 경우도 수두룩하다.


정동희 분당 한솔7단지 관리소장은 "1420가구가 입주해 있는 우리 단지의 월 임대료 총액이 8000만원 정도인데 인건비나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돈은 매달 그 몇 배는 될 것"이라고 했다.


재원 문제보다 심각한,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도 많다. 18년째 영구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김경자씨는 3년 전 이웃집 여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김씨는 도리어 폭행범으로 몰려 곤혹을 치뤘다. 결국 현장을 목격한 이웃주민들의 증언으로 곤경에서 벗어났다. 김씨에게 폭행을 가한 여성은 법원의 정신감정판단 결과 심각한 정신질환자로 판명돼 결국 병원에 격리됐다.


상습적으로 민원을 넣어 주변을 괴롭히는 입주민들도 더러 있다. 김씨는 "영구임대아파트의 경우 상습적 민원과 고소 고발로 이웃주민들이나 관리사무소, 관공서를 괴롭히는 사례가 자주 있다"며 "관리사무소나 지자체 등에 얘기해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령화나 고착화도 문제다. 수도권의 A영구임대 단지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60%를 넘는다. 입주민 연령대도 평균 60대여서 주변에서 노인들만 사는 가난한 단지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1000가구가 넘는 B영구임대 단지에는 단지 전체에 초등학생이 5명 밖에 안된다.


자활이나 자립 비율도 낮다. 입주민에게 주어지는 지원을 바탕으로 입주한 후 생활이 나아지거나 자립기반이 만들어져야하는데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면 기초생활수급자 지위가 박탈되기때문에 영구임대 단지는 낮에도 북적인다.


이태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실장은 "슬럼화 등의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임대주택의 문제점으로 부각됐다"며 "주택과 복지정책이 연계돼 수요자 중심의 정책이 실현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실장은 "사회복지시스템과 연계 되지 않는다면 국가가 엄청난 돈을 투입하더라도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진 기자 asiakmj@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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