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탄생 축하하고 안전한 운항 기원 위해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조선소는 선박을 건조해 선주에게 인도하기 전 선박의 이름을 붙여주는 ‘명명식(命名式)’이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명명식은 선박이 세상에 “내가 태어났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자리다. 그만큼 선주나 조선사에게는 의미가 매우 큰 행사다.
명명식 행사장에서 선박의 이름을 붙여주는 역할을 맡은 ‘스폰서’는 선박과 승무원의 무사항해를 위해 엄숙하게 축원문을 낭독하고 도끼로 명명대(도마처럼 생긴 나무 받침대)에 올려진 밧줄을 힘껏 내리친다. 여기서 밧줄은 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랄 때 영양분을 공급받았던 탯줄을 의미한다.
‘부웅, 부웅, 부웅’. 세 번의 뱃고동이 고고성(呱呱聲)을 울리면서 꽃바구니가 터지고 오색 꽃종이가 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미리 선박 한켠에 선박의 이름이 쓰여진 거대한 현수막이 내려온다. 비로소 선박은 탯줄을 끊고 세상에 태어남을 만방에 알리는 것이다.
하객들의 축하박수와 함께 스폰서는 선박 옆구리 쪽에 따로 마련된 단상으로 이동한다. 하나, 둘, 셋. 그물망 주머니에 싸여 줄에 매달린 샴페인을 구령에 맞추어 선체를 향해 힘껏 던진다.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샴페인은 하얀 거품을 내뿜으며 산산조각이 난다.
명명식 진행자는 샴페인을 감싼 그물망 주머니에서 병 모가지만 따로 챙겨서 나무상자에 담는다. 이 상자는 선장실에서 스폰서를 통해 선장에게 전달돼 브릿지 한 켠에 모셔진다. 샴페인의 한 조각은 이렇게 해서 긴 세월을 배와 운명을 함께 하게 된다.
마치 한국인들이 새 차를 사서 고사를 지낼 때 바퀴에 막걸리를 붓고 마른명태를 실로 감아 트렁크에 넣어두는 행위와 신기하게도 비슷하다.
이러한 의식은 천주교의 세례의식이 접목되었다는 것이 통설이 되어 있다. 꽃바구니와 샴페인을 터뜨려 안전 항해를 기원하고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또 다른 세례의식인 셈이다.
또 한 가지는 중세기에 선박을 진수할 때 노예나 범죄자를 선박에 깔리게(Breaking) 해 피를 보게 하는 의식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면 피와 같은 색깔의 적포도주를 뱃머리에 깨는 관행이 여기에서 나왔고, 이것이 오늘날 ‘샴페인 브레이킹(Champagne Breaking)’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철도가 개통돼 첫 운행을 할 때 열차가 얼음을 깨면서 출발을 알리는 것도 이러한 관행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대부분의 나라가 샴페인으로 ‘브레이킹’ 행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지만 종교에 따라 달리 하는 국가도 있다.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이슬람 국가에서는 샴페인을 쓰지 않고 반드시 자국에서 성수(聖水)를 가져와 브레이킹으로 쓴다. 인도에서는 특산물인 코코넛을 쓰기도 한다.
방법은 달라도 새 생명에 대한 축복과 안전항해를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한편,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등 해양 플랜트도 명명식을 개최한다. 다만 FPSO중에는 자력으로 이동이 불가능하므로 샴페인 브레이킹 행사는 생략되곤 한다.
<자료: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STX조선해양>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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