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아이폰 부품 대부분이 한국산이다. 6개월이면 아이폰을 따라 잡을 수 있는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삼성전자와 함께 개발한 갤럭시S였다."
정만원 SK 부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1 방송통신 신년인사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SK텔레콤 재직 당시 애플 아이폰 출시를 포기한 이유로 하드웨어를 손꼽았다.
SK텔레콤이 향후 아이폰 도입에 나서겠냐는 질문에 정 부회장은 "항상 말했듯이 AS와 배터리 등 소비자 편익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라도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편익만을 내세우고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는 정 부회장의 답변이 국내 IT업계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모바일 게임 업체 한 사장은 "아이폰이 성공한 이유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에 있는데 단순히 하드웨어만 보고 6개월이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점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국내 최대 통신업체 최고경영자를 지낸 분의 이런 시각이 한국 IT 업계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무에 가려 숲을 못 보듯 하드웨어 강국이라는 그림자에 가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라는 큰 시장을 놓치고도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달 초 스마트폰 6000만대를 팔겠다는 목표를 밝힌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역시 세계 최고의 하드웨어 성능만을 강조할 뿐이었다.
시장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두 업체의 전 현직 최고경영자(CEO)들은 아직 하드웨어 위주의 사고에 사로잡혀있는 셈이다.
아이폰의 핵심 부품들 대다수는 한국산이다. 스마트폰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중앙처리장치(CPU)를 비롯해 메모리, 음향과 영상을 좌지우지하는 각종 반도체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면에서 살펴보면 한국산을 찾아보기 어렵다. 거의 대부분의 콘텐츠와 서비스가 외국산이다. 우리 국민들이 모든 사생활을 공개하면서까지 매일 접속하는 트위터, 페이스북도 모두 해외 서비스다.
스마트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KT 역시 주요 서비스와 상품은 애플 아이폰과 앱스토어로 귀결된다. 안드로이드폰 시장의 강자로 급부상한 삼성전자도 운영체제(OS)와 서비스 모두 구글에 종속된 처지다.
서비스 종속을 우려해 삼성전자. SKT 등이 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이들 전현직 CEO들이 여전히 하드웨어를 강조하고 있어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 주목된다.
SKT는 플랫폼 사업 부문을 별도로 분리하며 투자를 하고 있다.
플랫폼 사업은 SKT나 관계사들이 개발해왔던 내비게이션 서비스 T맵, 디지털음원서비스 멜론, 문자메시지, 영상통화 등 각종 기반 기술들을 하나의 서비스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사업이다.
SKT는 한국형 앱스토어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T스토어에 막대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 1억 다운로드를 돌파하는 등 대표 토종 앱스토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개발자들과의 상생을 위한 상생협력센터 역시 1인 개발자와 영세 소프트웨어 업체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모바일 콘텐츠와 서비스 역량 확대를 위해 포털들의 인력들을 계속 수혈하고 있다. 올해만 총 800여명의 관련 업계 전문가들을 뽑는다는 소문까지 이어지며 포털과 중소 콘텐츠 업체들이 인력유출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시대가 열리며 콘텐츠를 장악한 포털이 승자가 됐듯이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차별화된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갖춘 애플과 구글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점을 IT 업계는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