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2일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곤파스'가 정치권의 불법사찰 논란을 증폭시켰다. 태풍의 피해가 확산되면서 불법사찰 피해자로 알려진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이 이날 방송 출연을 돌연 취소, 청와대의 방송출연 금지 압력 의혹으로 번지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정 의원은 이날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를 비롯해 3개의 라디오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태풍의 영향으로 정전이 발생하면서 방송 녹음은 정지됐고, 이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방송 시간과 겹치자 '공평하게' 예정된 방송을 모두 취소했다.
그러자 당초 정 의원의 출연 소식이 게재됐던 평화방송 홈페이지에는 이날 <청와대, 불법사찰 피해 의원 방송 출연 금지 압력?>이라는 문구로 대체됐다. 전날 또 다른 사찰 피해자인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당의 '자제 요청'을 받아들여 이 방송과의 인터뷰를 취소한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불법사찰 배후로 지목한 정 의원까지 방송을 취소한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정 의원은 이날 아시아경제와 전화통화에서 "태풍으로 출근도 어렵고, 정전도 발생하는 상황에서 무거운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취소했다"며 "날씨 상황이 좋아지면 (문제 제기를)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상득계 장제원이 의원이 전날 트위터를 통해 "소장파는 패륜"이라고 원색 비난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가치도 없다"면서 "패륜이라는 뜻을 모르는 것 같다. 국어공부나 열심히 하시라"고 일축했다. 그는 "패륜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인데 도리란 인간의 존엄이나 가치를 중요시하는 것이고, 이 도리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아니냐"고 설명했다.
이처럼 불법사찰 논란을 둘러싼 한나라당내 친이(친이명박)계 내분은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내 소장파는 사찰 배후로 이상득 의원을 지목하며 청와대와 이상득계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고, 이상득계 의원들이 강력 반발하는 과정에서 거친 독설이 오갔다.
정태근 의원은 전날 MBN과 인터뷰에서 "이상득 의원과 직접 대면하는 과정에서 (사찰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을)확인했다"고 사찰 배후론을 거듭 제기했고, 정두언 의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에 차지철(박정희 정권의 마지막 경호실장)이 살아 돌아왔다"고 격분했다. 남경필 의원도 이상득 의원을 '빅 브라더(조지 오웰 소설에 나오는 거대한 감시자)'로 규정하며 지원 사격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이 의원은 "나는 싸우기 싫다"면서도 "고발 할테면 고발하라고 해라"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친이계 내부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당 지도부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안상수 대표와 함께 양측 간의 중재에 나서겠다"며 말했다.
지연진 기자 g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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