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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잃어버림과 아쉬움

시계아이콘01분 46초 소요

USB 메모리는 컴퓨터와 연결하는 이동식 기억장치입니다. 손가락 한마디에 불과한 이 USB속에는 엄청난 자료를 저장할 수 있지요. 비록 몇 천원에서 몇 만원에 불과한 가격이지만 직업에 따라 자신의 노하우가 담겼을 수도 있고 거래연락처 또는 매출현황과 같은 영업비밀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몇 년 전엔 국방부에서 1급 비밀을 취급하는 고급장교가 USB를 분실해 회수 시까지 군의 보안에 비상이 걸린 적도 있었고 대학교정에서 USB를 습득한 학생이 대외비의 비밀스러운 내용을 열어보고 학내 비리를 언론에 폭로한 적도 있습니다.

그처럼 ‘미니컴퓨터’를 잃어버린 것도 문제지만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소속기관이나 회사의 존폐를 좌우할 시한폭탄이 되기도 하죠. 저도 USB를 늘 사용하기에 집필중인 여러 권 분량의 원고와 자료가 제법 많이 입력돼 있는 편입니다.


카페나 휴게실, 지하철이나 등산길에서 20분 정도의 짬만 나면 노트북에 연결해서 작업을 하지요. 그걸 4개월 전에 어디선가 잃어버리고 동선을 역으로 추적했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아무 연락처도 안 적힌 작은 메모리가 설사 쓰레기통에 버려진들 누가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아무리 중요한 자료라도 타인에겐 쓸모없는 존재가 되니 컴퓨터에다 따로 복사해놓지 않은 걸 크게 후회했지요. 물론 사흘간 글 한줄 쓰지 못했습니다. 쓰지 못하는 것도 그렇지만 심혈을 기울인 책의 앞부분을 그대로 복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아쉬워 쓸 엄두가 나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3일 후 한 은행간부가 그걸 습득해 자신의 컴퓨터에 연결해 보고 자료 중에서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찾아서 연락을 해 왔습니다. 명동성당 앞에서 USB를 돌려받으며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두 권의 책을 탈고했습니다.


문제는 이틀 전 PC방에서 최종원고를 출판사로 전송한 직후 원인도 모르게(아마 바이러스감염) USB에 저장된 모든 내용이 사라지는 황당한 경우를 경험한 것이죠. 여기저기 가까운 컴퓨터의 구멍이란 구멍엔 다 집어넣어도 작동될 내용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유명메이커 제품이라 애프터서비스(AS)를 신청하니 공장으로 보내봐야 소생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멀쩡한 기기가 한순간에 먹통이 되는 현상. ‘왜 자료를 전부 백업 받아 놓지 못 했던가?···’ 불과 4개월여 전에 했던 후회와 통탄을 또 해 봅니다. 어제 저녁엔 '보내주신 제품은 오늘 도착 되었습니다'란 담당자의 친절한 문자를 받고 그의 전지전능을 기대하며 기대 반 포기 반으로 마음 비웠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우린 물건도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면 결코 아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사는지도 모르죠. 이 어리석은 중생에게도 한 해가 어느덧 목전에 걸려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라진 메모리에서
시인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를 떠올려 옮겨봅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 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
알듯 말듯 한 이 시를 떠난 USB에 바치며 새로운 USB에 시인의 다른 시를 들려줘 봅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마지막 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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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2개월, 변변치 못한 글로 매주 수요일 <경제레터> 필진이 되었습니다. 오자와 실수를 거르지 못할 정도로 새벽시간에 떼밀려 쓴 글들에 대해 너그러이 용서 바랍니다.
이젠 쇠잔등에서 내려 호랑이등에 올라타기 위해 발걸음을 한 박자 높여서 2010템포로 조절할 생각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신데 대해 삼가 고마움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사평론가 김대우 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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