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지난 2일 오후 7시경 경기 하남시 미사리 인근 식당에서 콧수염과 선글라스에 사이클복을 착용한 40대의 한 남성이 검거됐다.
지난 7월 회사돈 890억원을 챙겨 3개월간 감쪽같이 행적을 감췄던 동아건설 자금부장 박 모씨다. 경찰조사 결과 박 씨가 빼돌린 돈은 1000여억 원이 더 추가돼 189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 씨는 검거 당시 면허증도 타인의 것을 지니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타인의 신분증과 변장 때문에 헛갈렸지만 계속 추궁하자 범인임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박 씨는 2001년 경마로 막대한 손실을 본 후 회사공금을 빼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인맥을 적극 활용했다. 박 씨는 2004~2008년 하자보수보증금 명목으로 건설공제조합에 질권설정을 한 후 예치된 477억 원을 횡령했다. 돈이 예치된 하나은행 차장 김 씨는 박 씨의 학교 선배로 서류상으로만 질권설정을 하고 전산에는 입력하지 않았다.
또 박 씨는 2008년부터 올해 3월까지 예금청구서에 법인인감을 미리 찍어두는 수법으로 회사자금 523억원을 횡령했다. 고교 후배인 회사 자금과장 유모 씨(37)가 눈을 감아줘 가능했다. 유 씨에게는 수시로 수백만원씩 제공했다. 김 씨는 3~6월 서류 위조로 동아건설 채무변제금 중 898억원도 빼돌렸다.
박 씨는 이렇게 횡령한 돈을 도박, 주식투자, 빌라와 외제차 구입 등 호화생활을 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씨는 주식투자 손실 150억원, 경마 200억원, 사설 카지노 등 350억원, 강원랜드 카지노 190억원, 포커도박 50억원 등 총 940억원을 썼다.
또한 박 씨는 3월 경기 하남시 감북동에 660㎡(약 200평)가 넘는 16억원 상당의 단독주택을 구입했으며 4월 전 동아건설 자금부 경리직원인 내연녀 권모 씨(32)가 살 서울 강동구 상일동의 257㎡(약 78평)짜리 A빌라도 3억3000만원에 빌렸다. 2007년에는 경기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에 6억원대 별장을 샀고 또 평소 벤츠, BMW 등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
박 씨는 경찰수사가 시작된 7월 8일 이후 3개월간 감쪽같이 행적을 감췄다. 박 씨가 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연녀와 철저한 준비 때문이다. 박 씨는 횡령의혹이 회사에서 제기되자 7월 8일 휴가를 낸 후 권 씨가 사는 상일동 빌라에 숨어 살았다. 2006년 박 씨와 사귀기 시작한 권 씨는 부인 송 씨조차 몰랐던 인물이었다. 권 씨는 범인 은닉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박 씨는 경찰 추적을 우려해 대포폰 20여 대를 사용해 지인들과 연락했다. 9월 중순에는 은신처를 송파구 방이동 월세 빌라로 옮겼다. 이 빌라 장롱에 5만원권 등 현금 7억원을 도피자금으로 보관해뒀다. 경찰 관계자는 추석을 앞두고 부인을 만날 것을 예상해 송 씨를 미행해 검거했다.
하지만 박 씨는 경찰 진술에서 "나머지 돈은 이전 횡령금액을 돌려 막는 데 사용해 남은 돈이 없다"고 말해 1000여억 원의 행방이 아직까지 묘연한 상태다.
경찰은 박 씨가 혼자 거액을 횡령한 점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은 현재 박 씨가 강원랜드에서 돈세탁한 정황을 잡고 국세청과 수표 등 자금흐름을 추적 중이며 동아건설이 구조조정 되면서 회사차원에서 개입해 회사자금을 빼돌리려 한 것이 아닌지 자금흐름 결과를 토대로 수사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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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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