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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경제학] 대한민국 1%, 80만원 세대

"스타벅스 포기하는 석·박사들”

“GPA 상위 1%, TOEIC 990점, 금융관련 자격증 5개, 외국계증권사 인턴 2회, 금융권 공모전 입상만 10차례...”


수도권 K대학 경제학과 석사과정 1학년에 재학 중인 조교 신씨(29, 여)는 학부생 시절 이른바 취업 5종 세트를 모두 겸비한 화려한 전적의 알파걸. 지난 2008년 6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이미 외국계증권사를 포함한 5개 금융권의 러브콜을 받았다.

신씨는 “그 당시 원래 꿈꿨던 학자의 길을 걷고자 모든 걸 포기하고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며 “부모님을 비롯 주변 사람들의 당황스러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현실에 굴하지 않은 인생을 살기 위한 각오가 돼 있었던 것이다.


◆기회비용Ⅰ(스타벅스)=연구 중 짬을 내 차를 한 잔 마시러 나온 A씨. 학생회관 자판기 앞에 모인 동기들 주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루에 꼭 한 잔씩 챙겨먹는 스타벅스 마니아였다. 하지만 조교 한 달 월급으로 한 잔에 5000원은 부담스러워 지금은 엄두를 못낸다”며 자판기에 200원을 넣는다. 그에겐 직장인 여자 친구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도 만만치 않다. 틈만 나면 맛집, 드라이브, 문화생활, 재테크를 이야기하는 여자 친구가 가끔은 다른 세상 사람 같다.

◆ 기회비용Ⅱ(4시간)=서울 A대학 공학계열 석사과정 2년차인 박씨(30, 남)가 포기하는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다. 박씨는 학부시절 A학점만 독차지하는 ‘엄친아’였지만 하루 8시간 이상은 꼭 수면을 취했다고 한다. 그는 “시험기간에도 그 규칙은 깨지지 않았다. 8시간 이상 수면을 못하면 다음날 아무 일도 못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평균 4시간을 잔다. 그는 “지도교수 세미나가 예정돼 있는 그 주는 실질적으로 수면시간 제로다”고 하소연했다.


◆기회비용Ⅲ(2000만원)=대학원생 A씨의 한 달 월급은 80만원. 대기업에 취업해 연봉 3000만원을 받는 B씨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다. 하지만 이마저도 온전히 받는 것이 아니라 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떼이고 받는다. 장학금의 개념이 아니라 월급으로 그의 손에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월급이 다 학비로 쓰인다”며 “이런 상태에서 졸업이나 무사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회비용Ⅳ(재테크)=CMA, 주택청약종합저축, 펀드 2개, 종합보험. 직장인 B씨의 재테크 포트폴리오다. 그는 한 달 월급의 50%를 재테크에 할애하고 있다. 그래도 한 달 150만원 정도는 본인을 위해 쓸 수 있다. 그는 “돈 버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고생한 만큼 매달 대가가 돌아오면 뿌듯하다”며 “이제는 차를 구입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원생 A씨의 재테크 수단은 학부생 시절 어머니가 마련해준 주택청약저축이 전부다. 신용카드 발급이나 자가용 구입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는 “10년 정도는 고생할 각오를 하고 있다. 교수만 되면 그때부터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생각만 하면 잠도 잘 오지 않는다”라고 덧붙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임금(80만원)=대학원 조교가 한달 평균 받는 월급이다. 학사행정, 교수보조 등 몸이 10개라도 부족한 조교가 받는 액수라고 하기엔 초라한 액수다. 공학계열 박사과정 1년차인 김모씨(남, 30)는 "학사행정 뿐 아니라 주말도 연구실 업무 때문에 출근한다"며 "석사 과정 3년간 휴일은 물론이고 명절에도 마음 편하게 쉰 적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을 ‘특수고용직’으로 자처하며 “매달 80만원의 월급을 받을 때마다 부모님께 죄송한 생각이 든다”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일일노동시간(12시간)=조교들은 하루에 평균 12시간을 일한다. 지방 C국립대학 석사과정 졸업을 앞둔 고모씨(26, 여)는 “조교 시절 월급을 받고 학사행정을 도왔던 일 이외에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4시간을 교수 연구실에서 보낸 후 퇴근한다”고 했다. 자신의 공부는 주로 주말에 벼락치기로 한다는 고씨는 “공부할 시간은 없고 용돈을 위해서는 조교를 포기할 수 없어 휴학도 고려한 적이 있다”며 본업과 부업이 바뀐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대학원생들이 이런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10년 후엔 교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하지만 이들이 지불하고 있는 10년이란 시간은 과연 그들이 포기한 기회비용을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대학원생들은 학업 스트레스 이외에도 돈,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오늘도 슬프다. 이들은 과연 학문을 하고 있는 걸까, 학문을 하고 있는 곳에서 견디고 있는 것일까.

임선태 기자 neojwalker@asiae.co.kr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이윤재 기자 gal-run@asiae.co.kr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양재필 기자 ryanfeel@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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