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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들춰보기] 불경기와 푸른 눈의 금발 모델

불경기에 서양에서 나타나는 희한한 현상이 하나 있다. 푸른 눈의 금발(BHBE) 모델이 각광 받는 것이다.

패션잡지인 미국판 보그 5월호에 처음 실린 광고 12개를 보면 온통 BHBE 모델이다. 영국 패션잡지 그라지아, 영국판 엘르, 프랑스판 보그도 상황은 거의 마찬가지다.

프리미어 모델 매니지먼트와 스톰 같은 모델 에이전시들에 따르면 지난 수개월 동안 BHBE 모델을 원하는 광고주가 급증했다.

광고주는 최근 수년 동안 패션쇼, 옥외 광고판, 대중잡지에 군림했던 개성 넘치는 얼굴들을 이제 더 이상 원치 않는다. 대신 소비자들에게 충격이 아니라 확신을 줄 수 있는 부담 없는 얼굴의 금발 모델 수요가 늘고 있다.

프리미어의 창업자 캐럴 화이트는 "튀는 얼굴보다 클래식한 얼굴을 원하는 광고주가 더 많다"며 "지금 같은 불경기에는 광범위한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얼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리미어가 이렇게 해서 선택한 모델이 가브리엘라 칼소프와 도리스 무스다. 스톰의 사라 두카스 대표이사는 "금발의 모델이 더 필요하다"며 "문제는 클래식한 외모의 모델을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털어놓았다.

스톰이 확보한 모델 가운데 겨우 30%가 금발이다. 두카스 대표이사는 "라켈 짐머만이 마크 제이콥스의 광고에, 릴리 도널드슨은 토니 간 못지않게 여러 광고에 출연하고 있다"며 "광고주에게 금발 모델은 일종의 보험"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서양인들은 왜 BHBE 모델로부터 안전하고 행복하며 덜 위협적인 이미지를 느끼는 걸까.

신화와 동화에서 BHBE 캐릭터는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반면 이들 여주인공의 적은 검고 추한 모습이다. 게다가 금발은 마력도 지니고 있다. 동화 '라푼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좋은 예다.

영국 바스 스파 대학에서 발달심리학을 강의하는 랜스 워크맨 박사에 따르면 "여성의 가임 기간은 제한돼 있다. 북반구 남성들은 젊음의 육체적 상징에 이끌렸다. 밝은 색의 머리칼이 이런 상징 가운데 하나다. 나이가 들면 머리칼은 탈색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임상심리학자 애비게일 샌 박사는 "서양인들의 경우 어렸을 적 금발 하면 으레 선(善)·정의·믿음의 세력을 떠올린다"며 "최근 들어 금융인·정치인들로부터 기만당하고 보니 믿음의 필요성이 더 강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금발이 인기를 얻은 바 있다. MGM, 폭스, 워너 브라더스 같은 메이저 영화사들은 대중을 극장으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너나할것없이 현실도피주의적인 영화 제작에 나섰다.

이때 금발의 여배우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독차지했다. 금발의 여배우는 흥행의 보증수표였다. 하지만 금발을 클로즈업하면 과산화수소수로 표백한 듯 간간이 놋쇠 빛이 감돌며 볏짚 같은 느낌마저 풍긴다.

이윽고 카메라맨들은 혁신적인 조명법을 알아냈다. 이렇게 해서 금발의 여배우는 찬란한 조명 속에서 빛나는 여신의 이미지를 갖기에 이르렀다.

헤어스타일리스트 루크 허슈선은 "유명 스타들도 막강한 흡인력을 자랑한다"며 "그래서 요즘 광고주들이 금발의 유명 스타를 찾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발의 유명 스타를 찾는 광고주 가운데 하나가 명품 브랜드 돌체 앤 가바나다. 돌체 앤 가바나는 항상 관능적인 모델을 앞세웠다. 이런 돌체 앤 가바나가 1940년대풍 곱슬머리의 스칼렛 요한슨을 모델로 기용했다.

소매업체 미스 식스티의 공동 창업자인 위치 하산은 자사가 선택한 "사샤 피바보라와 안나 비알리치나 같은 금발의 모델이 강하고 건강한 이미지로 인기를 되찾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모두 이에 동감하는 것은 아니다. 진화심리학자인 게일 브루어 박사는 BHBE 모델이 안정감을 준다는 이론에 코방귀 뀌며 "그 동안 거무스름한 피부색을 지닌 모델들이 홍수를 이뤄 이제 이색적으로 보이는 금발에 이끌리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명한 것은 지금 같은 불경기에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모델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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