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국을 대표했던 보험제국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이 월스트리트의 문제아로 전락했다. 미국 정부에 수차례 손 벌리고도 지난해 4ㆍ4분기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해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3일(현지시간) AIG를 보험사가 아닌 '헤지펀드'에 비교하며 강하게 질타했다.
버냉키 의장은 "어떤 금융기관보다 보수적이고 철저해야 할 보험사가 방만한 위험관리로 금융시장 위기를 심화시켰다"며 "18개월 동안 나를 화나게 만든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AIG"라고 발끈했다.
그는 이어 "AIG가 보험사를 가장해 투자한 헤지펀드나 마찬가지였다"고 덧붙였다.
이는 AIG가 무책임한 투자로 막대한 손실을 냈지만 규제ㆍ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화를 키웠다는 뜻이다.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도 "종합 글로벌 보험사인 AIG가 성숙한 규제 시스템 없이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처럼 운영됐다"고 지적했다.
AIG 파산으로 야기될 엄청난 후폭풍을 피하기 위해 금융면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AIG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선량한 투자자들을 위해 AIG 구제에 나서야 한다는 미 재무부 입장과 달리 투자자 짐 로저스는 AIG를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CN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AIG 지원이 부채 증가로 이어져 결국 미 경제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AIG를 살리고 미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지느니 AIG를 포기하고 '짧고 굵게' 고생하는 게 낫다는 의미다.
로저스는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도 은행들을 구제하려다 발생한 것"이라며 "부실 은행을 파산시키지 않을 경우 앞으로 자금 고갈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쁜' 금융기관일수록 살아남을 확율이 높은 현실에 대해 개탄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비즈니스 칼럼리스트 존 노세라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기고한 칼럼에서 "AIG가 규제 회피와 신용 부풀리기 등으로 광범위하고도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결과 파산할 경우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비교할 수도 없는 대재앙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따라서 정부는 AIG 구제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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