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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족"…자동차, 건설 두 아들의 사모곡

환란 때 남편 실직.. 車·건설 두아들 회사 구조조정 뉴스

"어머니, 오늘은 TV 켜세요!"

작은 아들은 출근하면서 마음속에 맴돌던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요즘 TV를 안 켠다. 늘상 켜 있어 식구나 마찬가지인 TV가 그저 상자로만 변했다.

노총각인 작은 아들은 건설회사에 다닌다. 최근 작은 아들네 회사는 채권단으로부터 C등급 판정을 받았다.A,B,C가 어떻게 다른지 어머니는 모른다. 다만 TV를 통해 회사가 쓰러질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을 뿐이다. 아들이 귀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TV를 아예 껐다.

얼마전 어머니는 평택 사는 큰 아들네를 다녀와서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자동차 회사에 다니던 큰 아들은 낮에는 농성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한다. 평택이 다녀온 후 어머니는 외출도 삼간다.

그래도 TV를 끄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차에 작은 아들네 회사가 어려워졌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아예 TV를 보지 않는다.어머니는 올 가을 작은 아들을 결혼 시킬 작정이었다.

'구조조정 !'. 어머니한테는 너무도 무서운 말이다. 10여년전 이맘 때 어머니는 집에 돌아온 남편한테 "회사가 없어졌어"라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퇴직금도 받 지 못 했다. 그 때 작은 아들이 몰래 신문배달을 시작했었다.아들이 신문을 돌린다는 것을 알고 억장이 무너졌던 어머니는 한동안 식당에 나가 일했다.

작은 아들은 "어려울수록 네가 공부 열심히 하는게 효도"라는 꾸중을 듣고 신문 돌리기를 멈췄지만 어머니의 고단함을 어렵게 지켜봐야했다.그나마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는 사이에 두 아들은 무사히 공부를 마쳤고, 직장도 잡았다.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던 어머니에게 두 아들의 고통은 참기 어려웠거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두 아들이 무사히 장성한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깊은 침묵에 사로잡혔다. 작은 아들도 어머니에게 다가가 위로도 못 하고 있다. 사실 위로할 새도 없다. 회사가 회생을 위한 전쟁을 치루느라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있다.

"얼마나 힘들게 자랐는데…." 어머니는 이런 시련이 왜 또다시 닥쳤는지 원통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런 어머니를 다시 지켜보는 작은 아들은 회사가 어려운게 자기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작은 아들은 왠지 설날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떡국 한 그릇 같이 먹기가 어려울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오늘 일찍 집에 들어가 "모든 직원들이 합심해서 회사를 살리자고 온 힘을 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 드릴 참이다.

"아들은 괜찮아요. 이번 설에 예비 며느리도 집이 인사드리러 올 건데 한번 환하게 웃어 보시죠. 그리고 TV 맘껏 보세요. 조카들한테도 전화하시고요."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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