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6000피 축제, 100원 전쟁

대형마트 삼겹살 100원 전쟁
코스피 6000 시대 얇아진 허리 방증
중간 소비층 강화 정책 필요한 시점

지난 달 2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는 개점을 20분 남짓 앞두고 셔터가 내려진 문 앞으로 긴 대기줄이 만들어졌다. 이날은 대형마트 3사가 '삼삼데이(3월3일 삼겹살 먹는 날)'를 앞두고 일제히 돼지고기를 100g당 880원부터 990원에 판매를 시작하며 이른바 '오픈런(매장 개점 전 구매행렬)'이 벌어진 것이다. '돼지고기 100g당 990원'이라는 안내문 앞에서 소비자들은 고기의 질을 꼼꼼히 비교하는가 하면, 휴대폰 계산기를 두드리며 가격을 비교하는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100원. 거창하지 않은 이 숫자는 요즘 장바구니의 방향을 가른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6000선을 돌파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대형주 강세가 지수를 밀어올렸다. 자산시장 호황에 따른 '부의 효과'도 본격화 됐다. 주식 등으로 자산이 늘었다고 느낀 소비층이 지갑을 열면서다. 명품 매장은 붐비고, 백화점은 최대실적을 갈아치웠다. 숫자만 보면 경제는 축제 분위기다.

부의 효과는 소비를 자극하지만, 동시에 물가 상승을 동반하기도 한다. 자산을 가진 이들의 소비 확대는 가격을 밀어 올리고, 그 부담은 자산이 없는 가계에 더 크게 전가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주가 상승이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수 상승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만 집중된다면, 6000이라는 숫자는 모두의 체감 경기를 설명하지 못한다.

특정 산업의 사이클 회복이 곧 내수와 고용, 자영업자의 체감경기 회복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물경기의 바로미터인 유통 현장은 이미 다른 신호를 보내는 중이다. 명품을 중심으로 백화점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반면, 대형마트는 초저가 할인행사으로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소비의 분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중간층이 얇아진 경제 구조를 드러내는 징후다.

더 큰 문제는 이는 단순히 소비 트렌드의 차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소비 양극화는 소득과 자산의 격차를 고착화 시키고, 내수 기반을 약화시킨다. 중간 소비층이 무너지면 기업은 초고가와 초저가 사이에서만 버티게 되고, 경제의 허리는 점점 가늘어진다. 이는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갉아먹는 구조적 위험이다.

코스피 6000은 분명 의미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그 기록이 우리 경제의 체력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지수는 일부 기업의 합이지만, 경제는 생활의 총합이다. 평균이라는 숫자에 취해 소비의 분포를 외면한다면, 양극화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고점이 아니라, 중간 소비층을 회복시키는 힘이다. 자산시장 호황에 기댄 낙관이 아니라 실질소득과 내수 기반을 다지는 정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6000은 축제가 아니라 균열의 출발점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지금 장바구니에서 벌어지는 100원의 전쟁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유통경제부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