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취재본부 심진석기자
심진석 호남취재본부 취재부장
지난해 5월 예기치 못한 화마가 덮친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검은 연기는 며칠간 하늘을 뒤덮었고, 인근 주민들은 대피소를 전전해야 했다. 사고를 낸 기업에 안전관리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피해 보상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였다. 금호타이어는 사고 이후 법적, 윤리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히며 실제 이행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그런데 1년여가 흐른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가 꺼내든 카드는 '구상권 청구'다. 아직 구체적 항목이 정해지진 않았다지만 임시대피소 운영, 응급구호 세트·도시락·생수 구입 등 당시 사고 수습을 위해 투입된 공공예산을 회사 측에 돌려받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법률 자문까지 받아 범위와 타당성을 따지겠다고 한다.
물론 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구상권은 타인의 책임으로 대신 지출한 비용을 청구하는 권리다. 행정이 쓴 돈을 환수하겠다는 논리 역시 원칙론으로는 성립한다. 하지만 행정이 원칙만으로 움직이는 조직인가. '시기와 맥락', 그리고 '지역 공동체'에 미칠 파장까지 고려해야 한다.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은 아직 정상 가동률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생산직 운영이 50%에도 못 미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화재로 접수된 대인·대물 피해만 8000여 건. 기업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 비용을 돌려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선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광산구가 당장 소송에 나서겠다는 것도 아니다. "검토 단계"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급박한 재정 위기라도 있는 것인지, 지금 이 시점에 구상권 카드를 공개적으로 꺼내야 할 이유는 분명치 않다. 행정 내부 검토로도 충분했을 사안을 굳이 공론화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행정의 역할은 단순한 채권자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주민을 보호하고, 이후에는 지역 경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본령이다. 기업 책임을 묻는 것과 지역경제 회복을 돕는 일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순서와 방식은 다를 수 있다.
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곧 정의는 아니다. 공동체가 아직 화재의 그을음을 털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행정이 먼저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은 썩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불은 꺼졌지만, 행정의 온도는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