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기자
이기민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해 말 원·달러 환율이 1480원을 웃돌았던 데 대해 "역사적으로 높은 경상수지 흑자를 고려할 때 정당화되기 어렵다. 상당한 평가절하"라고 강조하면서 최근 1430원대로 내려온 레벨에 대해 '다행(comfortable)'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연금의 지속적인 해외투자 확대가 고환율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는 상황과 관련해서는 현재 0%인 국민연금의 환 헤지 목표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8일 홍콩에서 열린 '글로벌 매크로 콘퍼런스'에서 '글로벌 분화 시대의 정책결정'을 주제로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한국은행 유튜브
30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이 총재는 지난 28일 홍콩에서 열린 골드만삭스 주최 '글로벌 매크로 콘퍼런스'에서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대담을 통해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고, 그들의 투자 규모는 우리 외환시장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커졌다. 원화 절하 기대가 계속 창출됐고, 이는 개인투자자들이 다시 해외투자를 선호하게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최근 국민연금의 전략 변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최근 국내 주식과 채권 목표 비중을 각각 0.5%포인트, 1.2%포인트 확대하고 해외 주식 목표 비중은 38.9%에서 37.2%로 1.2%포인트 낮추기로 결정했다. 해외 투자 비중 축소는 외환시장의 달러 수급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은)올해 해외 투자 규모를 절반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며 "이는 최소한 200억달러 이상의 달러 수요 감소를 의미한다"고 짚었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 목표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현재 국민연금의 환 헤지 비율 목표는 0%지만 경제학자로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헤지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헤지 수단 역시 다양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그는 "우리나라의 파생상품 시장 규모를 보면 중앙은행과의 외환스와프 거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다른 헤지 수단이나 달러 자금 조달원을 확보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의 달러표시채권 발행 허용 여부가 논의되고 있는데, 자산부채관리(ALM) 관점에서 자연스러운 헤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투자 방식 변화도 조속히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피력했다. 이 총재는 "관계기관은 최적의 헤지 비율, 적절한 해외투자 비율을 논의할 것"이라며 "이와 함께 아마도 3~6개월 이내에 결정돼 한국의 외환시장 구조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9일 인천공항에 있는 은행 환전창구에서 내·외국인이 환전 등을 문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경제성장률을 지난해(1.0%)보다 상승한 1.8%로 전망하는 이유로는 정치적 리스크 해소와 주요 산업의 수출 호조를 꼽았다. 이 총재는 "지난해는 정말 예외적인 해였다. 연초에 불필요한 계엄령 선포로 정치적 리스크가 상당히 증가했다"며 "따라서 1%라는 수치는 매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올해 가장 중요한 동력은 반도체, 방산, 자동차, 조선업 수출로, 특히 반도체 산업, 인공지능(AI) 관련 수출이 상당히 강세"라며 "현시점에서는 (지난해 11월 전망한) 1.8%에 어느 정도 상방 리스크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K자형 성장'으로, 비IT 산업에선 성장률이 1.4%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경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과의 교역이 한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더는 아니라는 점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한국 경제는 미·중 갈등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중국과 디커플링됐다"며 "이는 정치적 혹은 지정학적 긴장 때문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이 서로 경쟁하는 유사한 산업구조를 갖고 있고, 중국의 경쟁력이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중국은 여전히 최대 교역국 중 하나이긴 하지만 더 이상 한국 성장의 핵심축이 아니다. 사실 현재는 미국이 훨씬 더 중요해졌으며, 유럽과 여타 아시아 국가들이 그 지점에서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올해 경제 성장률이 1.8%, 혹은 그 이상으로 회복돼도 물가 상승률은 목표치(2.0%)에 근접한 2.1%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봤다. 이 총재는 "한은이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덕에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이른 2023년에 이미 약 2%의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했다"며 "올해는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음에도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2.3% 정도를 기록하다가 현재 2.2%로 내려가 있다. 원화 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가 낮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도움이 돼 2%를 약간 웃도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가 리스크 요인으론 고환율 상황을 꼽았다. 그는 "환율이 1470원에서 1480원 선에서 장기간 머물게 되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얼마간 더 높여야 할지도 모른다"며 "다행히 내려가고 있어 전망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자형 회복'에서 금리 역할의 한계에 대해서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금리는 K자형 회복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절한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분명히 이 문제는 재정정책과 여타 제도적 개혁을 통해 해결해야 할 사안이지만 우리에게 정치적 압박도 있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