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독일 전역에서 지난달부터 10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징병제 부활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매주 주말마다 수만명의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기성세대를 위해 왜 우리가 희생해야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차라리 푸틴 치하에 살겠다"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독일 안팎에서는 "이기적인 Z세대들이 군대 가기 싫다고 떼쓴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단순히 젊은 세대의 이기심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독일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 너무 깊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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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징병제 반대 시위 규모는 결코 가볍게 볼 수준이 아니다. 10대 청소년뿐만 아니라 20대 청년들까지 대거 동참하면서 점점 더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반발을 넘어 독일 사회가 가진 특수한 역사적 맥락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독일 정부는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성인 남성 전체가 군대에 가는 징병제를 과거 나치 독일의 전체주의를 연상시킨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동서독으로 분단됐던 냉전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이 징병제를 유지했지만, 1990년 통일 이후 평화 기간이 길어지면서 징병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고, 2011년에는 아예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그 결과 지금의 4050대 부모 세대는 물론이고 2030대 청년들도 거의 대부분 군대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반전과 평화 교육이 엄격하게 실시됐다. 독일인들은 나치당과 히틀러의 집권에 관한 교육조차 상당히 금기시할 정도로 전체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뿌리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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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화주의와 반전 사상으로 교육받고 자란 세대에게 갑자기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으니 징병제를 부활하겠다고 하자 받아들이기 어려워진 것이다. 더욱이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독일 경제도 침체를 겪었고,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일자리도 보장하지 못하고, 그래서 결혼과 출산도 대폭 감소한 상황에서 청년들은 "재산을 가진 기성세대를 위해 왜 우리가 싸워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애국심과 국수주의가 고취됐던 시기라 청년들이 전쟁 참여에 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독일 학교에서는 그런 국수주의와 전체주의 사상이 위험하며, 당시 청년들이 국가에 가스라이팅 당해 총을 들고 나가 싸우다 죽었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징병제를 부활할 테니 나라를 위해 군대에 가라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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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독일의 병력은 약 18만 명 수준이다. 독일 정부는 이를 2035년까지 최소 26만 명으로 늘리고, 예비군도 20만 명을 편성할 계획이다. 이 정도는 돼야 프랑스,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 연합해서 러시아를 최소한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상비군 숫자를 아예 150만명까지 늘려놓은 상태다. 그런데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군대를 모두 합쳐도 약 140만명 정도로 150만명에 못 미친다. 독일이 군사력 증강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독일은 최소 연간 6~7만 명을 더 뽑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올해부터 2008년생 남녀 학생 70만 명에게 군 입대 의사를 묻는 설문지를 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남학생들은 무조건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며, 모자라는 병력은 남학생들 중에서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남학생이 약 35만 명이니 이 중 7만 명 정도는 군대에 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당장은 약 20% 정도가 강제 징집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독일도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나라라는 점이다. 학생 숫자도 계속 줄고 있어 지금은 35만 명 중 7만 명이 간다고 하지만, 갈수록 학생 수가 감소하면 나중에는 전부 군대에 가야 할 수도 있다. 군 자원입대자도 크게 줄고 있어 병력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인구 구조적 문제 때문에 독일 학생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러다가 결국 여성 징병제까지 통과시켜 18세 이상 성인 전원을 복무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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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제 부활 문제는 비단 독일만의 고민이 아니다. 다만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동유럽 국가나 북유럽 국가들은 큰 반발이 없는 반면, 국경이 멀리 떨어진 서유럽 국가들의 반발이 유독 심각하다. 대표적인 곳이 독일 옆나라인 프랑스다.
프랑스도 1997년 징병제가 폐지됐는데, 정부에서 사실상 징병제 부활 필요성을 언급하자 청년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프랑스 정부는 한발 물러서 남녀 모두 지원자 누구나 10개월간 군 복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 프랑스 외에 이탈리아나 스페인도 서유럽에서 인구가 많고 체급이 되는 나라들이어서 징병제가 필요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언급조차 못하고 있다. 잘못 꺼냈다가는 정부가 바로 무너질 정도로 반감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에서 반감이 심한 이유는 전 국민을 징집해 전선으로 내보내는 상황이 과거 독재정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정권이 무너진 후 징병제가 폐지됐고, 이탈리아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정권 붕괴 이후 징병제가 사라졌다. 징병제에 대한 반감을 낮추기 쉽지 않은 역사를 안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유럽에서 징병제를 실시했을 때 수십만명씩 병력을 확보할 수 있는 체급의 나라가 서유럽의 이들 대국 외에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 외에는 동유럽의 폴란드나 루마니아 정도가 있는데, 이들 나라는 이미 최전선 국가이며 징병제도 계속 실시하고 있다. 결국 서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협력해야 러시아 방어가 가능한데, 북유럽이나 동유럽의 작은 나라들이 아무리 징병제를 실시하고 여성들도 군대에 간다 해도 커버가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적 반감과 함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다. 군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독재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는 시간을 들여 치유할 수 있지만,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각국 정부가 고심하고 있다.
당장 유럽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 출신 사람들을 군대에 대거 영입하는 일인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아무리 유럽에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라 해도 여전히 인종차별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종교·문화적 차이가 심한 상황에서 이들을 대거 군에 입대시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크고, 무엇보다 이들 중 일부가 중동 테러조직 요원일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다.
유럽 각국은 이 문제를 상당히 고심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면 로봇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지만, 이것도 아직은 기술이 훨씬 더 발전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Z세대와의 사회적 합의, 징병제에 대한 인식 개선 등을 통해 징병제에 대한 거부감을 어떻게 낮출지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